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66만원. 요즘 출시되는 자동차라면 USB 포트나 블루투스 연결기능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다. 스마트폰 무선충전 기능을 적용한 자동차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내 차? 무선충전은 언감생심이고 이보다 더 값싼 요즘 차에 기본인 블루투스는커녕 USB 연결포트조차 없다. 불과 6년 전쯤 구입한 자동차인데 벌써 구식 중의 구식이 돼버린 셈이다. 어디 그뿐인가? 애플 카플레이, 정면 추돌방지나 차로 이탈 경고 같은 ADAS 패키지처럼 6년 전 차에선 꿈도 꾸지 못했던 완전히 새로운 기술들이 최신 자동차에는 즐비하다.

문제(?)는 이 차를 계속 소유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 나올 자동차들과 수준 차이는 점점 더 벌어질 거란 점이다. IT 분야와 융·복합이 가속화되고 있어서다. 그러니 내 차의 부족한 편의성에 대한 불만 역시 점점 커질 게 뻔하다. 애프터마켓 제품으로 보완하는 방법이 있지만 순정처럼 기존 인터페이스와 매끈하게 어우러지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차를 최신형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요즘 자동차의 발전·변화 속도를 보면 그 또한 과연 최선의 방법일지 자신 없다. 아무리 최신식 자동차라 해도 오랜 할부 기간이 끝나고 나면 다시 구식 중의 구식이 돼 있을 테니 말이다.

항상 자동차를 최신 상태로 이용하고 싶은 이들에게 솔깃한 제안이 있다. 바로 ‘구독’(subscription) 서비스다. 구독은 보통 잡지 등을 구매해 볼 때 쓰는 표현이라 자동차를 구독한다는 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 선뜻 와 닿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주변에는 이미 다양한 구독 서비스가 있다. 멜론이나 애플뮤직 같은 음원 스트리밍, 영상 콘텐츠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 오피스 365 등의 생산성 프로그램을 매달 얼마씩 지불하고 이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도 기본 개념은 이와 다르지 않다. 월간 혹은 연간 이용료를 낸 구독자에게 자동차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지금도 그와 비슷한 상품은 있다. 리스, 렌털, 카셰어링 등이다. 구독 서비스가 이들과 차별화되는 건 이용 기간과 서비스 내용이다. 최소 2~3년 동안 이용하는 리스나 장기 렌털과 달리 자동차 구독 이용 기간은 짧게는 한 달, 길어야 1년 정도다. 또 이용 계약을 맺은 자동차 하나만 탈 수 있는 일반적인 자동차 임대 서비스와 달리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구독 기간 동안 정해진 횟수와 가짓수만큼 자동차를 바꿔 탈 수 있다. 나아가 구독료에는 보험료와 차량 유지관리 비용이 포함된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 이외의 번거로운 문제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얘기다.
자동차 구독은 아직 완벽하게 갖춰지거나 널리 쓰이는 서비스는 아니다. 최근 1~2년 새 미국 일부 지역과 유럽 등에서 제한적으로 운용되기 시작했고, 운용 주체도 일부 자동차 브랜드나 벤처 기업 정도에 불과하다. 자동차 브랜드 중에는 캐딜락과 포르쉐, 포드가 대표적이다. 캐딜락은 지난해 초 북(Book)이라는 이름의 월간 구독 서비스를 뉴욕에서 시작했다. 가입비 500달러에 최소 월 구독료 1800달러로 CT6와 에스컬레이드, 고성능 V 세단 등을 제공한 이 서비스는 대상 지역을 LA와 댈러스 등으로 확대해가는 중이다.

