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기 좋은 차가 타기도 즐겁다 (2)
[강병휘의 자동차 버킷리스트] 지난 편에서는 디자인만으로도 다시 타보고 싶은 국산차를 생각해 봤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더 시야를 넓혀 해외 브랜드의 작품들을 살펴볼까 합니다. 디자인은 자동차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기도 하고, 금속과 광택에 의해 끊임없이 표면에서 빛의 변화가 일어나며 아름다움이란 가치를 정립할 수 있는 요소이기 때문이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 좋다는 속담도 있듯, 보기 좋은 자동차가 소유에서 오는 만족감도 높다는 게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많은 디자이너들이 “작을수록 아름답다”라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자동차 부문에서도 잘 들어맞는 이야기입니다. 작은 차가 주는 공간적 제약을 뚫고 패키징을 구현하기 위해 엔지니어 입장에서 기술적인 디자인 설계에도 중점을 둬야 하지만 큰 차보다 뭔가를 더 덜어내야 하는 소형차 디자인은 디자이너들에게도 많은 지혜가 필요한 영역입니다.

소형차 영역에서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디자인으로 전통을 이어오는 두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미니와 비틀입니다. 두 모델은 작은 차체와 네 명의 탑승객을 수용해야 한다는 동일한 전제를 갖고 출발했지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시작했습니다. 미니는 캐빈 활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로배치 엔진에 FF(Front Engine Front-wheel Drive) 방식을 조합했고, 네 바퀴를 차체 코너로 최대한 밀어냈습니다. 비틀의 타입 1 모델의 길이가 4미터를 살짝 넘긴데 반해 원조 미니는 전장이 3미터 남짓이었기 때문에 같은 소형차여도 덩치 차이가 제법 났습니다.
미니는 이름 그대로 미니였습니다. 앞타이어의 조향 기구 시스템의 배치가 운전자와 워낙 가까웠기 때문에 스티어링 컬럼이 거의 45도 각도로 운전자를 향해 올라옵니다. 즉, 운전대가 요즘 버스들처럼 하늘을 바라보고 있고 운전자가 껴안듯 쥐고 운전하는 형태가 되는 것이죠. 무게가 가볍고 휠베이스가 짧아 앞바퀴 굴림이었음에도 운동 감각이 훌륭한 차였습니다.

이러한 장점이 더 돋보일 수 있는 오프로드 랠리 분야에서 두각을 먼저 드러냈지요. 작은 차체는 좁은 오프로드 구간을 대로처럼 헤집을 수 있었고 미끄러운 노면 위에서 액셀 워크로 손쉽게 테일 슬라이드를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승석에 앉은 사람과 어깨를 맞부딪히고, 창문을 내려 왼팔을 도어에 자연스레 얹고 운전하는 게 더 편할 정도로 실내가 좁았지만 어쨌든 4명이 타고 작은 화물 공간까지 챙겨 넣었지요.

반면, 비틀은 엔진을 뒤쪽에 얹어 실내를 관통하는 드라이브 샤프트를 없앴습니다. RR(Rear Engine Rear-wheel Drive) 구조는 자동차 공학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습니다만 당시 한계 속도나 접지력 수준이 낮은 타이어 기술과 오리지널 비틀의 900킬로그램 대 가벼운 중량 구성에서는 구동륜 위에 엔진 무게로 하중을 걸어주는 이점도 많았습니다. 냉각수 대신 공기로 엔진을 식혀주는 공랭식 엔진 덕분에 전면부 냉각 장치를 연결할 필요도 없었고 전면 그릴을 장착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본넷 아래에 화물 적재 공간도 만들어 실용성을 더할 수 있었죠. 앞쪽 무게가 워낙 가벼웠기 때문에 트렁크에 무거운 짐을 싣고 나서야 핸들링 성능이 좋아진다는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전면 윈드실드가 우뚝 솟아있고 루프라인도 높게 이어지기 때문에 생각보다 실내 공간은 여유롭습니다. 차체에서 외부로 돌출된 펜더 디자인과 접시 모양의 크롬 휠은 클래식 비틀의 매력에 방점을 찍는 요소들이었습니다.

미니와 비틀의 디자인적 혈통을 이어가고 싶었던 BMW와 폭스바겐은 현대화된 플랫폼에 신형 모델을 계속 발표하게 됩니다. 미니는 체격이 커졌고, 5도어 롱 휠베이스 버전을 비롯해 SUV 모델과 SUV 쿠페 모델까지 등장하며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현행 미니는 처음으로 5도어 해치백 모델을 가세해 3도어의 불편함을 던져버리고 실용성과 공간 활용성까지 챙겼습니다. 물론 덩치로 보면 미니보다 맥스라는 이름을 붙여야 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요.

비틀은 골프를 기반으로 한 FF 방식으로 변화했습니다. 트렁크가 뒤에 크게 자리하고 후드 아래에 파워트레인이 자리하지만 전통 계승을 위해 여전히 헤드램프 사이 그릴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한 세대의 신모델 교체 주기가 일반적 자동차보다 훨씬 길다는 점도 특징이죠. 컨버터블 모델도 매력적입니다. 국내로 수입되진 않았지만 더 비틀 카브리오는 50km/h까지 주행 중에 탑을 여닫을 수 있고, 미니는 선루프처럼 2단계로 열리는 재미있는 지붕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작고 귀엽기만 한 차가 아님을 증명하려는 듯, 두 모델 모두 고성능 버전 또는 레이스카 형태의 특별 버전이 속속 공개되었습니다. 미니와 비틀 모두 동일한 차종과 기술 규정으로 승부를 가르는 원메이크 레이스가 운영되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미니는 WRC(World Rally Championship)에 출전했고 제가 참가하는 뉘르부르크링 내구레이스 전쟁터에도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비틀은 본네빌 소금평야에서 시속 330km/h에 가까운 공식 속도 기록을 세우기도 하고, GRC 랠리크로스 경기에서 화려한 드리프트를 선보이며 달리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가장 타보고 싶은 모델은 역시 원조 모델입니다. 운전도 불편하고 소음도 크지만 수십 년간 명맥을 잇게 만든 첫 주인공이기 때문일까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강병휘(레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