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지극정성 보이는 현대차 i 시리즈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유럽에서 현대자동차 주력 모델은 SUV 투싼과 해치백 i30다. 둘 다 C세그먼트 차량으로 가장 경쟁이 치열하고 판매량이 많은 카테고리에 있다. 그중 투싼은 SUV 붐과 맞물려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 EU와 주변국 포함 41개 나라의 자동차 판매량을 집계하는 focus2move에 따르면 투싼은 양산 모델 중 판매 순위 20위권에 있다. 투싼보다 더 팔리는 SUV는 한 손에 꼽힐 정도다.

반면 유럽 현대자동차의 상징적 모델인 i30는 요즘 다소 힘이 빠졌다. B세그먼트 i20나 경차급 i10보다 판매량이 못하다. 더 문제는 동급 경쟁자 중 i30보다 판매량이 적은 모델이 몇 안 된다는 것이다. 투싼과 상황이 반대라 할 수 있다. 현대 입장에서는 i30가 선전을 해줘야 이익 면에서도, 그리고 브랜드 가치 측면에서도 도움이 되는데 그렇지 못하니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 할 수 있는 건 다 하겠다는 현대

현대는 요즘 부쩍 유럽에서 i 시리즈에 공을 들이고 있다. 매우 공격적이고 전사적으로 시장에 매달리고 있는 듯하다. 얼마 전 독일에서는 i30 관련한 작은 소식이 있었다. 현대 독일 법인은 스포티하게 꾸미기를 원하는 고객들을 위해 i30 스포티 인디비듀얼 서비스를 시작했다.

정면 범퍼와 휠, 리어 디퓨저 장착, 타원형 배기구 디자인 적용과 스포츠 스프링 세트를 통해 최저 지상고를 30mm 낮출 수 있는 서비스 등이 포함돼 있다. 그 외에도 화려하게 꾸밀 수 있도록 다양한 옵션이 마련돼 있다.



또 i30와 i30 왜건이 독일 운전 실습용 차량 자격시험을 통과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독일에서는 비교적 좋은 자동차가 면허 학원에서 실습용으로 이용되고 있다. 골프가 가장 많고 BMW나 벤츠 등 고급 브랜드 모델들도 자주 보인다. 현대자동차에겐 i30가 면허 학원에서 많이 쓰일수록 자연스럽게 인지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에 관련 영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것이다.



이 외에도 유럽 곳곳에서 현지 고객들을 위한 이벤트와 홍보를 진행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러시아 월드컵 공식 파트너인 현대자동차엔 5월이 기다려질 것이다. 과거처럼 월드컵용 한정 모델 등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모터스포츠에서 이룬 성과도 만만치 않다. WRC에서 i20는 랠리카로 치열하게 승부를 펼치고 있다.

여러 언론을 통해 WRC에서의 활약상이 많은 유럽인에게 전해졌다. 또 최근에는 i30 N TCR이 중국에서 열린 국제 투어링카 경주 대회(TRC)에서 임시 출전 자격으로 우승하기도 했다. i30 N은 공식 출시 전 뉘르부르크링에서 벌어진 24시간 내구레이스에서 참가한 2대의 차량이 모두 완주하기도 했다. 24시간 동안 244랩, 총 6천km 이상을 달려 얻어낸 결과였다.



◆ 공격적 신차 출시

현대의 i 시리즈에 대한 투자와 열의는 신차 출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동안 i30는 유럽에서 3도어와 5도어 해치백, 그리고 왜건 정도 외에는 이렇다 할 파생 모델이 없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것처럼 i30 N의 등장으로 현대도 드디어 유럽에서 고성능 콤팩트 해치백 경쟁을 할 수 있게 됐다. 비록 최근 독일 유력한 전문지 아우토빌트가 실시한 푸조 308 GTI와의 비교 테스트에서 밀리긴 했지만 이제 첫 발을 내디딘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유럽에는 골프 GTI나 골프 R, 오펠 아스트라 OPC(280마력), 세아트 레온 쿠프라 (300마력), 포드 포커스 RS (350마력) 등, C세그먼트 고성능 모델들이 저마다 능력을 뽐내고 있다. 오랜 세월 그 시장에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했던 현대에게 i30 N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지난해 여름 출시된 i30 콤비는 왜건 모델에 애정이 깊은 유럽인들에게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설 수 있다. 최근에는 i30 패스트백도 출시됐는데, 경쟁사들이 해치백과 전형적 세단으로 승부를 볼 때 현대는 변형된 패스트백을 들고나와 신선함으로 경쟁하려 한다. i30 해치백보다 30mm 낮고 115mm나 긴 이 파생 모델은 쿠페 구조 탓에 스포일러 수준의 킥 업(kick up) 형상이 독특한 인상을 주고 있다.



이로써 i30는 기본 해치백에 왜건, 그리고 고성능 N 모델과 패스트백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에 소형 B세그먼트의 경우도 i20와 i20 쿠페, 그리고 미니밴 형태의 iX20와 온오프로드 겸용인 i20 액티브까지 라인업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비유럽 브랜드 중 B,C세그먼트에서 이렇게 다양한(8가지) 모델을 내놓고 있는 곳은 현대가 유일하다. 유럽 브랜드까지 포함한다고 해도 폭스바겐을 제외하면 오펠과 스코다와 함께 2위 수준이다.



◆ i 시리즈가 살아야 현대가 산다

토마스 슈미트 현대 유럽법인 부사장은 지난해 7월에 2021년까지 유럽에서 아시아 자동차 브랜드 넘버 1이 되기 위한 4가지 전략을 발표했다. 그리고 그 내용에서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이 i 시리즈였다. 이 시리즈가 유럽 성공의 기반이 되고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 성공은 판매량의 성공이었을 뿐 현대가 바라는 브랜드 이미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것과는 지금까지 거리가 있었다. 따라서 i30 N이나 패스트백 등 파생 모델이 성공해야 현대가 바라는 브랜드 가치를 지금보다 더 끌어 올릴 수 있게 된다. 유럽에서는 i 시리즈가 곧 현대자동차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격 부담과 해치백 및 왜건에 대한 거리감으로 인해 겨우 버티고 있지만 유럽에서 i 시리즈는 현대차를 지탱하고 있는 핵심이다. 그렇기에 현대는 전력을 다해 뛰고 있으며 그 움직임에는 절실함이 묻어 있고, 뭔가 그들이 초심으로 돌아간 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한다.

이익 많은 크고 비싼 차 잘 파는 한국에서,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한국에서는 오랫동안 볼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유럽에서 현대는 죽을 힘을 다해 경쟁하고 있다. 과연 이들의 유럽 생존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을까? 지금 같은 모습이라면, 지금 같은 태도라면 안 될 것도 없다. 수십 년 전 한국에서 그랬듯.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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