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기획자가 바라본 현재의 한국GM
킬러 트림과 픽업 트럭, 캐딜락 브랜드에 대한 강화가 살길

[이동희의 자동차 상품기획 비평] 최근 국내 자동차 업계를 뒤흔들고 있는 이슈의 중심에 한국GM이 있다. 군산 공장 폐쇄 발표를 시작으로 비상식적인 자금 문제와 노조 이야기,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한 소식들이 들린다. 유럽에서 오펠과 복스홀 브랜드를 프랑스 PSA에 매각한 시점부터, 아니 사실 그 이전에 축구팀 후원까지 하며 선보였던 쉐보레 브랜드를 유럽에서 철수한 때부터 예견된 결과였기에 지금의 혼돈이 더 아쉽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런 상황이 오지 않도록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자동차 회사의 기본이 되는 상품 기획 측면에서 더 그렇다.



물론 상품 기획이야말로 숫자의 세계다. 더 좋은 차가 아니라 더 많이 팔리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차를 만드는 과정에 항상 숫자가 있다. 시장을 이끌어 갈 신기술의 개발부터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도록 할인을 제공하는 최종 판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돈과 연결된다. 결국 회사이기 때문에 수익을 최우선으로 할 수 밖에 없지만 그 과정에 여러 선택이 존재하고 어떤 것을 골랐느냐에 따라 성공하거나 혹은 처절한 무시와 실패를 겪기도 한다.

순수하게 상품 기획의 관점으로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의 한국GM에서 런칭한 차들 중 좋은 평가를 줄 수 있는 것은 경차인 스파크 하나다. 경차에 속하지만 가격과 용도에서 조금 다른 기아 레이를 제외하고 현대자동차 그룹이라는 한국 자동차 시장의 지배자에 맞서 동등하게 경쟁한 유일한 모델이다. 물론 2017년을 기준으로 할 때 기아 모닝이 6만7,096대를 팔았고, 스파크는 70% 수준인 4만7,239대가 팔렸지만 다른 차들의 시장 점유율을 생각하면 매우 성공한 숫자다.

두 모델이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기에 호불호가 분명하게 나뉜 것도 특이한 부분이다. 모닝의 승차감과 주행감이 더 부드럽고 그에 맞춰 선택 사양도 아기자기한 것들이 많아 좀 더 편의성에 가까운 여성 취향이었다면, 스파크는 든든한 느낌의 섀시를 바탕으로 한 탄탄한 달리기 성능과 다양한 장비로 자동차를 선택할 때 가장 큰 구매동기가 되는 안전에서 앞서 남성 취향이라고 할 수 있다. 판매량 차이가 작지 않지만 판매 네트워크의 숫자를 고려한다면 스파크의 선전이 돋보인다고 할 수 있다.



다른 모델로 눈을 돌리기 전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모델 라인업 구성의 부실함이다.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국산차 시장에서 현대 기아자동차 그룹은 절대 강자다. 특히 픽업 트럭과 경상용차를 제외하고 모든 영역에서 두 회사의 경쟁만으로도 다른 회사들이 끼어들기 힘든 지경이다. 그나마 남아 있던 컴팩트 SUV마저 작년에 판매를 시작한 현대 코나가 쌍용 티볼리의 1위 자리를 넘보는 상태가 되었고, 기아 스토닉이 중저가 시장에서 뒷받침을 하는 전략이 제대로 먹히면서 시장을 흔들고 있는 것이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물론 쉐보레는 쌍용이 독점한 픽업 트럭 시장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세그먼트에 모델이 있긴 있다. 하지만 판매 모델이 있다는 것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준중형급을 살펴보면 현대 아반떼가 가솔린 모델만 따져봐도 1.6L 모델이 1,420만 원부터 2,160만 원까지, 1.6L 터보 모델이 2,020만 원부터 2,460만 원까지 9개가 있다. 반면 1.4L 터보 엔진 한 종류인 크루즈는 1,690만 원부터 2,349만 원까지 5가지 밖에 없다. 엔진의 선택 폭도, 가격의 폭도 좁기 때문에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작아 판매할 수 있는 시장도 줄어든다는 말이 된다.



기본형만 비교해봐도 가격 차이가 270만 원이 나는데, 크루즈에 없는 무릎 에어백이 있는 아반떼에 자동변속기를 더해도 120만 원이 더 싸다. 이 상태에서 크루즈가 우세한 사양은 16인치 휠과 오토라이트, 전동접이식 미러와 스타트&스톱 시스템 밖에 없기 때문에 당연히 아반떼로 마음이 기울 수밖에 없다. 물론 쉐보레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 있다. 탄탄한 섀시에 원가에서 훨씬 비싼 R-MDPS와 스톱&스타트 시스템, 터보 엔진까지 달았는데 같이 비교하는 것이 못마땅할 것이다. 하지만 상품성이라는 것은 꼭 우수한 성능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사양이 있느냐는 면에서 아반떼의 승리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크루즈 기본형과 같은 값인 아반떼 밸류 플러스 모델은 후측방 경보 시스템(BSD)과 후방 주차보조, 스마트 트렁크까지 철저하게 사용자 중심의 장비를 갖추었다. 더욱이나 경제성이 중요한 준중형급에서 0.2km/L라도 높은 아반떼의 연비는 크루즈의 넉넉한 파워보다 더 매력적인 요인이다. 만약 고성능을 원한다면 204마력의 아반떼 스포츠가 있어서 크루즈로 고개를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현대차가 일식, 중식, 한식과 양식까지 있는 다양한 메뉴가 있는 메뉴판을 보여주어 다른 식당으로 갈 사람을 붙잡는 전략이라면 GM대우는 한두 개라도 집중할 수 있는 메뉴가 있어야 했다.



