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기관과 순수전기차 사이 전동화 솔루션 무엇이 적합한가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이번 주에 저는 닛산이 주최한 ‘닛산 퓨쳐스’라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첨단 기술과 이를 통한 미래 자동차와 사회의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행사 내내 계속되었습니다. 인상적이었습니다. 순수 전기차인 신형 리프도 더욱 강력해진 성능과 높은 효율, 그리고 다양한 안전 장비들도 매력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전혀 엉뚱한 것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 소형 SUV하고 똑같은 크기의 소형차인 닛산 노트 e-파워(e-POWER)입니다. 이유는 가장 저렴하게 전기차의 장점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가격이 일반 휘발유 모델보다 조금 비싼 수준입니다. 어쩌면 디젤 모델과는 거의 같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면서도 전기차 특유의 매끄럽고 조용한 주행 감각, 강력한 토크가 즉각적으로 발휘되는 전기 모터만의 ‘스트리트 파이터적인 고성능’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최대 리터 당 37km인 공인 연비는 디젤차도 간단하게 능가합니다. 단 하나 어색한 것이 있다면 배터리가 고갈될 때마다 들려오는 엔진 소리뿐입니다.

기술적으로 닛산 노트 e-파워는 EREV, 즉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 혹은 직렬 하이브리드 모델에 해당합니다. 즉, 엔진은 있지만 오로지 배터리 충전용으로만 사용되고 바퀴를 굴리는 것은 전기 모터가 담당한다는 뜻입니다. 이전에도 BMW i3도 레인지 익스텐더 옵션을 선택하면 EREV로 변신할 수 있었고 쉐보레의 Volt EREV도 EREV였습니다.



저는 지난 몇 해 동안 ‘내연기관과 순수전기차 사이의 과도기적, 아니 현실적인 전동화 솔루션으로 무엇이 적합한가?’라는 질문에 항상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바로 EREV라구요. 그 이유는 EREV는 하이브리드(HEV)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PHEV)가 가질 수 없는 미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이브리드나 PHEV는 바퀴를 엔진과 전기 모터가 각각 또는 함께 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한 변속기가 필요하고 전기차와 엔진차의 부품을 모두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매우 복잡하고 결국에는 원가를 낮추는 데에 한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EREV는 순수전기차에 발전용 엔진을 추가하는 간단한 원리이기 때문에 구조가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배터리 가격이 비싼 초기에는 작은 배터리를 사용하고 좀 더 자주 엔진으로 충전하며 사용하다가 나중에 배터리 가격이 매우 저렴해지면 엔진을 들어내고 더 큰 배터리로 교체하면 완벽한 순수 전기차로 진화할 수도 있습니다. 미래가 있는 것이죠.

그런데 어떻게 닛산 노트 e-파워는 쉐보레 Volt EREV나 BMW i3 EREV보다 훨씬 저렴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차나 브랜드의 급에서 차이가 있기도 하지만 가장 큰 차이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바로 배터리의 크기입니다. Volt와 i3의 배터리 크기는 20~40kWh로 순수 전기차와 같습니다. 즉 발전용 엔진은 거리 확장용 옵션인 셈이었습니다. 따라서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닛산 노트 e-파워의 배터리는 일반 하이브리드 모델과 비슷한 1.5kWh입니다. 따라서 작은 배터리를 자주 충전해야 하기 때문에 엔진은 훨씬 자주 켜집니다만 그 대신 가격은 매우 저렴합니다. 그리고 엔진이 자주 켜지기는 하지만 연비는 대단히 높습니다. 주행 속도에 관계없이 엔진이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회전수를 유지하면서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 시장에서 노트 e-파워의 가격은 200만엔 전후입니다. 회사는 다르지만 같은 국내에서 4,300만원대인 일본산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의 최상급 모델이 일본에서 국내 모델 수준의 옵션을 갖추면 가격이 약 450만엔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만일 노트 e-파워가 국내에 도입된다면 2,000만원 전후의 가격도 불가능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닛산은 순수 전기차인 리프 하나로 시장에 큰 영향력을 남기기 어려울 겁니다. 순수 전기차와 더불어 모두를 위한 전기차인 노트 e-파워와 같은 브릿징 모델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닛산 노트 자체는 이미 눈높이가 높아진 우리나라 소비자들에게는 충분한 만족도를 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요즘 핫 한 SUV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접근법의 중요성은 그대로 남습니다. 그리고 이는 국내 브랜드의 전기차 전략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닛산 노트 e-파워가 리프의 하드웨어와 e-페달과 같은 리프의 기능을 대폭 공유하면서 e-파워를 현실적인 전기차로 널리 판매한 것처럼 현대 코나나 기아 스토닉 EV의 하드웨어와 기능을 대폭 적용하고 하이브리드 수준의 작은 배터리와 스토닉의 1.4 MPI 엔진을 이용하여 저렴한 EREV 모델을 생산하는 겁니다.



전기차의 인기가 뜨겁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미래에 전기차의 판매량이 더 늘어나면 전기차의 특권이 사라질 것입니다. 비싼 가격을 상쇄하기 위하여 세금으로 충당되는 전기차 보조금의 총액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충전 요금이 저렴하지만 휘발유나 경유를 덜 사용하게 되면 정부는 세수가 줄어들기 때문에 충전용 전기에 더 많은 세금을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결국은 지금의 특혜는 정당한 수준의 이득으로 축소될 수밖에 없습니다.

급격한 특혜의 축소로 전기차 시장이 성숙되기 전에 죽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엔진차에서 전기차 사이의 현실적인 브릿지는 꼭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아니라 닛산 노트 e-파워와 같은 전기차의 약식 버전인 염가형 EREV가 되어야 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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