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가 유례없는 열풍을 일으키는 몇 가지 이유

“요즘 SUV 열풍의 이유는 여러 가지인데, SUV의 자리 찾기도 이유 중 하나다. 세단과 대등한 관계에 올라서면서 전에 없던 인기를 끌고 있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SUV 열풍이 거세다. 우리나라에 국한한 현상도 아니고 전 세계에서 열기가 뜨겁다. 지금 기세로 판단하면 당분간은 열기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SUV의 영역 확장은 곧 다른 차종의 판매 감소를 뜻한다. SUV가 없던 시장을 만들어서 개척한다기보다는 원래 있던 시장을 파먹는 형국이다.

요즘 들어 SUV가 급격하게 늘었다. 판매량도 늘었지만 차종도 많아졌다. 우선 SUV를 만들지 않던 브랜드가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납작한 스포츠카만 만들던 포르쉐가 카이엔으로 SUV 시장에 파란을 일으킨 일은 고전에 속한다. 2002년 일이니 벌써 16년 전이다. 카이엔은 대박 났고 포르쉐에 엄청난 수익을 안겨줬다. 이후에 라인업에 새로이 SUV를 추가한 브랜드는 아우디, 미니, 벤틀리, 재규어,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등이다. 애스턴마틴과 롤스로이스 SUV도 출시 대기 중이다. 끝까지 SUV는 만들지 않을 것처럼 자존심을 지키던 페라리마저 SUV 개발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주요 브랜드 중에 SUV를 만들지 않는 곳은 맥라렌이 유일하다.



이들 브랜드의 면면을 보면 종합 브랜드 성격을 띤 아우디를 제외하고는 브랜드 특색이 유달리 강하다. 해치백만 만들어 온 미니를 제외하면 세단이나 쿠페만 만들어 왔다. 역동성 또는 품위를 생명처럼 여긴 이들 브랜드에게 덩치 크고 둔한 SUV는 어울리지 않는 이단아 같은 존재였다. 그런데 자존심만 고수해서는 살아남기 힘든 시대가 왔다. 브랜드 특색을 고수해주기 바라는 추종자들만 바라보고 살기 어려워졌다는 뜻이다.

똑같은 차종을 세대만 달리하며 끌고 가는 데도 한계가 있다. 새로운 차종을 내놓으면 사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는데, 일부 추종자만 존중하며 수익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납작한 차만 만들던 브랜드에게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차로는 SUV가 적격이다. 그동안 만들던 차와 완전 반대 성격이니 신선해 보이지 않을 수가 없다. 먼저 나서기는 힘들어도 누군가 하기 시작하면 따라 하기는 어렵지 않다. 포르쉐가 성공했으니 뒤따라 갈만했다.



결과도 좋았다. 정체성을 흐려진다는 논란이 일긴 했지만, 논란과 판매는 별개였다. 오히려 여러 브랜드가 SUV 시장에 뛰어드니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벤틀리 벤테이가는 수요가 넘쳐 1년 이상 기다려야 하고 생산량을 늘려야 할 판이다. 국내에서도 3억 원이 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10개월 만에 누적판매 100대를 돌파했다. 재규어 F-페이스는 재규어 역사상 단기간에 가장 많이 팔린 모델 자리에 올랐다. 상승세를 탄 재규어는 F-페이스에 이어 E-페이스를 내놨고, 전기차 I-페이스도 SUV 형태로 개발했다. 마세라티 르반떼도 반응이 좋아서 지난해 국내에서 1,000대 이상 팔렸다. 람보르기니 우루스도 전 세계에서 수요가 몰리고 있다.

SUV를 만들어 오던 브랜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빈 라인업을 본격적으로 채우기 시작했다. BMW나 메르세데스-벤츠는 쿠페형 SUV 등 틈새시장을 채웠고, SUV 모델 수가 적은 브랜드는 빈자리 채우기에 주력했다. 국산차 업체들도 비어 있던 소형 SUV 라인업에 새 모델을 속속 선보였다.



