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캠핑에 맛들인 활발한 성격의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를 둔 맞벌이 부부에게 적합한 패밀리카를 추천해주세요. 주중에는 출퇴근용으로 이용하기 때문에 연비도 감안하면서 주말에는 야구와 캠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가 있는 패밀리카였으면 좋겠습니다. 모아둔 자금은 많지 않지만 40대 초반 맞벌이라 할부 구매할 여력은 어느 정도 있습니다.”

난처한 의뢰네요. 세상에서 가장 다양하면서도 가장 고르기 힘든 자동차가 바로 패밀리카거든요. 가족과 함께 쓴다는 전제부터 상황이 복잡해질 것임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왜 아니겠어요. 성격, 취향, 바람이 제 각각인 가족 구성원 모두를 일정 수준 이상 만족시켜야 하는 걸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패밀리카로 분류하는 자동차들엔 공통되는 특성이 있게 마련입니다. 보편성이지요. 그럴싸하게 말해 보편성이지 실상은 무난하다, 색깔이 없다, 두루뭉실하다 등의 표현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겁니다.
한국에서 그런 부류의 차는, 음, 너무 많네요. 그래도 대표적인 것을 꼽으라면 중형 세단과 중형 SUV입니다. 한국은 나라도 좁은데 맹목적으로 큰 차만 타려고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실상 중형 세단과 SUV만큼 우리 생활상을 잘 담고 있는 자동차도 찾기 어렵습니다. 딱 한 대뿐인 차로 의뢰인처럼 주중엔 출퇴근용으로 쓰고 주말 레저 활동까지 즐기는 분들이 그만큼 많기 때문이지요.

또 사회가 마이크로 패밀리화됐다고 해도 어른들을 모시거나 멀리 떨어져 계신 부모님을 뵈러 가는 일도 여전히 적잖습니다. 그러니 단 한 대만 소유할 거라면 다양한 경우의 수를 대비해 ‘기왕이면 넉넉한’ 차를 선택하는 게 여러모로 합리적이라 여기는 것이지요. 한국은 도심이 아파트나 오피스빌딩 등 고층건물 위주로 구축돼 있어 주차공간도 터무니없이 부족한 편이 아닙니다. 의외로 도로도 넓고 정비 또한 잘 돼 있고요. 차 몸집이 크더라도 실제 운용 시 불편은 그리 크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자, 문제는 얼마나 큰 차를 선택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다다익선이라고, 집이든 자동차든 넓고 클수록 편리하고 아늑합니다. 차 크기에 대한 부담, 구매나 소유 비용에 대한 부담이 덜하다면 캐딜락 에스컬레이드를 타지 못할 이유도, 벤틀리 벤테이가를 마다할 이유도 없습니다. S 클래스, 7시리즈 같은 독일산 롱 휠베이스 대형세단이나 그들 못지않은 뒷자리 공간을 지닌 캐딜락 CT6나 링컨 컨티넨탈 등 미국산 대형세단도 충분히 고려해봄 직한 후보겠지요. 하지만 밤낮도, 휴일도 없이 살아가는 우리네 중산층 맞벌이 가정을 생각하면 물색없이 그런 차들을 추천할 수 없는 노릇이겠습니다.

의뢰인의 소득이 얼마큼인지, 대출금 상환 등을 포함한 월 생활비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만큼 대상 후보군은 다소 넉넉하게 잡아보겠습니다. 대략 2255만원(쏘나타 2.0 스타일 트림)에서 시작하는 국산 중형 세단부터 4300만원(혼다 CR-V 4WD 투어링)의 일본산 도심형 SUV 상위 트림까지가 이에 해당하겠네요. 그리고 이 가격 범위 내에는 국산 준대형 세단(기아 K7 3105만~3990만원, 현대 그랜저 3405만~4300만원)과 국산 중형 SUV(르노삼성 QM6 2480만~3505만원, 기아 쏘렌토 2785만~3350만원, 현대 싼타페 2895만~3710만원), 유럽산 B~C 세그먼트 해치백과 SUV, 일본 브랜드의 중형 세단과 SUV 등 매우 다양한 종류의 제품이 있습니다.
하지만 야구와 캠핑에 맛들인 남자아이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공간에 제약이 큰 수입 소형 모델들은 후보군에서 제외하는 게 낫겠군요. 캠핑 붐을 업고 ‘궁극의 패밀리카’로 등극한 기아 카니발도 예외로 해야겠어요. 아무래도 미니밴은 크기나 기동성 등 출퇴근 용도로 매일 타고 다니기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으니까요.

