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최근 기아차 프라이드와 현대차 엑센트 등 소형 승용차 단종 소식이 계속해서 전해지고 있다. 프라이드의 경우 홈페이지에서 사라진 지 꽤 됐고, 엑센트 역시 판매는 이뤄지고 있지만 대안(A세그먼트 CUV)이 나오는 대로 단종될 거라는 구체적 내용이 담겨 있다.
두 모델 모두 해외에서는 세대교체가 이뤄진 신형이 판매되고 있으므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국내 고객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처럼 소형 승용차 시장의 핵심 모델 단종 얘기가 나온 표면적 이유는 내수 시장에서의 판매량이다.

◆ 상하좌우에서 밀려드는 압박
지난해 한국에서 팔려나간 프라이드는 4,158대였고 올해는 2,028대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엑센트 역시 7월까지 누적 판매량은 작년과 비교해 50% 이상 줄었으며, 아베오 또한 11월까지 전년 대비 69% 줄어든 결과를 보였다. 소형차 판매 비중이 떨어지고 떨어져 1% 미만까지 나왔다고 하니, 이런 상황에서 단종 얘기가 나오는 것도 제조사 처지에서 보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거기다 소비자들은 최근 부쩍 소형 SUV로 몰리고 있다. 또 가장 많이 팔리는 자동차는 대형급에 속하는 E세그먼트 그랜저다. 경차와 C세그먼트 준중형에 짓눌리는 것도 부족해 이제는 소형 크로스오버와 시장 양극화라는 분위기까지 더해져 찌그러지고 만 것이다.
분위기가 그래서였을까? 올해 유럽 베스트셀러 클리오를 들여오겠다던 르노삼성도 몇 가지 이유를 들어 출시를 연기한 상태다. 그러니 현대와 기아의 국내 시장 단종 소식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기엔 아쉬운 게 많다.

◆ 시장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
다수의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형차 시장이 이처럼 외면 받는 큰 이유 중 하나로 소형 SUV의 성장을 꼽았다. 누적 판매량에서 월등한 결과를 보인 쌍용차 티볼리(11월 현재 5만0,395대), 최근 월간 판매량에서 티볼리를 따돌리고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현대 코나, 여기에 일찍 소형 SUV 시장에 뛰어든 쉐보레 트랙스와 르노삼성의 QM3, 그리고 프라이드를 대신하게 된 스토닉까지. 소형과 준중형 사이에 위치한 니로를 제외하더라도 11월까지 10만 대 이상이 팔려나갔다.
그에 비하면 엑센트, 프라이드, 아베오 등 소형차의 11월까지 판매량을 모두 합쳐도 1만 대가 되지 않는다. 올해 판매량만 놓고 보면 소형 SUV의 1/10 수준이다. 내년 역시 SUV의 성장세가 계속되리란 예상은 어렵지 않다. 그리고 제조사는 이런 상황을 일종의 ‘자연선택설’처럼 시장의 선택에 따른 결정으로 설명하려는 눈치다.
하지만 단순히 판매량이 단종의 기준이라면 카렌스(11월 누적 2,547대), i30 (11월 누적 4,347대), i40(누적 298대) 등도 대상이 되어야 한다. 엑센트보다 못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특히 프라이드의 경우 이미 4세대를 조립하기 위한 라인 정비라는 명목으로 생산이 수개 월 전부터 중지된 상태이니 이것을 판매량의 현실로 기준 잡은 것은 불합리하다.

◆ 소형 승용차 퇴출 유도?
그렇다면 엑센트보다 못 팔고 프라이드보다 안 팔린 모델들은 놔두고 왜 이 두 차량의 단종 소식이 전해진 걸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현대와 기아는 스토닉과 코나 등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소형 SUV와 엑센트 프라이드와 같은 소형 승용차 사이에 판매 간섭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듯하다.
스토닉의 경우 코나와 티볼리와 경쟁해야 하는데 프라이드 신형을 들여왔을 때 스토닉이 라이벌들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어쩌면 좀 더 직접적으로 ‘돈이 안 되는’ 소형 해치백보다는 좀 더 마진율이 높은 소형 SUV에 집중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소형 엑센트의 가격이 소비자로 하여금 준중형을 선택할 수 있게끔 유도된 측면도 있다. 엑센트 가솔린 프리미엄(1606만 원) 가격에 84만 원만 추가하면 아벤떼 밸류 플러스 트림을 구입할 수 있으니 상위 모델로 넘어가기 쉽다. 이 점은 아베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소형 승용 모델들은 세금 혜택도, 판매 가격에 대한 장점도 없거나 부족하다. 소형 승용에 대한 기술 투자 또한 상대적으로 미미했다. 여기서 밀려들 듯 경쟁적으로 소형 SUV들이 등장함으로써 시장은 마진 높은 소형 SUV 쪽으로 무게추가 옮겨갔다. 독점적 구조의 시장 안에서 제조사가 어떤 방향으로 유도한다면 소비자들은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선택지가 딱히 없기 때문이다.

◆ 내부 문제들이 발목 잡는데 한몫?
프라이드 내수 단종의 또 다른 이유를 회사 내부 문제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프라이드는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소하리 공장에서 담당하고 있다. 이곳은 1973년 세워진 기아의 가장 오래된 공장이다. 연 생산 능력은 현재 32만 대 수준으로, 기아는 오래전부터 소하리 공장의 증설 허가를 요구해 왔다. 공장 승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당시 박정희 정부가 그 지역 일대를 그린벨트로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다 2008년이 되어서야 정부가 증설이 가능한 방향으로 정책을 폈다. 지자체 역시 그린벨트 보전부담금을 내는 조건으로 증설 계획을 승인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지금까지 공장 증설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보전분담금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당시 언론의 의혹도 있었지만 속 시원하게 사정이 밝혀지진 않았다.

그러는 사이 아파트 단지가 공장 주변에 들어서면서 주민들과 소음 분쟁이 일어났다. 또 통상임금 판결로 미지급된 인건비 1조가 회계에 반영되며 10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다. 공장 증설에 3천억 원 가까운 돈이 필요한데 적자를 기록한 상황에서 이런 거금을 국내 공장에 투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처럼 증설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소하리 공장은 수출용 프라이드와 K9, 카니발은 물론 새로운 식구인 스팅어와 스토닉까지 조립하고 있다. 라인은 복잡해졌고, 영업 적자를 기록했으니 공장 증설과 함께 내수용 프라이드를 라인에 투입하는 건 부담되는 일이다. 통상임금에 대한 부담도 있는 상황에서 신형 프라이드의 한국 시장 투입을 포기하고 대신 스토닉에 집중하기로 했을 수도 있다.

◆ 30년 넘은 대표 모델들과의 작별
지난 6월 기아 고위 관계자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토닉은 프라이드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대체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6개월도 안 돼 그 말은 뒤집어졌다.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온 계획을 감출 요량으로 던진 말인지 아니면 그 6개월 사이에 어떤 큰 변화가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보도대로라면 이제 프라이드는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한 한국 시장에서 볼 수 없게 됐다.
요즘 자주 소형을 넘어 준중형 시장마저 위태롭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판매량이 계속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이라면 C세그먼트도 소형 승용차처럼 인기 많은 SUV가 대신하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당장은 그런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자국 시장에서 자신들 헤리티지조차 지키고 발전시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독점적 지위의 제조사라면, 뭔들 못 할까 싶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