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휘의 자동차 버킷리스트] 어디선가 울려 퍼지는 매력적인 엔진 소리에 고개를 돌려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눈에 보이는 멋진 차보다 귀로 들리는 멋진 자동차에 먼저 반응하기도 합니다. 레이스 트랙을 찾는 관중들도 사실 자동차를 보기 보다는 듣기 위해 몰려듭니다. 레이스 트랙은 워낙 넓어서 한 지점에서 모든 경기장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제대로 경기 흐름을 이해하려면 차라리 TV 중계를 보는 편이 낫지만 질주하는 자동차의 엔진음은 트랙 어느 곳에서든 들리니까요. 게다가 스피커는 그 자극적이고도 매력적인 원음을 제대로 전달해 주기도 어렵습니다.
엔진이나 배기관에서 흘러나오는 맥동의 사운드는 감성적 평가 영역에 속합니다. 수치로 환산할 수 있는 부분은 고작 소리의 크기 정도인데 같은 크기 안에서도 여러 가지 톤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건 소리의 양이 아니라 질이니까요. 그래서 매혹적인 소리를 내는 하나의 악기로써 꼭 한 번 차고에 넣고 싶은 자동차 버킷리스트를 생각해 봤는데요. 6기통 엔진 자동차 중에서 자연흡기, 수퍼차저, 터보차저 부문의 명기를 꼽아 봤습니다.
소리를 들어보실 수 있도록 영상도 첨부하오니 꼭 이어폰을 꼽고 감상해보시기 바랍니다.

먼저 6기통 터보 모델입니다. 최근 배기가스 규제 대응을 위해 고성능 차량 역시 다운사이징 터보 엔진을 탑재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터보차저는 실린더에서 연소된 후 대기로 방출하는 배기 에너지를 이용해 터빈을 돌려 과급에 필요한 동력원을 취합니다. 배기가스의 통로도 복잡해지고 유속을 비롯한 배기 에너지가 그 과정에서 터빈 운동 에너지 생성량 이상 줄어들기 때문에 배기 사운드가 선명하지 않고 탁하거나 호소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죠.
흔히 “터보화가 되면서 사운드가 약해졌어!” 라는 아쉬움이 여기서 비롯됩니다. 실제로 많은 스포츠카들이 터빈을 얹고 감성적 만족도가 떨어진 사례가 적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터보차저를 얹고도 여전히 아름다운 음색을 연주하는 흔치 않은 녀석이 있습니다. 바로 BMW M 시리즈의 막내 격인 M2 쿠페입니다. 배기량은 같은 3리터지만 트윈터보를 장착한 M3/M4보다 선율이 곱고 오랜 기간 사랑 받았던 BMW 직렬 6기통의 자연흡기 엔진 음색과 아주 유사한 소리를 구현합니다. 형님 격인 M4와 비교하면 속도나 성능이 떨어지지만 깔끔한 사운드 덕분에 드라이브가 더 즐겁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가속 페달을 밟으면 매끄럽게 소프라노 볼륨을 올려가고 발을 떼면 굵직하게 그르렁거립니다. 신사와 야수가 차 한 대에 숨어있는 느낌이에요. 지하주차장처럼 사면이 막혀 반향이 일어나는 공간에서 드리프트 공연을 한 적이 있는데 순식간에 주차장이 멋진 콘서트홀로 변한 듯 했습니다.
과급기 엔진 중에 배기 에너지를 훼손하지 않는 수퍼차저 방식도 있습니다. 엔진의 크랭크와 기계적 연결을 통해 과급기의 동력원을 취하는 구조입니다. 기본 구성은 엔진과 과급기를 풀리와 벨트로 연결하나 기술이 발전하면서 클러치가 들어가거나, 전기 모터를 활용해 에너지 손실을 줄이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모든 구조는 엔진의 흡기 밸브 이전에 자리하므로 배기 밸브 이후 머플러까지의 구성은 자연흡기 엔진과 다르지 않습니다. 배기 유동을 오롯이 배기사운드로 전환할 수 있다는 의미죠. 뿐만 아니라 수퍼차저가 고회전하면서 만들어 내는 고주파의 위잉 거리는 소리 역시 엔진 음색을 더 앙칼지게 만들어 줍니다.

엔진 회전수와 비례해 수퍼차저 작동음도 음량이 올라갑니다. 역대 경험했던 6기통 수퍼차저 엔진 중에 가장 마음을 빼앗긴 차는 재규어 F타입이었습니다. 기다란 앞쪽 후드 아래에서 맹수가 상대를 위협할 때 낼 법한 포효가 울려 퍼지고 범퍼 가운데로 몰린 두 개의 배기관은 기름기 하나 없는 마른기침을 거칠게 내뱉습니다. RPM 바늘이 상승하다 떨어지는 순간에는 연사 모드에 둔 소총 소리가 몇 초간 이어집니다. 어느 순간이건 근사한 타악기 연주를 관람하는 기분입니다.
어느 늦은 밤 강원도의 굽이치는 옛 국도를 홀로 달렸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아주 추운 날씨였지만 지붕을 안 내릴 수가 없었죠. 굳이 회전수를 다 쓰지 않아도 엔진소리는 활발했고 머플러 총성은 산골짜기에 메아리가 되어 주변 초소병을 긴장시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개인적으로 F타입은 V6 수퍼차저가 V8 엔진이 하나도 부럽지 않을 사운드 경험을 선사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 귀를 녹일 듯 한 최고의 소리는 역시나 자연흡기 엔진이었습니다. 수평대향 6기통 엔진과 스포츠 배기 시스템이 조합된 박스터 GTS입니다. 카이맨 GTS 형제도 기본적으로 같은 파워트레인을 공유합니다만, 보다 생생하게 엔진 소리와 배기음을 즐길 수 있는 로드스터 형태가 가장 탐이 나네요. 앞서 언급한 두 모델과 달리 엔진음과 배기음이 뒤쪽에서 자연스럽게 화음을 이루면서 연주하는 점이 특색이죠.
원래 박스터는 포르쉐 브랜드 안에서 가격적으로나 성능적으로 911 카레라 아래에 위치해야 하는 서열의 불리함이 있는 모델입니다. 그래서 구조적으로 더 유리한 미드십임에도 언제나 911보다 작은 배기량과 낮은 출력으로 봉인되어 있었죠. 제가 포르쉐에서 근무하던 10년 전에도 이미 박스터에 911 엔진을 조합한 테스트가 한창이었는데 너무 위력적인 성능을 발휘한 탓에 911을 위해 출시를 미뤄왔죠. 코드명 981 박스터 GTS는 카레라의 엔진을 얹고 911의 성능 영역에 접근한 첫 번째 박스터이자 마지막 자연흡기 GTS 모델입니다.

속도를 올릴 때에는 굵고 낮은 수평대향 특유의 포르쉐 노트가 가슴을 자극하고 속도를 낮출 때에는 천둥 구름을 어깨 위에 몰고 다니는 듯 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마치 제우스신이 GTS 뒤에 시커먼 먹구름을 몰고 와 천둥번개를 쏟아낼 거 같은 기분이랄까요? 배기음은 분명 머플러 끝에서 뿜어져 나오지만 소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느낌이죠. 718 박스터 GTS가 첨단 기술력으로 무장한 4기통 터보로 등장했습니다만 제우스를 섭외하는 데는 실패한거 같아 아쉽습니다.
여러분의 버킷리스트를 채울 최고의 6기통 사운드는 누구인가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강병휘(레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