결국 시선은 ‘만만한’ 중형 승용차와 SUV로 돌아옵니다. 세단과 SUV 중 무엇을 선택할지는 결국 의뢰인의 선호도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캠핑도구와 야구장비 때문에 마지못해 SUV를 고르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물론 지붕이 높은 중형 SUV 트렁크에 더 많은 짐이 실릴 공산이 크긴 하지만 아들이 리틀야구단에 입단해 본격적으로 운동하고 있는 게 아닌 이상 중형 세단 트렁크도 터무니없이 부족하게 느껴지진 않을 겁니다. 게다가 자녀가 초등학교 6학년 남자아이 한 명뿐이라고 하셨잖아요. 트렁크에는 부피 큰 짐을 싣고, 남는 뒷자리와 바닥에 나머지 물건을 올리면 중형 세단에 간단한 야구용품에 캠핑장비까지 싣고 다니는 것쯤 일도 아닙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한다는 측면에선 세단보다 SUV가 앞서 있는 게 사실입니다. 높은 지상고와 튼실한 타이어, 4WD 옵션의 존재만으로도 일상의 영역이 확장될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나고요. 하지만, 눈치채셨겠지만, 저는 SUV를 선뜻 권해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커다란 SUV 차체가 운전자 혼자 혹은 동승자까지 2명만 태운 채 운행 시간 대부분을 보낼 것을 생각하면 그것만한 낭비가 없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최근 기술이 좋아져 SUV 연비도 많이 향상됐다고는 해도 역시 더 낮고 가벼운 승용차보다 연료소모량이 더 적지는 않습니다. 계절 구분 없이 도심을 뒤덮는 최근 한국의 미세먼지 공포를 생각하면 SUV(뿐만 아니라 크고 무거운 모든 차) 구매는 되도록이면 뜯어말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출퇴근을 고려해 연비도 챙겼으면 한다고 하셨죠? 하이브리드 세단은 어떤가요? 제법 무르익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은 과거와 달리 위화감이 적습니다. 구동용 대형 배터리 때문에 트렁크 공간이 일반 세단보다 많이 좁다는 것도 옛말입니다. 요즘 하이브리드 세단 대부분은 배터리가 뒷자리나 트렁크 바닥 아래 놓여 있어 적재공간을 좀먹지 않고, 등받이 6:4 폴딩이나 스키스루 같은 공간 확장을 돕는 기능도 착실히 챙기고 있거든요.

적재공간 쓰임새가 가장 앞서는 건 뒷자리 아래에 배터리를 둔 토요타 캠리 하이브리드입니다. 트렁크 적재용량이 427리터 가량으로 배터리가 트렁크 바닥에 있는 현대 쏘나타 하이브리드(380리터)보다 넉넉하고, 뒷자리 등받이도 접어서 쓸 수 있지요. 수입 모델을 거느리는 게 부담스럽다면 현대 그랜저 하이브리드, 기아 K7 하이브리드 등 준대형 국산 모델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배터리가 트렁크 바닥 아래 있는 건 아래급 하이브리드 세단과 다르지 않지만 차체 크기의 여유 덕분에 적재용량은 조금 더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약 420리터). 차급에 걸맞게 뒷자리 공간이 넓다는 점도 이들 제품의 이점일 테고요.

하나 더 알아둘 게 있습니다. 하이브리드카에 지급되던 친환경차 ‘구매보조금’ 지원 정책은 올해를 끝으로 종료됩니다. 이 보조금은 지난해 100만원에서 올해 이미 50만원으로 줄었습니다. 그나마 혜택을 누리려면 올해가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지요. 하지만 제가 위에서 언급한 3개 차종(캠리 하이브리드, 그랜저 하이브리드, K7 하이브리드)은 그조차 적용되지 않습니다. 엔진 배기량이 2.0리터를 초과하는 대형차로 분류되기 때문이지요. 대신 차 값에 포함되는 개별소비세(최대 130만원)와 교육세(최대 30만원) 감면, 차량 등록 때 치르는 취득세(최대 140만원) 감면과 공채매입(서울 기준 200만원) 면제 등의 세제혜택은 여전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내의 동의는 반드시 구하세요. ‘그분’이 허락(!)하지 않는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대화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잡담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 트렌드>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