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기아차 외국인 임원 영입의 명과 암

단기간에 약점을 보완해 성과를 내느냐, 오래 걸리더라도 기초를 다지며 자력으로 성공하느냐. 외국인 임원을 바라보는 시각은 갈릴 수밖에 없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과정이냐 결과냐. 참 어려운 문제다. 결과가 미덥지 않더라도 과정에서 정도를 걸어야 할지, 불법만 아니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야 할지….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으면 최고이지만 세상사에 그런 경우는 잘 없다. 과정과 결과는 기업 운영에서 특히 고민하는 문제다. 이른 시간에 좋은 결과를 내야만 하는 환경에서 정도를 걷기는 쉽지 않다. 원칙적이고 이상적인 과정을 거쳐도 결과가 좋을 수 있지만 시간이 오래 걸린다. 초스피드 경쟁 사회에서 시간 낭비는 죄악이다.

요즘 현대·기아자동차는 블랙홀이라고 불린다. 세계 유수 자동차 업체의 인재들을 무섭게 빨아들이고 있어서다. 인재도 그냥 인재가 아니다. 이름 있는 고위급 유명 인사들이다. 시작은 기아자동차 피터 슈라이어다. 2006년 기아차는 아우디와 폭스바겐 등에서 디자인 총괄 책임자를 지낸 피터 슈라이어를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이후 기아차 디자인은 괄목할 성장을 했고 피터 슈라이어는 현대기아차 디자인 총괄 사장 자리까지 올랐다.

‘능력 있는 외국인 임원에 의한 혁신’이 성공하면서 현대기아차는 이 방식을 성공의 열쇠로 삼았다. 2014년에는 BMW의 고성능 브랜드 M의 연구소장을 역임한 알버트 비어만을 영입했다. 현대기아차 시험고성능차 부사장에 임명해 고성능차 개발과 주행성 향상 등 임무를 맡겼다. 2015년 현대차는 벤틀리 수석 디자이너 출신 루크 동커볼케를 영입했다. 루크 동커볼케는 람보르기니 디자이너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비슷한 시기에 람보르기니 브랜드 총괄을 지낸 맨프레드 피츠 제럴드도 불러들였다. 피츠 제럴드는 제네시스 전량담당 전무 직함을 달고 현대차가 새로 론칭한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 브랜드를 키우는 임무를 맡았다. 비슷한 시기에 인지도 높은 외국인 임원 3명을 영입한 일은 업계를 놀라게 한 뉴스였다. 외국인은 아니지만, 벤틀리 총괄 출신 이상엽 디자이너도 현대차 상무로 합류했다.



외국인 임원이 한국에 와서 꼭 잘 되지만은 않는다. 기업 문화나 지역적인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적응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도 많다. 현대기아차가 영입한 임원들은 대체로 잘 적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과 또한 두드러져서 잘 불러들였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회사에서도 적극적으로 밀어주는 모양새다. 지난해 12월 28일 현대차그룹 정기인사에서 로크 동커볼케는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1월 5일 인사에서는 알버트 비어만이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두 번째 외국인 사장이다.

이들 외에도 자동차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외국인 임원들이 계속해서 현대기아차로 들어오고 있다. 지난해 6월에는 폭스바겐그룹 중국 디자인을 총괄하는 사이먼 로스비가 현대차 디자인 상무로 들어왔다. 10월에는 BMW 7시리즈와 M 브랜드 플랫폼 개발을 주도한 파예즈 라만이 제네시스 아키텍처 개발실장으로 현대차에 발을 들였다.



현대기아차의 외국인 임원 영입을 어떻게 봐야 할까? 글로벌 경쟁 시대에 국가 경계는 무의미하다. 성과를 낼 수 있다면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 자동차 업계만 봐도 인재 이동은 국가와 기업을 가리지 않고 활발하게 이뤄진다. 자국 임원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과제가 있다면 다른 나라에서 일하는 누군가를 불러와야 한다. 폐쇄적으로 자국 임원만 고집하면 경쟁 사회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현대기아차도 규모 면에서는 많은 발전을 했다. 제품 수준도 높아졌고 상품성도 좋아졌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하거나 지지부진한 부분은 남아 있다. 몇 십 년 먼저 생겨 그만큼 노하우를 더 쌓았고, 자동차 문화가 뼛속까지 파고든 나라에서 성장한 자동차회사와의 차이는 존재한다.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내부 인사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외국인 임원을 영입해 약점을 보완하는 열린 자세는 환영할 일이다. 아니 오히려 더 일찍 받아들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원론적으로 외국인 임원 영입은 잘 하는 일이지만, 심정적으로는 아쉬움이 크다. 현대기아차는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회사다. 규모만 놓고 보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거대 기업이다. 왜 자체적으로 사람을 키워서 발전하지 못할까? 현대기아차에서 피터 슈라이어나 루크 동커볼케, 알버트 비어만 같은 인재는 나올 수 없을까? 외국인 임원들이 들어와서 해당 분야는 눈에 띄게 개선되고 발전했다.

그런데 그 성과는 결국 남의 손에 의해 이뤄진 것이나 다름없다. 굳이 ‘남’이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이들의 역량의 근간 때문이다. 이들이 오랜 세월 쌓아 올린 역량은 그가 속한 조직에서 완성된다. 이들이 현대기아차에 왔다고 하루아침에 현대기아차만의 새로운 무엇이 생기지 않는다. 이전 경험을 토대로 할 수밖에 없다. 유명 디자이너가 회사를 옮기면 이전에 하던 스타일이 옮긴 브랜드에 표현되는 경우를 수없이 봐왔다. 기술 분야도 마찬가지다.



국내 일부 프로스포츠에서는 외국인 용병을 쓴다. 외국인 용병과 국내 선수의 실력 격차는 크고 대체로 소수의 외국인 용병이 승패를 좌우한다. 결과만 놓고 본다면야 승수를 올리고 우승도 하니 투자 대비 효과는 높다. 하지만 국내 선수가 들러리에 불과한 이런 팀 구성이 바람직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만약에 국제 경기라면 어떨까. 열세를 만회하고자 외국인 선수를 영입해서 우승한다면 그게 과연 진정한 승리일까.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자국 선수를 키우고, 훌륭한 선수가 나올 저변을 확대하는데 투자하는 게 우선 아닌가 싶다.

냉혹한 기업의 경쟁 세계에서 출신을 따지는 일은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국가를 대표하는 기업이라면 그만의 정체성을 갖춰야 한다고 본다. 과정에서 생성되는 전통이야말로 정체성의 근간이다. 외국인 임원이 ‘신의 손’으로 성과를 낸다 한들 결국 ‘남의 손’으로 일군 성과일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evo 한국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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