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벤츠의 역경과 <화유기>의 시련
<화유기> vs 메르세데스 벤츠 (1)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한때 벤츠라고 하면 고급 수입차의 대명사처럼 일컬어져 왔다. 그래서 그 차 모양은 자세히 기억 안 나도 특유의 엠블럼은 누구나 기억했다. 동그란 원을 삼등분 한 그 엠블럼은 하늘, 땅, 바다의 3개 부분에서 최고가 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벤츠의 모기업이었던 다임러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자동차만이 아니라 비행기, 고속정 엔진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엄청난 포부를 담고 있는 엠블럼이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각인된 이미지의 효과는 상당하다. 벤츠는 아무나 탈 수 있는 차가 아니라는 걸 그 엠블럼 하나로 압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급 브랜드 이미지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누구나 탈 수 있는 대중적 이미지가 되지 못하는 족쇄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급 수입차들도 저변이 넓어지고 있는 상황에 그래서 벤츠는 위기를 맞은 바 있다. 위기는 또한 기회가 되기도 하는 법. 벤츠는 위기를 직시하며 혁신을 추구해 대중의 사랑을 받는 프리미엄 브랜드로서의 이미지 변신을 성공시켰다. 그런데 최근 벤츠가 협찬하는 드라마 tvN <화유기>가 공교롭게도 드라마 2회 만에 방송사고와 현장의 사고까지 겹쳐 큰 위기를 맞았다. 과연 <화유기>는 벤츠가 그랬던 것처럼 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 자동차 전문기자인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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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드라마는 : <화유기>는 <서유기>의 이야기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했다. 삼장의 피를 갖는 숙명을 지니게 된 진선미(오연서)는 세상의 갖가지 요괴들의 공격에 직면하는데, 천상의 신선이었다가 인간계로 내려온 손오공(이승기)의 보호를 받는다. 진선미가 손오공의 손목에 금강고를 채워놓았기 때문인데, 그 금강고는 <서유기>에서 손오공의 머리에 고통을 가하는 방식이 아니라 손오공의 심장에 닿아 삼장인 진선미를 사랑하게 만든다. 결국 삼장이 손오공을 위시해 저팔계(이홍기), 사오정(장광)과 함께 인간계에 출몰하는 요괴들을 물리쳐가며 소명을 완수하는 이야기의 드라마이고, 또 삼장과 손오공의 이야기를 멜로로 해석한 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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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이하 정) : 중국의 고전 <서유기>에서 손오공은 근두운이라는 구름을 타고 다닌다. <서유기>를 우리 식으로 재해석한 tvN 드라마 <화유기>에도 손오공(이승기)이 등장하는데 그가 근두운이 아니라 벤츠를 타고 다니는 걸 보고 좀 놀랐다. 사실 신선이기 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곳은 뿅하고 이동할 수 있으니 차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 역시 자동차는 기능적인 면만 소구하는 건 아니라는 걸 손오공의 벤츠가 얘기해주는 것 같더라. 그런데 벤츠라고 하면 굉장히 고급 브랜드의 대명사가 아닌가.

강희수(이하 강) : “그 사람 벤츠 탄다더라.” 일상에서 한번쯤은 들어봤음 직한 이 말은 복잡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앞뒤 문맥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 될 수 있는 함의가 있다. 다양한 해석 속 공통 된 한 가지는 “어쨌든 그 사람은 크게 성공했다”는 속뜻이다. 그런데 메르세데스-벤츠의 내부에서 해석하는 ‘벤츠를 탄다’는 말의 상징성은 좀 더 조심스럽고 예민하다. 스스로 ‘변화’의 발목을 잡는 굴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 사실 특별한 사람들, 성공한 사람들만 탈 수 있는 차 같은 브랜드 이미지는 차량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는 조금 장벽이 될 수도 있겠다. 또 요즘처럼 하루가 다르게 트렌드가 변하고 있는 시대에 어딘지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건 좀 고답적인 느낌마저 줄 테니 말이다.



강 :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는 지난해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서 6만8,861대를 팔았다. 2년 연속 국내 수입차 브랜드 판매 1위를 달성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타는 고급 브랜드’로만 남아 있었다면 수입차 판매 1위는 어쩌면 모순일 수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군상이 그렇게 많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상위 클래스뿐만 아니라 엔트리부터 SUV까지 다양한 세그먼트에서 인기를 얻지 않고는 불가능한 결과물이다. 이 같은 성과의 배경에는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적 교훈과 궤를 같이하는 선순환이 존재한다.

정 : 그 이야기는 벤츠가 과거와는 다른 브랜드 이미지 노선을 선택했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면 벤츠가 드라마 협찬을 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라고들 한다.

