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 없는 가격에 레이스 엔진을 즐겨보고 싶다면
혼다 S2000 vs 마쯔다 RX8

[강병휘의 죽기 전 꼭 타보고 싶은 그 차] 우리나라에서도 에프원이 개최되던 역사가 있었다. 직접 영암 인터내셔널 서킷을 찾아 에프원 경기를 직접 관람해본 경험이 있다면, 또는 서울 시내에서 열린 에프원 쇼런 현장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면 납작한 포뮬러 머신이 뿜어내는 우뢰 같은 소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될테다. 누군가에게는 귀마개가 필요할 정도로 파괴적이지만 동시에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는 첨단 과학 기술의 연주이기도 하다.

엔진 배기량 대비 아주 높은 마력을 발산하는 에프원 엔진은 일반적인 내연기관의 엔진음과 전혀 다른 음색을 들려주는데, 사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가용 회전수에 있다. 휘발유 엔진의 양산 모델들은 통상적으로 회전 한계 영역이 6000 RPM에서 6500 RPM 사이다. 분당 회전수를 뜻하는 RPM(Revolutions Per Minute)을 초당 회전수로 환산하면 일반 휘발유 차량도 1초에 무려 100회 가량 크랭크축을 돌려줄 수 있으니 만만치 않은 회전 속도다.



하지만 영암 그랑프리에서 300km/h 넘는 속도로 질주하던 에프원 머신들은 18,000 RPM 까지도 엔진이 돌아갈 수 있었다. 이는 초당 300번의 회전을 의미한다. 밸브를 여닫는 빈도도, 그에 따라 드나드는 흡기와 배기의 유속도 모두 전혀 다른 차원인 셈이다. 고회전 영역까지 토크 밴드의 하락을 막을 수 있다면 최고 출력은 허용 회전 한계에 비례해 계속 상승하게 된다. 마력이란 결국 토크와 RPM의 곱으로 계산된 일률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에프원 엔진들은 배기량 대비 엄청난 최고 마력을 발휘하게 된다.

또한 엔진이 더 높은 회전수까지 사용이 가능하다면 보다 낮은 기어비를 적용해 가속 성능을 향상시키는 것도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실린더와 피스톤, 밸브 트레인, 냉각과 윤활을 포함한 대대적인 특수 설계가 필요하기 때문에 양산형 엔진에서는 쉽게 찾아보기가 어렵다.



반면, 고회전 레이스카 제작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제조사들은 양산형 스포츠카에도 유사한 개념의 고회전 엔진을 선보이려는 시도를 통해 팬덤을 형성해 오고 있기도 하다. 에프원 레이싱의 터줏대감인 페라리와 맥라렌이 대표적인 브랜드다. 최근 터보화 추세를 거스르진 못했으나 여전히 8500RPM 이상 고회전을 허용하고 있고 자연흡기 엔진들은 9000RPM의 레드존을 보였다. 일반 휘발유 차량보다 50% 가량 높은 회전 한계다.



하지만 두 브랜드 모두 가격대는 최소 3~4억원 이상부터 시작이라 심리적 거리가 제법 멀다. 포르쉐에는 911 GT3 모델이 고회전용 특별 수평대향 엔진을 마련해주고 있다. 얼마 전 국내 론칭한 아우디 신형 R8 역시 V10 고회전 엔진을 고수했으나 두 모델 다 2억원을 훌쩍 넘긴다. 조금 더 현실적인 고회전 엔진 스포츠카는 혹시 없을까?



이미 단종된 모델이지만 부담 없는 가격에 레이스 엔진을 즐겨볼 수 있는 일본 스포츠카가 있다. 혼다 S2000과 마쯔다 RX8이 그 주인공이다. 혼다는 에프원 레이스로부터 고회전 엔진 컨셉트를 내려받아 20세기가 끝나갈 무렵 9,000 RPM까지 회전시킬 수 있는 직렬 4기통 VTEC 엔진을 선보이며 S2000의 화려한 탄생을 알렸다. 2.0L 자연흡기 엔진으로 250마력, 리터당 125마력이라는 가공할 수치를 기록했다. 1250kg의 준수한 체중과 오픈 에어링이 가능한 2인승 로드스터 구조에 4기통 엔진을 프런트 미드십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엔진룸을 길게 뻗어낸 디자인을 채용했다.



엔진 압축비는 연식과 출시 시장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었지만 최대 12.5:1에 달하는 고압축비 설정으로 혼다 엔진 기술력의 정점을 유감없이 발휘하던 심장이었다. 덕분에 저속 VTEC 작동 구간 RPM 에서도 예상 외로 파워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크지 않았고 짧은 기어비의 6단 수동변속기(S2000은 오직 수동변속기로만 생산되었다)와 조화가 완벽에 가까운 모델이었다. 디지털 방식의 RPM 미터가 9를 향해 칸을 하나씩 채워나갈 때마다 터져버릴 듯 커져가는 엔진 사운드가 운전자로 하여금 거친 절정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100 RPM 단위로 생생하게 전달해주는 기분이다.



반면 동일한 최고 회전수를 자랑하는 RX8의 엔진은 전혀 다른 형태의 경험을 선사한다. 중앙에 위치한 RPM 바늘이 레드존을 향해 꺾여질수록 아무 저항감 없이 매끈하게 무한 회전해 버릴 것 같은 묘한 환상을 준다. 실제 연료 차단은 거의 9300 RPM 근처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2로터 1.3리터의 작은 로터리 엔진은 아시아 자동차 제조사로는 유일하게 르망 24시 경주를 재패한 마쯔다 787B의 도전 정신을 계승했다. RX7의 터보 로터리 엔진과 비교하면 되레 최고 출력은 줄었지만 자연흡기 방식을 통해 최고 회전 영역은 더 높아졌다. 엔진 내구성도 RX8으로 넘어오며 대폭 향상되어 오버홀 작업에 대한 공포감도 완화되었다.

바디 타입은 2+2 시트 구성에 2+2 도어 형식이라는 독특한 구조의 쿠페였다. 앞 도어를 열고 아주 짧은 뒷 도어를 양문형 냉장고처럼 열 수 있어 1/2열 승하차가 편했고 전동 시트까지 옵션으로 마련되어 S2000보다 일상 운행 목적에 유리하기도 했다. 다만 V8 엔진과 맞먹는 먹성은 감안해야 했다. S2000은 고압축비 엔진의 효율성으로 연비가 꽤 우수한 편이었다.



배기가스 대응과 일본 스포츠카 경기 침체로 단종 후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지만 최근 혼다의 신형 S2000 개발에 대한 여러 관측이 나오고 있고 마쯔다 역시 RX 모델의 부활 계획이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신형 모델의 초고회전 자연흡기 엔진 유지 여부는 굉장히 불투명하다. 그래서 상태 좋은 중고 모델이 나타난다면 다시 차고에 들여놓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강병휘(레이서)
저작권자 © 오토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