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묘하고 섬세한 차고르기가 필요하다

[이동희의 자동차 상품기획 비평] 지난해 우리나라 국산차 시장을 이끈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SUV였다. 현대, 기아, 르노삼성, 한국GM과 쌍용까지 자동차 회사들의 발표 자료에는 라보/다마스와 같은 경 상용차는 물론 스타렉스와 포터와 봉고3 등 1톤 이하의 화물차가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역시 화물차로 분류되는 코란도 스포츠를 더해 총 상용차 판매량은 151만7,502였다. 매월 말을 기준으로 판매대수가 발표되지만, 실제 등록 기준으로 할 때는 나중에 변동되어 몇 대 정도는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대체로 2017년 말을 기준으로 차종별 점유율은 승용차가 50%, SUV가 28.7%, 미니밴이 5.5%이고 상용차가 15.9%였다. 실제로 여기에서 상용차를 제외하면 판매 비율이 바뀌어 승용차 59.4%, SUV 34.1%이고 미니밴은 6.5%가 된다. 아직까지는 판매 비중에서 승용차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상반기와 하반기를 비교하면 승용차/SUV/미니밴 비율은 62.2/30.9/6.9%에서 56.6/37.2/6.1%가 나온다. 즉 하반기 들어 SUV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고 상대적으로 승용차의 판매가 줄었다는 말이 된다. 전체 판매량이 상반기 63만5,508대에서 64만1,129대로 소폭 증가했는데, 이 증가율 이상으로 SUV가 더 많이 팔렸다는 말이 된다. 당연히 하반기 데뷔한 현대 코나와 기아 스토닉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는 숫자다.

가장 핫한 B-SUV 시장이, 그러니까 쌍용 티볼리와 현대 코나의 선두권 2파전에 스토닉이 독보적인 3위에 있는 상태라면, 중형급인 C-SUV는 현대 투싼과 기아 스포티지가 서로 번갈아 선두 자리에 오르는 혼전 양상이다. 르노삼성 QM6와 쉐보레 캡티바도 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있지만 약 20cm 정도 긴 차체와 높은 가격, 7인승(캡티바) 등으로 상위 모델까지 함께 공략하는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쌍용 코란도C가 더해져 모든 브랜드가 경쟁하는 시장이다.

판매량으로 보면 투싼과 스포티지가 독보적이다. 2017년을 기준으로 투싼이 4만6,416대를, 스포티지가 4만2,232대를 팔아 10% 정도의 판매량 차이를 보일 뿐이다. 반면 QM6는 2만7,837대로 투싼 대비해 60%, 스포티지에는 약 66% 정도의 판매량을 기록했다. 반면 코란도C는 7,841대를, 캡티바는 2,062대를 팔아 5% 수준에 머물렀다. 결국 현대 기아의 집안 싸움에 르노삼성만이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동급 시장에서 투싼/스포티지/QM6/코란도C/캡티바의 점유율은 36.7/33.4/22.0/6.2/1.6%였는데, 올해 2월까지 판매량을 보면 이 비율이 33.7/36.5/24.4/4.0/1.4%로 바뀌었다. 파업 여파로 생산이 제대로 되지 않은 현대차가 점유율을 잃었고, 한국GM 철수설이 나온 2월에 88대 밖에 팔리지 않은 캡티바가 잃은 점유율을 그대로 스포티지가 흡수해 선두에 나섰다.

상품 구성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묘한 부분이 없지 않다. 다섯 차종 중 AWD 옵션이 없는 차는 캡티바가 유일하다. 다른 차종은 이름이 다르긴 하지만 가격은 170만~180만 원이다. 특이한 것은 QM6에 들어가는 All Mode 4X4i인데, 이를 선택하면 알루미늄 후드가 포함되어 무게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2.0 디젤 엔진과 자동변속기, 하이패스를 포함한 가장 낮은 트림을 기준으로 할 때, 가장 값이 낮은 것은 스포티지 트렌디로 2,430만 원이다.

같은 기준으로 투싼은 스타일 트림으로 2,440만 원으로 10만 원이 더 비싸지만 스포티지에 없는 블루투스 핸즈프리가 기본인 대신 전자식 대신 수동식 룸미러가 들어가고 외부 미러에 LED 방향지시등도 없다. 심지어 투싼은 다른 차에 기본인 안개등이나 LED 방향지시등이 포함된 사이드미러를 달고 싶으면 고급형인 모던 트림(2,680만 원)으로 가야한다.



여기에 비교할 만한 차는 코란도C KX 트림으로 앞의 두 차에 기본으로 달린 사이드 커튼 에어백과 사이드 에어백(40만 원), 운전대 오디오 리모콘(25만 원)을 더하면 루프랙이 추가되며 차 값이 2,478만 원이 된다. 여기에는 스마트키와 안개등, 블루투스 핸즈프리는 물론이고 1열 열선 시트, 크루즈 컨트롤, 스마트 키 등이 더해진 것이어서 가장 가성비가 좋다. 동급에서 배기량이 가장 큰 2.2L 엔진을 얹었지만 상대적으로 출력이 낮고 2WD를 기준으로 해도 연비가 떨어지는 점은 단점이다.