강 : 좀처럼 드라마 협찬을 하지 않던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최근 <화유기>에 대대적으로 물량을 투입했다. 이승기의 군 제대 후 첫 작품이자, 고대 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 해 기대가 높았던 드라마가 <화유기>다. 이 작품에 벤츠는 무려 8종의 차량을 지원했다. 그만큼 젊은 세대에게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이승기와 <화유기>에 거는 기대가 컸다는 얘기다. 그런데 묘하게도 <화유기>는 시작과 동시에 엄청난 시련을 겪었다. 벤츠의 위기극복 과정이 절로 떠오른다.



정 : 사실 <화유기>가 이런 위기를 겪을 줄은 전혀 몰랐었다. 첫 회만 해도 비지상파 드라마로는 상당히 높은 5% 시청률로 시작하며 좋은 느낌을 주었고, 무엇보다 어색할 것 같았던 CG나 판타지가 가미된 이야기가 의외로 몰입도가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홍정은, 홍미란 작가의 필력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홍자매는 판타지와 코미디를 잘 엮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다소 황당한 이야기도 코미디가 워낙 탄탄하기 때문에 캐릭터를 통해 납득시키는 힘이 있다. 특히 손오공과 삼장의 관계를 멜로 관계로 재해석한 부분은 정말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물리적인 구속이 아니라 ‘아름다운 구속’으로 둘 사이를 묶는다는 설정이 아닌가. 그런데 이런 기대감이 2회 만에 무너져버렸다. 2회 중간쯤 지나 갑자기 드라마가 끊기더니 광고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한참을 지나 드라마가 재개되었지만 결국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하고 방송을 끝내는 사태가 벌어졌다. CG처리가 잘못되어 와이어가 그냥 드러나는 장면도 나왔다. 결국 방송사는 작업이 늦어져 생긴 방송 사고라는 걸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런데 사고는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방송 나가기 며칠 전 현장에서 스텝이 작업 중 추락해 하반신 마비에 뇌사 판정을 받게 된 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 결국 드라마는 한 주가 결방되고 그 다음 주에 겨우 방송이 재개되었다.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여전히 불안한 게 사실이고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끝까지 마무리될 수 있을까가 걱정이다. 이 기회에 드라마 촬영 현장의 무리한 강행군 관행을 고쳐야 한다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다. 최대의 기대작에서 최고의 위기를 맞은 셈이다.



강 : 메르세데스-벤츠도 ‘최상급 이미지’ 탓에 위기를 맞은 적이 있다. BMW, 아우디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한층 젊고 감각적인 분위기로 벤츠의 아성을 위협했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벤츠의 브랜드 이미지는 점점 나이를 먹어갔다. ‘사회-경제적으로 성공한, 장년층이 타는 차’로 점점 위축되고 있었다. 과감한 자기 개혁이 필요했다. 마치 소명(召命)이라도 받은 듯, 꼭 필요한 인물이 등장했고 개혁의 방향은 옳았다.

정 : 구체적으로 누가 어떤 개혁을 시도했던 건가.

강 : 메르세데스-벤츠의 변혁을 주도한 인물은 디터 제체 회장이다. 2006년 1월부터 다임러 AG 이사회 의장이자 메르세데스-벤츠 그룹 회장에 취임한 제체는 굵직한 변화를 시도한다. 크게 세 가지다. 디자인의 방향성을 ‘모던 럭셔리’로 바꾸고,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하는 다양한 프리미엄 콤팩트카를 론칭했으며,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SUV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일이었다. 벤츠 브랜드 애호층의 반발이 예상 되는,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하지만 ‘이미지의 굴레’를 벗기 위해서는 스스로 알을 깨지 않을 수 없었다.



정 : 그러고 보니 <화유기>에서 손오공이나 저팔계로 나오는 이승기, 이홍기가 벤츠를 끄는 모습이 왜 특별하게 느껴졌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사실 벤츠라고 하면 어딘지 좀 나이 지긋한 성공한 중년들이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의 벤츠는 그 틀을 여지없이 깨고 있었으니 말이다. 거기 등장하는 벤츠의 디자인 자체도 상당히 젊은 느낌이었다.

강 : ‘모던 럭셔리’의 디자인 개혁은 고든 바그너 디자인 총괄의 주도하에 진행됐다. 핵심적인 디자인 요소를 계승하면서 장중함은 버리고 세련미를 찾아나갔다. 장구하게 흘러오던 헤리티지에서 ‘예스러움’을 걷어내자 세월의 무게감이 담긴 세련미가 탄생했다. 모던 럭셔리는 S클래스에서부터 A, B클래스까지 세그먼트를 넘어 어색함 없이 어울려 나갔다. A, B클래스의 성공은 젊은층도 무난히 벤츠를 즐길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고, G-GLS-GLE-GLC-GLA로 이어지는 SUV 라인업은 ‘벤츠=고급 세단’의 고정 관념을 깨뜨렸다.



(2부로 이어집니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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