포르쉐 미국 법인이 애틀란타에서 시범 운용 중인 포르쉐 패스포트(Porsche Passport)는 론치(Launch)와 액셀러레이터(Accelerate) 두 가지 상품으로 구성된다. 월 구독료 2000달러의 론치 구독자는 718 박스터와 카이맨 S, 마칸 S와 카이엔 등을 바꿔 탈 수 있다. 매달 3000달러짜리인 액셀러레이터 구독자는 여기에 911 카레라 S, 파나메라 4S, 카이엔 S E-하이브리드 등이 포함된 22개 차종의 이용이 가능하다.
다양한 캐딜락이나 포르쉐를 바꿔 탈 수 있다는 매력은 있지만 구독 비용이 1800달러(약 200만원)에서 3000달러(약 330만원)나 한다는 데선 멈칫할 수밖에 없다. 포드 캔버스(Ford Canvas)는 바로 그 지점을 건드린다. 구독료는 월 400달러(약 44만원) 정도로 할부 구매했을 때의 월 납입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단 이 구독 서비스는 출시된 지 3~4년쯤 지난 ‘중고차’로 운용된다. 그 외에 보험료, 유지관리비용 등이 구독료에 포함되며 정해진 횟수만큼 차를 바꿀 수 있는 점 등은 여느 구독 서비스와 다르지 않다.

최근 이 분야에 뛰어든 볼보의 케이스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국 50개주와 유럽 7개국 시장에서 케어 바이 볼보(Care by Volvo)라 소개된 볼보의 구독 서비스는 올 봄부터 판매에 들어가는 신형 크로스오버 XC40 하나만을 대상으로 한다. 기본 구독기간은 2년인데 1년이 지나면 구독료를 올려 새차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고, 2년의 구독기간이 끝난 뒤에는 그간 이용한 XC40을 인수하거나 다른 XC40으로 연장하거나 혹은 구독을 해지할 수 있다. 이용요금은 보증금 500달러에 월 기본 구독료 600달러(약 66만원)로 캐딜락(북)이나 포르쉐(패스포트)에 비해 매우 저렴한(?) 편이다.

물론 구독 서비스는 모든 자동차 구매자들을 위한 상품은 아니다. 예컨대 자녀가 많은 소비자라면 아무리 구독 서비스에 다양한 차종이 준비돼 있어도 이용할 수 있는 차종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자동차 인터페이스의 개인맞춤화가 미진한 상황에서 번번이 운전 환경이 바뀌는 것에 불편을 느끼는 소비자나, 매달 만만찮은 값을 치르는 자동차가 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람도 적지 않다. 최고의 운전 경험을 다양하게 즐기려면 그만큼 비싼 구독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단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도 구독 서비스는 부담감이 크다. 구독 서비스로 운용하는 자동차의 관리, 구독이 끝나 반환된 차량의 처분이나 운용, 기존 자동차 임대 사업자와의 충돌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어서다(물론 판매가 부진한 차종을 구독 서비스로 제공하거나 중고차 가격의 적극적인 관리 등 그에 상응하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 존재할 테지만).
그럼에도 자동차 제조사들이 새로운 임대 서비스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시장 환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선 설명처럼 자동차 기능의 업그레이드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완성차 제조사와 IT 기반 기업들이 온-디멘드 방식의 개인맞춤형 환경 구축에 심혈을 기울이는 까닭이다. 자율주행 기술이 몰고 올 구매 패턴의 변화(소유보다 공유가 각광받는)도 간과할 수 없다. 2020년경이면 스트리밍과 스마트기기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가 자동차 구매 시장의 약 40%를 차지할 거란 점까지 고려하면 자동차 판매 방식의 변화는 더더욱 불가피하다.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인 구독 서비스는 자동차 임대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미미하다. 하지만 전망까지 어둡진 않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다수의 자동차를 다수의 구독자가 공유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미국 연구집단 리싱크X(RethinkX)는 2024년에 이르면 미국 내의 공유 자동차 수가 개인 또는 집단이 소유한 자동차 대수를 넘어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아울러 미국에 본사를 둔 컨설팅기업 프로스트&설리번은 현재 유럽 내에서 370만대 정도인 개인 리스 시장 규모가 2021년이면 460만대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트렌드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