그동안 국내 자동차 시장은 세단 중심이었다. 간혹 SUV가 치고 올라온 적이 있었지만, 유가 하락이나 아웃도어 열풍 등에 영향 받은 일시적인 현상이었다. 차종 수로 보나 판매량으로 보면 대부분 세단의 서브 개념을 벗어나지 못했다. 세단이 SUV보다 낫다는 인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SUV가 세단보다 승차감이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것도 이제 옛날얘기다. 기술 발달로 차이가 줄었고, 오히려 세단과 비교해 넓은 공간과 실용성이 인정받기 시작했다. 세단이 절대적인 인기를 끌던 우리나라에서도 SUV가 세단보다 낫다는 인식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SUV 열풍은 SUV가 세단과 대등해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 과정이 최근 들어 본격화되면서 열풍처럼 비친다. 자동차는 형태에 따라 여러 차종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기본은 세단이다. 소형부터 대형까지 모든 크기를 소화해낸다. 여기에 맞대응할 수 있는 차종은 SUV이다. 다른 차종은 일부에 한정된다. 해치백은 준중형 이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픽업은 오히려 작으면 본연의 의미를 살리기 힘들다. 쿠페나 컨버터블은 모든 크기에 대응하지만 수요가 적다. SUV는 소형부터 대형 이상까지 다 잘 들어맞는다. 그런데 이제껏 완전하게 발달하지 않았으니, 인제야 빈자리가 다 메워지고 있는 셈이다.



자동차시장은 수요가 폭발하는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판매량이 정체다. 우리나라도 일정 선에 머무른다. SUV가 인기를 얻으면 다른 어딘가가 줄어든다. 세단은 여전히 잘 팔린다. 지난해 10위권 내 세단 판매량을 보면 현대차 그랜저가 13만2,080대, 현대차 아반떼 8만3,861대, 현대차 쏘나타는 8만2,073대였다. SUV는 기아차 쏘렌토 7만8,458대, 쌍용차 티볼리 5만5,280대, 현대차 싼타페가 5만1,661대를 기록했다.

2016년에 그랜저는 6만8,733대, 쏘나타는 8만2,203대, 아반떼는 9만3,804대였다. 그랜저는 신모델이 나오면서 판매가 늘었고, 쏘나타는 유지, 아반떼는 1만여 대 정도 줄었다. 쏘렌토는 8만715대, 싼타페는 7만6,917대, 티볼리는 5만6,935대다. 쏘렌토와 티볼리는 소폭 늘거나 줄었고, 싼타페는 신차 출시를 앞두고 판매가 줄었다. 주력 차종 급에서는 SUV가 크게 뒤흔들었다고 볼 정도까지는 아니다.



국산차 SUV 라인업은 소형급이 비어 있다가 몇 년 전부터 채워지기 시작했다. 쌍용차 티볼리와 르노삼성 QM3, 쉐보레 트랙스가 시장을 형성했고, 지난해 현대차와 기아차가 코나와 스토닉으로 가세하면서 본궤도에 올랐다. 소형 SUV 시장은 2016년 10만5,000여 대에서 2017년 14만여 대로 늘었다. 늘어난 만큼은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차에서 빠져나갔다. 아반떼는 1만여 대 줄었고, K3 8,000여 대, 엑센트는 5,000대, SM3 2,300대, 정도 빠져나갔다. 없던 차 급에 새로 SUV가 투입된 분야에 변동이 컸다.

중형 세단은 워낙 세력이 강했던 터라 급속하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비인기 차종은 SUV가 대체하면서 설 자리가 더 좁아졌다. 국내에서 소형차는 비인기 차종이다. 현대차 엑센트나 기아 프라이드, 쉐보레 아베오 등은 존재감이 미약하다. 준중형차와 경차에 치여 위치가 애매하다. 같은 회사 차종인 현대 코나, 기아 니로와 스토닉 등이 등장하면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프라이드는 신형 모델 판매가 이뤄지지 않고, 엑센트도 단종설이 돌고 있다. 가뜩이나 비인기 차종인 해치백과 왜건도 SUV 때문에 더더욱 사람들의 눈길이 가지 않는다.




SUV가 열풍을 일으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세단과 대등한 위치로 올라서는 과정도 이유 중 하나다. 아직도 빈자리는 남았다. 국산 대형 SUV도 지금은 쌍용차 렉스턴과 기아차 모하비밖에 없다. 다른 업체들까지 적극적으로 달려든다면 이 분야도 커질 수밖에 없다. 수입차도 마찬가지다. 비어 있는 자리를 공략하면 그쪽은 커지기 마련이다. SUV 시장이 커지고 정체기가 오면 이제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세력이 또 성장하며 세력을 키운다. 국내 시장이라면 언젠가는 해치백이 그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 모두가 잘 팔릴 수는 없다. 어느 하나가 잘 되면 다른 쪽은 쇠하기 마련이다. 시장은 늘 변하고 지금은 그 주인공이 SUV일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한국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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