눈이 내리거나 노면이 언 곳을 지날 때 자동차의 전자제어 장비가 순간적으로 작동한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최신형 자동차는 주행 상황에 맞는 다양한 주행 모드를 가지고 있다. 노멀, 스포츠, 에코, 아이스(스노)가 대표적이다. 이 중에서 요즘처럼 추운 날씨에 어울리는 주행 모드는 아이스(스노)다. 실제로 눈이 내리는 날 아이스 모드에 놓고 달려보면 알 수 있다. 미끄러운 길에서 달리는 게 어렵지 않다. 사람이 걸어서 오르고 내리기 어려운 미끄러운 언덕 구간도 차로 가볍게 오른다. 물론 타이어가 약간씩 미끄러지겠지만. 어쨌든 낮은 경사 정도는 큰 문제없이 올라간다.

반대로 같은 구간에서 차의 모든 전자제어장비를 끄고 달리면 어떨까? 아마도 언덕을 오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언덕을 올라가더라도 아주 힘겹게, 차가 좌우로 요동칠 것이다. 이건 운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아무리 섬세하게 가속 페달을 밟더라도 인간의 능력으로는 미끄러운 노면에서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접지력 변화를 0.5초 단위로 파악하고 바로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노면이 미끄러운 곳에서 운전자는 단지 ‘아이스’라는 버튼만 누르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주행 모드를 활성화하면 많은 전자제어 기술이 복합적으로 연결되면서 작동한다. 접지력 제어 시스템(TCS)과 자세 제어장치(ESP), 잠김 방지 브레이크 시스템(ABS) 등이 각자 필요한 상황에 개입한다. 엔진과 변속기의 반응도 변한다. 각종 센서가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력을 분석하면 자동차에 달린 컴퓨터가 엔진의 출력을 임의로 줄이기도 하고, 기어를 적당한 단수에 고정하기도 한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찰나의 순간, 자동차는 이렇게 많은 정보를 분석하고 실행한다. 결과적으로 타이어와 노면 사이에 아주 미세한 접지력을 찾아내고, 차를 움직인다.

또 차가 달리다가 미끄러지는 상황도 있을 수 있다. 이때 자세제어장치의 개입이 결과를 크게 바꾼다. 자세제어장치는 DSC, VDC, ESP, PSM 등 회사마다 제각각으로 불린다. 하지만 그 역할은 거의 비슷하다. 언더스티어(차의 앞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나 오버스티어(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가 나는 것을 막아주면서 동시에 차가 움직이는 관성을 유지하도록 한다. 타이어 접지력을 꾸준히 끌어내어서 차의 미끄러짐을 막는 것이다. 자세 제어장치는 각종 센서로 구성된다. 휠 속도 센서와 수직축 회전율 감지 센서, 조향 각 센서 등이 차의 움직임 정보를 수집한다. 취합된 정보는 자동차에 달린 컴퓨터(ECU)에 판독을 거쳐 각 바퀴의 브레이크를 독립적으로 제어한다.
예컨대 미끄러운 눈길을 달리던 중 갑자기 전방에 장애물을 발견하고 운전자가 스티어링휠을 왼쪽으로 빠르게 틀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때 자동차는 움직이던 관성에 의해 왼쪽이 아니라 계속해서 직진하려고 한다. 그래서 앞 타이어가 접지력을 읽고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는다. 이렇게 앞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언더스티어)에서는 자세 제어장치가 접지력이 살아있는 뒷바퀴를 집중적으로 제어한다. 만약 차를 특정한 방향으로 선회시켜야 한다면 코너의 안쪽, 뒷바퀴에만 제동을 건다. 스티어링휠을 왼쪽으로 돌린 상태라고 가정한다면 차의 왼쪽 뒷바퀴에만 독립적으로 제동을 거는 것이다. 이런 의도적인 제어를 통해 결과적으로 차가 왼쪽으로 서서히 회전하게 된다.

또 다른 예로, 코너를 돌아가 갑자기 전방에 장애물을 확인하고 브레이크를 밟을 때를 가정해보자. 순간적으로 차의 앞쪽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면서 앞바퀴의 접지력이 향상되는 동시에 뒷바퀴의 접지력이 크게 줄어든다. 따라서 차의 꽁무니가 앞머리보다 큰 각도로 미끄러지는 현상(오버스티어)이 발생한다. 뒷바퀴굴림 자동차의 엉덩이가 코너에서 밖으로 흐르는 경우와 같은 원리, 운전자가 의도적으로 제어한다면 ‘드리프트’가 되기도 한다.
미끄러운 노면에서 오버스티어는 뒤 타이어에 접지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따라서 자제제어장치 제어 유닛은 접지력이 조금이나마 살아있는 앞바퀴에 제동력을 걸어 차를 안정화한다. 그러니까 운전자를 중심으로 차의 엉덩이가 시계 방향으로 미끄러진다면 운전석 쪽 앞바퀴에 강하게 제동하는 것이다. 오버스티어에서 자세 제어장치가 정상적으로 개입했다면 특정 앞 타이어에 강제로 브레이크를 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후 차가 좌우로 휘청거리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겨울철 미끄러운 구간에서 아주 찰나의 순간 타이어가 접지력을 잃고 미끄러진다. 그것이 직선일 수도 있고, 때론 코너일 수도 있다. 어쨌든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온몸에 털이 쭈뼛 설정도로 무서운 순간이다. 여기서 자동차에 달린 전자제어 장비의 개입이 결과를 크게 바꿔놓을 수 있다. 이번 겨울에 눈길에서 그렇게 위험한 순간을 경험한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아마도 자동차에 달린 각종 전자제어 시스템이 이미 열심히 작동해서 당신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