또 아쉬운 것은 중대형 시장이다. 말 그대로 그랜저의 독주를 그대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디젤과 하이브리드를 포함해 파워트레인만 5가지인 그랜저에 2가지 가솔린 엔진으로 대응한 것은 미국에서 파는 임팔라에도 없는 파워트레인 개발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크루즈와 마찬가지로 가격과 사양에서 떨어지는 것은 문제다. 그랜저 2.4 기본형에 현대 스마트센스 패키지를 더하면 3,285만 원인데, 3,587만 원인 임팔라 LT에는 18인치 휠, 스톱&스타트, 후측방 경보 시스템과 앞좌석 무릎 에어백이 추가될 뿐이다. 이래서는 애당초 진입할 고객에게 조차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한편 한국GM이라는 회사에서 판매하는 브랜드 중에서 캐딜락이 국내 진출 이래 최대인 2,008대를 팔아 이를 축하하는 기자 회견을 갖기도 했었다. 하지만 큰 관점에서 볼 때 이 숫자와 비교해야 할 것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5만6,616대다. 현대차를 타던 고객이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제네시스 브랜드인 것처럼 쉐보레에서 캐딜락으로 업그레이드가 가능해야 하는데, 중간이 무너진 쉐보레 상품군과 부족한 판매망, 서비스 네트워크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수입차 중에서도 판매량에서 미미했던 캐딜락에게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냐고 하겠지만, 한국GM이라는 그룹으로 볼 때 이런 큰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문제다. 과거 기존 쉐보레 판매 딜러 중에서 일부 매장에 캐딜락 전시장을 내는 등 확장 전략을 사용한 적도 있었지만, 미미한 지원과 판매 교육 부족 등으로 실패한 전력을 볼 때 결국 그룹 차원에서의 종합적인 전략 부재가 원인이다.

하다 못해 쌍용차가 독점적으로 공급하고 있는 픽업 시장에 GMC의 캐논(Canyon)을 변형해 데뷔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5인 승차가 가능한 크루 캡 + 짧은 짐칸을 조합하면 차 길이가 5,395mm로 G4 렉스턴 스포츠보다 30cm 긴 정도라 우리나라 도로에서도 충분히 운행이 가능한 사이즈다. 짐칸 면적이 2.3 제곱미터로 국내 화물차 인증 기준도 통과한다. 미국에서도 팔리고 있는 2.8L 디젤 엔진의 프로그램을 손보고 국내에서 생산한 물량을 동남아와 호주 등으로 수출할 수 있다면 가격도 충분히 낮출 수 있을 것이다.



판매를 늘리기 위해 모델을 다양하게 하는 것은 개발비, 재고, 생산 복잡성 등 다양한 면에서 회사에 부담이 된다. 하지만 판매 볼륨과 모델의 다양성은 서로 비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세그먼트에 촘촘하게 구성한 상품을 투입하면 판매 볼륨이 늘어나게 되는데, 거꾸로 판매 볼륨을 늘리기 위해 모델을 촘촘하게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쉐보레는 이 두 가지 모두 하지 않았다. 계산기를 두드리다가 이도 저도 못한 결과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 하다못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아반떼 밸류 플러스 트림에 대응할 수 있는 모델이 하나라도 있어야 했다. 흔히 말하는 킬러 트림이 없기에 전체적으로 모든 모델의 상대 가치가 떨어져 보이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만약 기본 모델의 원가가 비싸다면 모델 믹스를 통해 수익을 분산시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크루즈의 경우 아반떼 밸류 플러스에 필적할 사양과 가격을 갖춰 잘 팔릴 수 있는 혹은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트림을 하나 추가하고, 여기에서 줄어든 수익은 최상위 모델에 동급 유일의 장비를 얹어 사람들의 선택을 유도해 채우는 방법도 있었다. 결국 모델 전체의 수익성을 유지하면서 판매 볼륨까지 챙길 수 있는 전략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러 문제점을 짚었지만 해결책은 간단하다. 상품기획에서는 지금까지 실패한 과거를 돌아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재 판매 모델에 대한 수익분석을 통해 각 세그먼트마다 킬러 트림을 최소한 하나씩이라도 추가하고, 독점 시장인 레저용 픽업 트럭에 진출하는 것은 물론 수익성 높은 중대형 이상의 프리미엄 시장에 대한 전략을 새롭게 짜는 일이다. 본사의 전략이 미국과 중국으로 시장을 한정하고 픽업 트럭과 자율 주행 자동차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속에서 한국GM의 역할과 몫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먼저 국내 시장에서 기본적인 수익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을 최우선으로 찾아 소비자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것이 최우선이다. 탄탄한 상품군을 갖추는 것은 현재 상황에서 길고 지루한 싸움이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결국 매력적인 상품이 있는 회사는 살아남는다. 한국GM과 직원의 건투를 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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