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향평준화로 본 국산 중형 SUV 발달사

“요즘 자동차 트렌드 중 하나는 상향평준화다. 브랜드 가리지 않고 수준이 비슷해진다. 국내 판매 대표 차종인 중형 SUV는 상향평준화 트렌드를 잘 보여준다.”



‘유행’ 또는 ‘트렌드’는 단순한 듯하면서도 복잡하다. 관찰자는 시대의 흐름을 파악하는 단서로 삼고, 마음에 들 경우 따라 하면 그만이다. 유행의 주체라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새로운 유행을 창조하거나 유행에 뒤처지지 않도록 예의주시하고 따라붙어야 한다. 유행을 선도하면 시장의 리더로 우뚝 서고, 예측을 잘못하거나 방관하다가는 외면 받는다.

자동차시장에도 수많은 유행이 생겼다 사라진다. 최근 몇 년만 해도 다운사이징, 패밀리룩, SUV, 전기 파워트레인, 고성능화, 고급화 등 여러 유행이 지나갔고 진행 중이다. ‘상향평준화’도 빼놓을 수 없다. 프리미엄 브랜드와 대중 브랜드 사이에 격차가 줄어들고, 첨단기술 도입 시점도 브랜드 가리지 않고 빨라졌다. 브랜드 간 격차가 확연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수준이 비슷해졌다. 첨단기술 전파 패턴은 프리미엄 브랜드 최고급 모델이 신기술을 도입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 급 모델이 받아들인다. 프리미엄 브랜드에 기술이 싹 돌고 난 뒤 대중 브랜드 상위 모델부터 시작해 하위 모델로 퍼져나간다. 요즘은 전파 속도가 매우 빨라졌고, 수직적인 전파에서 벗어나 수평적으로 동시다발로 이뤄지는 경우도 많다.



상향평준화는 국산차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수 있을 만큼 수준을 높였다. 국내 시장도 수입차 비중이 커지면서 구매자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수입차와 경쟁하려면 눈높이를 맞출 수밖에 없다. 판매 비중이 높은 대표 차급일수록 상향평준화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따라간다.

요즘 전 세계에서 가장 잘 나가는 차종은 SUV이다. 국내에서는 그중에서도 중형 SUV의 인기가 가장 높다. 2017년 국산 SUV 중에 가장 많이 팔린 모델은 기아자동차 쏘렌토다. 7만8,458대가 팔려 국산차 전체에서 4위를 차지했다. 현대자동차 싼타페가 5만1,661대로 쏘렌토 뒤를 이었고, 르노삼성 QM6은 2만7,837대를 기록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국산차의 발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변속기 다단화는 현재 진행 중인 기술 트렌드다. 단수를 늘리면 동력 배분 효율성을 높이고 연비 향상에도 도움을 준다. 한동안 6단이 대세였지만 이제는 8단이 보편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일부에서는 9, 10단 변속기도 선보인다. 국산 중형 SUV는 2017년 여름 선보인 쏘렌토 부분변경 모델에 처음 8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갔다. 2.2L 디젤 엔진 및 2.0L 가솔린 터보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했다. 지난 달 선보인 현대차 신형 싼타페도 쏘렌토에 이어 8단 자동변속기를 도입했다. 르노삼성 QM6은 7단 수동모드를 지원하는 무단변속기를 사용한다.



전동식 파워 스티어링은 칼럼 타입에서 랙 타입으로 바뀌는 추세다. 랙 타입은 모터를 랙에 달아 직결감이 좋고 섬세한 조향감이 특징이다. 구동토크 제한을 덜 받기 때문에 중대형차에 주로 사용한다. 중형 SUV 중에는 쏘렌토가 부분변경 모델에 랙 타입을 처음 사용했다(명칭은 R-MDPS). 싼타페 역시 신모델부터 R-MDPS를 도입했다.

