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 체인지 주기를 넘어서 오래도록 생명력을 이어가는 차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바람직한 경쟁 관계에는 악영향을 미치지만, 찾는 사람은 꼭 있기 마련이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사골 자동차.’ 누가 쓰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참 적절한 비유다. 사골은 일반적으로 소의 네 다리뼈를 말한다. 오랜 시간 고아서 국물을 내고 여러 차례 반복해서 우려낼 수 있다. 요즘에는 어떤 제품이 세대교체 없이 계속해서 수명을 유지할 때 비유적으로 쓴다. 자동차뿐 아니라 게임이나 음악 등 쓰이는 분야는 다양하다.
자동차 분야에서 사골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는 세대교체 주기와 관련 있다. 보통 자동차는 신모델이 선보인 후 5~7년 정도 지나면 완전변경 모델이 나온다. 이 기간 동안 경쟁력을 유지하기 쉽지 않아서, 상품성 개선을 위해 중간에 한차례 부분변경을 거친다. 이 시기는 정해져 있지는 않다. 경쟁이 치열하면 세대교체 주기가 짧아지고, 시장을 독점하는 모델이라면 대체로 늦어진다. 이 밖에도 신차를 내놓았는데 반응이 너무 좋지 않으면 일찍 모델을 바꿔 버린다. 제때 바꾸고 싶지만 여건이 되지 않으면 완전변경 시기가 늦춰진다.
이동수단이라는 관점으로만 따지면 사골 자동차는 큰 문제는 없다. 안전이나 배기가스 기준만 맞춘다면 타고 다니는 데 큰 지장이 없다. 단지 유행에 뒤처지고 첨단기술이 덜 들어갔다는 점에서 경쟁차보다 못해 보일 뿐이다. 아마 자동차시장에 경쟁이 없고 성능이나 신제품에 대해 사람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수십 년 전에 나온 차를 지금까지 타고 다닐지도 모른다.

현실은 사골 자동차에 대해 부정적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구매자는 부정적이고 자동차회사는 긍정적이다. 경쟁 모델이 없는 경우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굳이 세대교체 할 필요가 없다. 개발비를 다 거둬들여서 수익을 최대한 뽑아낼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들이지 않으려 한다. 구매자들은 개선된 차를 사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오래된 모델을 사야만 한다. 자동차회사가 오래된 차도 만들면 잘 팔리는데 굳이 돈 써가며 신모델을 개발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현대자동차 스타렉스는 현재 국산 승합차 중에는 유일한 모델이다. 1997년 처음 나왔고, 10년 만인 2007년 2세대 모델이 나왔다. 1세대 모델만 해도 경쟁차가 좀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2세대는 10년 만인 2017년 말 부분변경 모델이 나왔다. 완전 신형이 아닌 부분변경이다. 2004년 나온 현대차 포터와 기아자동차 봉고3도 15년째 모델 체인지 없이 장수한다. 특히 두 차종은 국산차 판매량 상위권에 꼬박 든다. 대체할 차가 없어서 만들기만 하면 팔린다. 기아 모하비도 대표적인 사골 모델이다. 2008년 나와 두 번 가벼운 부분변경을 거친 후 지금까지 이어진다. 10년이 지났지만 연간 1만 대 이상 팔린다. 국산 대형 SUV 차종이 적다 보니 수요가 꾸준하다.

자동차회사가 부득이하게 사골 모델을 유지하기도 한다. 라인업을 유지해야 하는데 신모델을 개발할 여력이 없으면 오래된 모델을 끌고 갈 수밖에 없다. 상품성이 떨어지는 모델을 계속 생산한다는 비난을 받지만 자동차회사 입장에서는 없는 것보다 낫다. 판매량이 많지 않은 차는 굳이 개발비를 들여 개선해봐야 돈만 날린다. 대체재로 여기는 차가 사골 모델이라면 구매자는 아쉬움이 커진다. A 회사의 차가 싫어서 B 회사의 경쟁 모델을 사려고 하는데 B회사 모델이 사골 모델이면, 어쩔 수 없이 A 회사 차를 사기도 한다. 아니면 B 회사 차를 사고 A 회사 차보다 좋은 차를 샀다고 정신승리 하는 수밖에 없다.
모하비도 사골이지만 경쟁하던 쌍용자동차 렉스턴도 사골 중의 사골이었다. 2001년 나와 2017년까지 생명을 이어갔다. 물론 쌍용차는 개발 여력이 있는 기아차와는 상황이 다르다. 렉스턴은 2017년 G4 렉스턴으로 사골 모델에서 졸업했고, 신차 효과 덕분에 인기리에 팔린다. 좀 더 일찍 사골에서 탈출했다면 이득이었겠지만, 그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다. 쉐보레 캡티바도 사골 모델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2008년 지엠대우 시절 윈스톰으로 나와 큰 변화 없이 현재까지 이어졌다. 지금은 거의 단종 상태나 다름없고, 후속으로 에퀴녹스가 들어올 예정이다.

르노삼성자동차 SM3도 2009년 2세대 출시 이후 지금까지 나온다. 차세대 모델로 르노 메간을 들여온다고 알려졌지만 후속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당장 사골 모델 딱지를 떼어내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쉐보레 크루즈는 2세대 모델이 2008년에 나왔다가 2017년 사골 타이틀을 뗐다. 국산 준중형차는 현대차 아반떼가 독주한다. SM3나 크루즈가 제때 모델 체인지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경쟁차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중형 SUV 역시 현대차 싼타페와 기아차 쏘렌토에 질린 사람들이 살만한 차가 없었다. 캡티바가 그 역할을 해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

SM5는 사정이 좀 낫다. 2010년 나와서 9년 차에 접어들었지만 다른 사골 모델보다는 좀 더 쌩쌩하다. SM6가 나오면서 단종되는 듯했지만 SM3와 SM6 사이를 지키는 모델로 위치를 재정비했다. 준중형차 가격에 살 수 있는 중형차로 실속을 챙기려는 수요층에 인기를 끈다. 올해 1~3월 각각 933대, 768대, 950대가 팔려 사골 모델치고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기록했다. 3월에는 아직도 신모델 냄새를 풍기는 쉐보레 말리부보다도 많이 팔렸다.
사골 모델이 구매자들한테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신모델은 대체로 가격이 오른다. 굴러가기만 하면 되는 차가 필요한 사람한테는 굳이 첨단기술을 잔뜩 넣어 가격만 올린 차는 필요 없다. 이전 모델이 디자인이 더 마음에 들거나 옵션이나 구성이 더 나아서 사골 모델을 찾기도 한다.

사골 자동차도 영원할 수는 없다. 수요가 사라지고 자동차회사도 유지할 가치가 없어 손을 놔버리면 자연스레 시장에서 사라진다. 그렇게 여러 모델이 사골 모델을 졸업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사골 모델이 생긴다. 모델 하나하나는 사골 상태를 졸업하겠지만 사골 자동차의 생성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수입차라고 예외도 아니다.
변화를 바라는 수요층의 요구가 크면 바꾸는 게 맞지만 예전 모습 그대로를 원하는 수요층의 요구도 무시할 수 없다. 바람직한 경쟁 관계를 위해서는 사골 모델이 생기지 않는 게 낫다. 하지만 사골 모델을 찾는 수요가 있는 한 자동차 시장의 피할 수 없는 현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게 현실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