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예전의 미국차가 아니다



“FTA 재협상을 계기로 미국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전세를 역전할 급격한 반전이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미국차가 변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가는 게 있어야 오는 것도 있다.’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해야 기분도 좋고 사이도 돈독해지는 게 세상 이치다. 그런데 요즘에는 세상이 워낙 각박하고 메마르다 보니 일방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사랑이나 호의를 베푸는 관계라면 언제든 환영이다. 현실에서는 이런 바람직한 모습보다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당하거나 손해 보는 경우가 많다.

개인 간에도 이럴진대 국가 간에는 더하다. 특히 무역 분야가 그렇다. 서로 사이좋게 팔아주고 사주고 하는 훈훈한 광경은 보기 힘들다. 우수한 제품 만들어서 수완 좋게 파는 쪽이 많이 남겨 먹는다. 제대로 팔지는 못하고 사기만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자유무역협정(FTA)이 곳곳에서 이뤄진다. 균형 있는 무역으로 서로 잘살아 보자는 취지인데 그리 공평해 보이지는 않는다. 힘의 논리가 작용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진다.

자동차 분야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관계가 아니다. 일방적으로 우리가 많이 판다. FTA가 발효되기 직전인 2011년 당시 상황을 보면 미국에 수출한 한국차는 59만여 대이고, 한국에 들어온 미국차는 1만4,000여 대다. 2012년 FTA 발효 후, 미국 관세는 2.5%를 유지했고 수입 관세는 발효된 해 8%에서 4%로 줄었다. 2016년에는 양쪽 모두 철폐됐다. 2016년 수출량은 96만여 대, 수입은 6만여 대다. 수입 대수는 늘었지만 수출도 그만큼 확대돼 격차는 여전히 크다. 미국으로 가는 것은 많은 데 오는 것은 적은 그런 상태가 이어진다.



이런 불균형 얘기가 나오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미국차’다. 미국에서 만든 ‘미국산’차가 아니다. 미국 브랜드가 만든 바로 그 차를 말한다. 바로 앞에 나온 수입 물량 중에서 미국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유럽이나 일본 브랜드가 미국에서 만들어 들여온 차도 포함한다. 국내 미국 브랜드 중에서 가장 많이 파는 곳은 포드다. 포드가 국내 연간 판매 1만 대를 넘긴 때는 2015년으로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후로 계속 1만 대선을 유지한다. 5, 6만 대씩 파는 상위권과 비교하면 많은 수치는 아니다. 지난해에는 1만737대였다. 포드의 경우 유럽이나 미국 이외 지역에서 생산한 차를 제외하면 순수 미국에서 생산한 차 대수는 더 줄어든다. 미국산 차만 수입하는 캐딜락은 지난해 처음으로 연간판매 2,000대를 갓 넘겼다. 크라이슬러(지프 포함)는 7,284대다. 지난해 수입차 판매량은 23만3,000여 대였고, 그 중 미국차는 10분의 1이 채 안 되는 대략 2만 대 정도다. 한국지엠이 수입해 파는 쉐보레 임팔라, 볼트 EV, 카마로 등도 있지만 판매량이 적어서 포함해도 전체 대수 변화 폭은 크지 않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FTA 협상을 하던 2012년이나 재협상을 하는 2018년이나 미국차가 판을 뒤집으리라는 전망은 나오지 않는다. 밀어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은 여전하다. 상품성과 취향 문제여서 유리한 조건을 만들어 준다고 잘 팔리지 않는다는 분석이 정설로 통한다.

미국차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디자인이 우리 취향에 맞지 않아서, 완성도가 떨어져서, 위로는 유럽차에 치이고 아래로는 국산차에 밀려서, 가격이 비싸고 가성비가 떨어져서, 대부분 가솔린차라 연비가 낮아서, 미국차는 별로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어서, 기능이나 옵션이 우리 실정에 맞지 않아서, 크기만 크고 하체는 물렁물렁해서 등등.



한 10년 전만 해도 이 말이 다 맞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차도 많이 변했고 좋아졌다. 다만 선입견이 강하게 박혀 있어서 변화가 크게 다가오지 않을 뿐이다. 다 같이 발전하는 탓에 미국차만의 변화가 두드러지게 눈에 띄지 않아서 그렇지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제품도 달라졌지만 상황도 바뀌었다. 디젤 사태 이후 가솔린을 찾는 사람이 늘어서 미국차에 유리한 상황이 됐다. 남들과 다른 차를 타려는 사람이 늘면서 상대적으로 인기가 덜한 미국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FTA 재협상 때문에 미국차가 유리한 위치에 선다고 해도, 10대 팔리던 게 100대로 급격하게 뛰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난다. 2012년 FTA 이후에 미국차가 유리한 조건을 살리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지금까지 성장률로 따지면 꽤 많은 발전을 이뤘다. 직접적인 FTA 혜택이라기보다는 체질 개선과 상품성 향상 노력 덕이 크다. 결과적으로 보면 유리한 기회를 살릴 수 있는 기반을 다진 셈이다.

미국차의 변화는 곳곳에서 드러난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지난해 6,000대 남짓 팔렸다. 덩치 큰 가솔린 SUV인데도 인기가 좋아서 수입 SUV 1위를 차지했다. 스포츠카 머스탱도 반응이 좋다. 캐딜락은 대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제품력이 받쳐주고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급속하게 성장했다. 지프는 SUV 인기 추세 덕을 봐서 판매가 급증했다. 예전에는 미국차는 찾는 사람들만 찾았지만, 이제는 인식이 바뀌면서 보편화하는 추세다.



그동안 미국에서 생산해 한국에 들여오는 차는 미국에서 안전규정을 만족하면 국내 기준에 맞춘 것으로 인정했다. 이렇게 들여올 수 있는 차는 업체별로 2만5,000대였는데 이제는 5만 대로 늘었다. 연비와 온실가스 기준도 2020년까지는 현재 기준을 유지하지만, 2021년부터 2025년까지 기준을 세울 때 미국 기준을 고려한다. 미국차가 한국에 들어오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부분이 일정 부분 제거됐다.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할 거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2012년과 지금은 다르다.

어차피 FTA가 미국차의 판매를 급속하게 늘려주는 마법의 열쇠는 아니다. 그렇지만 활용할 수 있는 유리한 조건 중의 하나라는 점은 분명하다. 10명 중의 한 명 정도만 관심을 두던 미국차가 이제는 두세 명이 관심을 보인다. FTA가 한두 명 더 관심을 끌게 하는 데 그칠지는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수는 너덧명으로 늘어난다. 또 다른 요인을 곁들이면 그 수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더 늘어날 수 있다.

한미 FTA 얘기만 들으면 예나 지금이나 미국차가 생각난다. 그때나 지금이나 급격한 반전을 기대하지는 않지만, 미국차가 달라졌다는 점은 분명하다. 바라보는 사람의 인식이 예전 상태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한국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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