LED 헤드램프는 보편화가 빠르게 이뤄지는 첨단 품목 중 하나다. 고급차 상위 모델만 쓰던 값비싼 장비였지만, 이제는 준중형급 대중차에도 선보일 정도로 전파가 빠르다. LED 헤드램프는 전력 소모가 적고 조사거리가 길고 수명이 오래 간다. 중형차 중에서는 르노삼성 QM6이 LED 헤드램프를 먼저 채택했고, 쏘렌토는 부분변경을 거치면서 LED 헤드램프를 도입했다. 싼타페 역시 신형으로 바뀌면서 LED 헤드램프 기술을 받아들였다.



요즘에는 각종 첨단 안전장치의 종류도 많아지고 기능도 다양해졌다. 기아 쏘렌토를 예로 들면 차로 이탈방지 보조 시스템은 방향지시등 작동 없이 차선을 벗어나는 경우 경고하고 스팅어링을 제어해 차로 이탈을 막는다. 후측방에서 접근하는 차를 감지해 운전자에게 경고하는 후측방 충돌 경고 장치, 주차 후 후진해서 나갈 때 후측방에서 접근하는 물체를 감지해 경고하는 후방 교차 충돌 경고 기능도 갖췄다. 전방 충돌방지 보조장치는 레이더와 카메라가 감지한 신호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앞차 또는 보행자와 추돌 위험 상황이 감지되면 운전자에게 경고하거나 브레이크를 작동해 피해를 최소화한다. 뒷좌석 승객이나 짐에 가려 후방 시야가 방해받을 때에는 주행 중에도 후방 영상을 디스플레이에 표시하는 기능도 갖췄다. 운전자 주의 경고는 운전자가 피로하다고 판단하면 메시지를 보내거나 경고음을 발생해 휴식을 유도한다.

신형 싼타페는 최신 모델인 만큼 진보한 기술을 넣었다. 뒷좌석 승객이 남아 있는지 알리는 후석 승객 알림, 정차 후 차에서 내릴 때 후측방에서 다가오는 차가 있으면 경고하거나 문이 열리지 않도록 하는 안전 하차 보조, 고속도로에서 차선을 유지하며 자동으로 달리는 고속도로 주행 보조 기능 등을 적용했다.



요즘 SUV가 인기를 끄는 이유 중의 하나는 공간 활용성이다. 중형 SUV는 특히 미니밴 대용으로 쓸 수 있는 3열의 유무가 존재 가치를 높인다. 국산 중형 SUV도 5인승을 기본으로 3열을 추가한 7인승 모델을 내놓는다. 기아차 쏘렌토와 현대차 싼타페가 7인승 모델을 라인업에 갖췄다. 공간으로 따지면 쏘렌토가 길이 4800mm, 휠베이스 2780mm이고, 싼타페는 4770mm, 2765mm이다. 제원상으로는 휠베이스가 긴 쏘렌토 실내가 좀 더 여유롭다고 볼 수 있다.



개성을 중시하는 구매자 증가도 요즘 트렌드 중 하나다. 이왕이면 희소한 차로 개성을 살리고, 같은 차종이라도 달라 보이게 하려는 욕구가 크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개별 맞춤 옵션을 준비해 이런 욕구를 만족시킨다. 일반 브랜드들은 커스터마이징 부품을 마련해 꾸밀 기회를 제공한다. 쏘렌토는 ‘튜온’이라는 커스터마이징 부품을 판매한다. 듀얼 머플러, 도어 스팟 램프, 사이드 스텝, 쇼크옵서버, 스프링 등을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다. 그릴이나 알로이 휠, 사이드미러 커버 등을 검은색으로 바꿀 수 있는 블랙 패키지도 마련했다. 싼타페는 쏘렌토와 비슷한 ‘튜익스’를 운용하고, QM6는 수십 종의 다양한 액세서리를 판매한다.



국산 중형 SUV의 수준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편의장비나 첨단기술을 부족함이 없다고 할 정도로 풍성하게 갖췄다. 수입차와 비교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다. 이제는 브랜드 가리지 않고 격차가 줄어들고 있다. 국내시장 대표 인기 차종인 중형 SUV는 상향평준화라는 글로벌 트렌드를 아주 잘 보여준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evo 한국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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