QM6는 기본 차값이 2,770만 원부터 시작해 300만 원 정도 비싸지만 후방 주차보조 시스템, LED 주간 주행등/테일램프, 좌우 독립식 풀 오토 에어컨, 크루즈 컨트롤, 레인센싱 와이퍼와 블루투스 등 경쟁 모델 윗급에서 볼 수 있는 장비들을 기본으로 갖췄다. 큰 차체를 생각하면 기본형만으로 가장 쓸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가장 아쉬운 것은 쉐보레 캡티바 LS 트림이다. 3열 시트와 소화기 등이 포함되는 7인승 패키지(50만 원)를 고를 수 있고, 18인치 휠과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마이링크가 기본으로 달리고 QM6와 비슷한 장비를 얹었지만, 경쟁사가 갖춘 인조 가죽 대신 천 시트라는 점이 최대 단점이다. 윗급인 LT 트림으로 올라가면 일부 가죽이 적용된 시트와 레인센싱 와이퍼 등이 더해지지만 기본 가격이 3,052만 원으로 훌쩍 올라간다.



그동안 몇 번 상품 평가를 하면서 받은 느낌이지만 이쯤되면 한국GM은 국내에 차를 팔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물론 R-EPS와 액티브 헤드레스트 등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하지만 가격이 비싼 장비들을 갖추고 있어 원가가 높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구매 동기인 편의성에서 너무 차이가 나 설득이 불가능할 것이다.

사실 전 모델을 모두 흩어볼 때, 가장 가성비가 높은 딱 하나의 트림을 고르라면 스포티지는 노블레스 플러스 트림(2,740만 원)에 후측방 경보 시스템과 핸드폰 무선 충전을 포함한 스마트업(65만 원)과 HID 헤드램프(40만 원)을 더한 차다. 2,845만 원 안에 19인치 휠, 1/2열 열선 시트 및 운전석 전동/통풍 시트, 스마트키, 블루투스 2열 에어벤트 등이 모두 포함된다. 최고급형인 노블레스 스페셜(2,930만 원)에는 조수석 전동/통풍과 가죽시트, 전방 주차보조가 더해지고 차선이탈 경보 등이 포함된 드라이브 와이드(100만 원) 옵션을 고를 수 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면 투싼은 모던 트림(2,680만 원)부터 2열 벤트와 운전석 통풍 시트가 포함되지만, 2열 열선과 운전석 전동 시트를 달려면 무조건 최고급형인 프리미엄(2,965만 원) 트림을 선택해야만 한다. 물론 8인치 네비게이션, LED 헤드램프, 스마트 후측방 경보 시스템이 기본이라고는 하지만 차이가 너무 크다. 특히 가족용으로 쓰일 가능성이 높은 차종인데 2열 열선을 최상위 모델에만 넣은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한편으로는 동급 유일의 주행 조향 보조 시스템이 포함된 프리 세이프 패키지(90만 원)를 넣을 수 있어 첨단 주행 보조 장비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유일한 선택이 된다.



코란도C의 경우 기본형은 꽤 가성비가 좋았지만 최고급형으로 갈수록 가격이 낮은 만큼 장비도 많이 부족하다. 물론 RX 고급형(2,560만 원)에 사이드 에어백(40만 원)과 운전석 통풍시트/2열 열선/하이패스 등이 포함된 컨비니언스 패키지(50만 원)를 더해 2,650만 원인 차가 베스트로 보인다. 물론 HID 램프가 아쉽다면 2,710만 원인 RX 최고급형을 선택해도 된다. 그럼에도 2,814만 원으로 가장 비싼 DX 트림에서도 전자식 주행 보조 기능을 하나도 고를 수 없는 것은 동급 모델 중 데뷔한지 가장 오래된 섀시 때문이다. 결국 내년에 나온다는 신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사실 C-SUV는 중간에 끼인 세그먼트여서 고생이 많은(?) 분야다. 고급스럽거나 가성비가 뛰어난 B-SUV와 넉넉한 공간과 성능을 내는 D-SUV 사이에 있는 것도 모자라 500만 원 이상 저렴하면서 비슷한 사양을 가진 준중형 세단과 같은 값이라도 다양한 장비를 갖춘 중형 세단의 공격도 거세다. B-SUV 중에서 코나와 티볼리의 최상위 모델은 값에서 C-SUV에 맞먹는 것도 사실이지만, 큰 차체보다는 첨단 장비와 더 고급스러운 실내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고 있다. 결국 사이즈와 가격 사이에서 고민 중인 소비자의 마음속에서 줄타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훨씬 더 미묘한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소비자의 선택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자동차 회사의 상품 기획자는 어느 한 모델만 많이 팔리도록 가격을 정하지 않는다. 수익성이 높은 트림과 사람들을 유혹해 끌어들이는 트림이 다르다. 때문에 마냥 최신 옵션만을 쫒다보면 무조건 최고급형을 사게 되는 함정에 빠지게 된다. 개인의 상황에 맞춰 꼭 필요한 기능이 무엇인지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트림과 선택사양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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