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知彼知己(지피지기)·率直淡白(솔직담백)·周到綿密(주도면밀) – 볼보의 성공에서 배우자 (2)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지난 칼럼에서는 볼보가 어떻게 망할 뻔 했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되살려냈는가 그 시작을 알아봤습니다. 요즘 많은 브랜드들이 개연성이 없어 설득력이 부족한 ‘프리미엄’을 이야기하는 것에 비하여 볼보는 자신의 과거와 주변으로부터 이야깃거리를 찾아내 ‘그럴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하는’ 공감이 가는 자신만의 브랜드 스토리로 시장의 테마를 선점하고 큰 흐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야기를 잘 만들고 공감을 얻었다고 해도 그것이 소비자들에게 구체적인 경험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하나의 잘 만들어진, 그러나 공허한 이야기에 불과하게 됩니다. 소비자들이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제품입니다. 따라서 브랜드의 색깔이 듬뿍 묻어 있는 제품을 잘 만들어서 소비자들이 공감한 것을 직접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지난 주에 볼보가 어떻게 자신들의 신제품들을 과거 역사 속의 헤리티지와 연결하고 자신들의 철학을 반영하여 만들었는가를 알아보았듯이 말입니다.
그렇다면 만들어진 제품들이 어떻게 하면 소비자들에게 더 잘 받아들여지고 결국에는 브랜드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는지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모델 론칭 – 도전과 안정성의 적절한 조화
새로운 브랜드 스토리를 담은 새로운 모델 라인업을 출시하는 순서는 90 – 60 – 40 시리즈이고 각 시리즈의 첫 모델은 모두 XC였습니다. 여기엔 치밀한 작전이 숨어 있습니다. 이 또한 자기의 강점과 브랜드의 목표를 잘 분석한 결과였습니다.
90 시리즈는 볼보가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업그레이드되기 위하여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도전장이었습니다. 첫 도전장으로 꺼낸 XC90가 최고의 선택이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요즘 시장 분위기에서 SUV는 오히려 실패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안전한 선택입니다. 둘째, 볼보는 20세기의 왜건 시절부터 크로스오버 시장의 강자였습니다. 셋째, SUV는 토르의 망치, 직선적 디자인으로 요약되는 새로운 볼보 디자인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가장 높은 장르입니다. 넷째, SUV는 볼보의 스포티하기 보다는 무난한 조종 성능이 문제가 되지 않는 장르입니다.
즉, 볼보는 강점은 최대한 부각시키고 단점이나 불확실 요소는 최소화하면서 도전을 성공시키기 위하여 XC90을 브랜드의 새로운 출발의 선두 주자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이었죠. 그래서 뒤를 이어 볼보의 대명사인 왜건 V90, 새로운 약속의 땅인 – 그리고 새 주인의 나라인 – 중국을 위한 S90, 90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볼보 고유의 장르이자 블루오션인 V90 크로스컨트리 모델을 론칭한 것입니다.

그 다음 XC60은 쉬운 선택이었습니다. XC60은 볼보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판매한 모델이고 XC60은 GLC나 X3, Q5 등을 제치고 이미 유럽 동급 시장의 베스트셀러입니다. 즉 XC60은 도전이라기보다는 90 시리즈의 성공을 다시 한 번 확인하여 소비자들에게 볼보의 도전은 완전히 성공했음을 선포하는 ‘고객 안심의 선포식’이었던 겁니다. 그리고 업그레이드 된 브랜드의 위상을 실제 판매량 증가와 수익 칭출로 직결시키는 수확의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역시 성공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반 년 이상 기다려야 차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릴 정도니까요.
그런데 여기서 약간 특이한 행보가 보입니다. V60이나 S60을 제치고 XC40이 먼저 출시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XC60의 성공에서 모멘텀을 그대로 이어받아 C 세그먼트에 성공적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볼보의 큰 그림 때문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볼보의 30이나 40 시리즈는 C 세그먼트 시장에서 그리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브랜드를 다시 출발시키며 이미지를 쇄신하는 – 그리고 지금까지 완벽하게 성공한 – 지금이야말로 컴팩트 카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사실 볼보는 지금까지 ‘아빠차’ 혹은 ‘아저씨차’로 인식된 면이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에게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브랜드가 상승세에 있을 때 성공 확률이 높은 크로스오버 SUV로 약세인 시장으로 기세를 몰아 진출한 것입니다.
XC90 – XC60 – XC40은 같은 브랜드의 제품이지만 겨냥하는 고객층이 다르다는 점이 디자인에서도 드러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뒷문 뒤의 쿼터 글래스 아래의 벨트 라인의 각도입니다. 수평이었던 XC90에 비하여 XC40은 매우 가파르게 위로 치솟습니다. XC60은 그 중간입니다. 중후한 XC90은 안정적인 장년 가족을 상징한다면 XC60은 따뜻한 중년 가족을, XC40은 역동적인 젊은 가족 또는 커플을 떠올립니다. 같은 볼보이지만 겨냥하는 고객층이 다르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길게 설명해야 하는 제품은 컨셉트 설정에서 이미 실패한 것입니다. 누가 봐도 ‘아, 이것은 내 차다’라는 것이 쉽게 떠오를 수 있는, 즉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는 디자인과 기능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제품의 경쟁력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품력과 치밀한 출시 계획이 공감이 가는 브랜드 스토리와 만나서 씨줄과 날줄이 단단히 얽혀 견고한 브랜드 전략이 되는 것입니다.
그저 화려한 미사여구로 도배된 광고와 비싼 가죽과 크롬으로 치장한 제품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만들지는 않습니다. 화려한 스펙이 그 사람의 됨됨이와 진짜 실력을 증명하지 않듯이 말입니다. 볼보는 훌륭한 타산지석입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