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만원대 혼다 PCX125, 125cc 스쿠터 주름잡는 까닭
[최홍준의 모토톡] 2000년대 초반 불어온 클래식 스쿠터의 열풍으로 각종 스쿠터들이 범람하던 시절이 있었다. HSRC의 비너스가 저렴한 가격과 동글동글한 스타일로 대학생들의 교통수단으로 대거 투입됐고, 야마하 비노50이 특유의 예쁜 디자인으로 엄청나게 팔려나갔다.
그 다음엔 날렵한 스쿠터들이 인기였다. 스프린터 스쿠터라고 분류되는 작고 아담한 사이즈의 125cc 스쿠터들은 날렵한 디자인과 경쾌한 주행성능으로 스쿠터 시장을 장악했다. 스즈키 어드레스와 넥스 시리즈가 있었고, 야마하의 시그너스도 인기가 좋았다. 이때까지는 국산 브랜드도 열심히 했다. S&T모터스(현 KR모터스)의 비버125도 경기권 이외에의 지역에서 잘 팔렸고 대림 자동차(현 대림 오토바이)의 포르테 같은 모델도 꾸준한 판매가 이어지고 있었다. 스쿠터의 원조 베스파도 나날이 판매가 늘고 있었고, 상업용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모델들도 독자적인 시장을 갖춰가고 있었다.

그러던 2010년 혼다가 PCX125라는 스쿠터를 내놓았다. 당시 많이 보이던 스프린터 스쿠터들과는 사뭇 다른 외형이었다. 250cc 이상의 빅 스쿠터들이 가지고 있던 스타일을 조금 축소한 듯 한 넉넉한 크기였다. 첫 인상은 극과 극이었다.
오랜 시간 스쿠터라는 것이 유지하고 있던 작고 날렵한 이미지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판도 평평하지 않았다. 프레임이 들어가 있어서 가운데가 튀어 나와 있어서 짐을 놓기엔 애매했다. 하지만 혼다의 바이크들이 다 그렇듯 소리 소문 없이 팔려가기 시작했다. 당시 정면으로 충돌했던 스쿠터는 대림 자동차의 Q2였다. 더 이상 컴팩트 사이즈의 스쿠터는 인기가 없어지고 있었고 넉넉한 크기를 가지고 충분한 출력을 가진 스쿠터들이 인기 있었다. Q2 역시 125cc였지만 최고속이 계기반상 120km를 쉽게 넘겼기에 PCX보다 더 잘 나가는 스쿠터라고 소문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쥐어짜서 나오는 최고속은 어차피 시내에서 의미 없었다.

PCX는 14인치 휠에서 오는 편안한 승차감, 스트레스 없는 부드러운 엔진특성과 좋은 가속력 그리고 아주 저렴한 부품가격과 뛰어난 내구성으로 도전자들을 쓰러트렸다. 비록 디자인에서의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가성비나 효율적인 면에서 PCX125를 능가할 스쿠터는 거의 없었다.

물론 여전히 베스파는 잘 팔리는 스쿠터 중 하나이고, 스즈키 넥스 시리즈도 끊임없었다. 국산 브랜드들만 이렇다 할 모델 체인지를 못하는 사이 125cc 스쿠터 시장은 혼다가 완전히 가져갔다.
혼다의 가장 큰 라이벌은 예전부터 야마하였다. 혼다는 무난하고 신뢰 높은 바이크를 만든다면 야마하는 감각적이고 참신한 발상을 하곤 했다. 2015년 발표된 NMAX125는 이름에서부터 야마하의 대표이자 빅스쿠터의 상징 같은 TMAX와 맥을 같이했다. 가변밸브 엔진을 장착해 좀 더 높은 최고 출력 12마력과 더 긴 휠 베이스 등 PCX를 능가하기 위해 오래도록 준비하고 나온 스쿠터였다. 거기에 ABS를 더했다. PCX 오너들의 유일한 불만이 ABS브레이크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면 NMAX는 그만큼 작정하고 나온 것이다.
국내에는 2016년부터 정식 수입되기 시작했다. 병행 수입 제품이 소량 유통되기도 했지만 정식 판매가 시작되자 높은 호응을 받으며 거리에 풀리기 시작했다. 이미 PCX125의 누적 판매고는 1만대를 가볍게 넘긴 시점이었지만 NMAX는 이듬해에도 높은 판매고를 이어갔다.

혼다 PCX125의 장점은 14인치 휠로 승차감이 좋다, 풀 페이스 헬멧이 충분히 들어가는 넓은 트렁크, 토크가 좋고 진동, 소음이 적다. 8리터의 비교적 큰 연료탱크와 뛰어난 연비(제원표상 1리터당 47.4km). 스마트 키와 아이들 스탑 기능 등 스쿠터치고는 호화로운 구성이다.
야마하 NMAX는 최고속이 더 빠르고, 앞 뒤 디스크 브레이크와 ABS 브레이크 시스템을 채용했다. 휠 베이스가 조금 더 길고 13인치 휠과 리어 130사이즈 타이어로 안정감이 높다. 조금 더 저렴한 가격도 장점이다.
다 좋은데 부드러운 곡선의 PCX가 못생겼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남성적인 디자인의 NMAX에게 표를 던졌다. 그리고 ABS 시스템에 대한 맹신도 함께였다. NMAX는 PCX의 대체 스쿠터로 인기를 모은 건 사실이다. 여전히 PCX가 더 많이 보이지만 점차 NMAX도 그만큼 보이게 되지 않을까? 베스파나 상업용 스쿠터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125cc 스쿠터가 없기에 이는 불가능한 이야기 아니었다. PCX의 디자인에 질리고 임팩트 없는 혼다의 주행 질감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올해에는 야마하 NMAX의 맹활약이 예상되기도 했다. 혼다가 모델 체인지된 PCX125를 발표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혼다는 2017년 한 해 동안 8,284대의 PCX를 판매했다고 밝혔다. 누적판매대수는 2만대가 넘는다. 우리나라 전체 모터사이클 판매대수 1위이다. 2018년형은 기존 언더본 프레임 대신 더블 크래들 프레임으로 변경하고 밋밋했던 디자인에 역동성을 추가했다. 새로운 eSP(Enhanced Smart Power) 엔진을 장착해 최고출력을 12마력으로 높였다. 풀 디지털 계기반을 장착했고 트렁크 공간도 1리터 커진 28리터. 스마트키와 아이들 스탑, CBS(연동 브레이크)는 여전하다. 가격이 다소 오른 403만원이지만 맷 블랙, 맷 실버 등의 새로운 컬러가 추가됐다.

125cc 스쿠터는 도심에서 가장 효율적인 교통수단이다. 또한 레저수단으로의 활용도도 높다. 이런 스쿠터들도 효율성과 프리미엄을 찾는 시대가 왔다. 많은 브랜드들이 각자의 장점을 내세우며 시장에서의 공간 확보를 노리고 있지만 아직은 혼다 PCX125를 당해낼 125cc 스쿠터는 혼다 PCX125밖에 없는 듯하다.
칼럼니스트 최홍준 (<더 모토>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