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값인데 성격 확 다른 포드 익스플로러와 지프 랭글러

[김종훈의 이성과 감성 사이] 대형 SUV만의 쾌감이 있다. 대형 세단과는 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 앞에 서는 것만으로 압도된다. 거대한 자연을 맞닥뜨리는 기분으로 바라보게 된다. 도심형 SUV가 주류를 이루지만, SUV의 본령은 어쩔 수 없이 자연과 맞닿는다. 해서 대형 SUV는 거대한 바위 같은 크기에 압도되고, 광활한 들판 같은 공간에 만족해한다. SUV도 소형이 주목받는 시대지만, 크고 풍요로운 SUV만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 대형 SUV의 기준 같은, 포드 익스플로러

대형 SUV의 대표적 모델은 포드 익스플로러다. 포드의 돈 잘 버는 맏형 같은 차다. 2017년 수입차 톱 10에도 이름을 올렸다. SUV로서 유일하기에 더 인상적이다. 그냥 SUV도 아닌 대형 아닌가. 많이 팔리기보다 상징적 역할을 기대하는 위치다. 그럼에도 볼륨 모델로 위용을 떨쳤다. 조건을 따져보면 결과가 예사롭지 않다.

그만큼 독보적이란 뜻이다. 포드 익스플로러의 위치는 꽤 적절하다. 하나씩 자동차 크기를 키워가다 보면 도달하는 도착지로서 적당하다고 할까. 물론 더 멀고 높은 종착지도 있다. 하지만 그 거리는 까마득하다. 단계 밟아 오르면 포드 익스플로러에 다다른다. 프리미엄을 원해 웃돈 얹지 않는다면 딱 크기로서 만족할 만한 어떤 정점. 어떤 산 정상에 오른 듯 뿌듯해지는 마음을 만끽할 수 있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그런 위치를 즐기게 한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굳이 타협하지 않는다. 7명 꽉 채워 앉아도 594리터라는 공간을 내어준다. 2열까지만 앉는다면, 호화로운 오토캠핑 장비를 모두 채워 넣을 수 있다. 오토캠핑에 관해선 RV 차량이 아닌 이상 대적하기 힘들다. 공간만 있으랴. 한때 랜드로버를 소유하며 사륜구동도 익혔다. 게다가 큰 차 만들어온 미국 브랜드답게 크기를 잘 버무렸다. 커다란 차체를 어떻게 다듬어야 하는지 잘 아는 솜씨다. 화려하지 않지만 질리지도 않는다.

편의사항도 채워 넣었다. 안마 받으며 180도 전방카메라로 주위를 살필 수 있다. 이젠 없으면 아쉬운 어댑티드 크루즈컨트롤이나 차선이탈경보장치도 잊지 않았다. 연비가 좀 아쉽지만, 2톤이 넘는 차체를 생각하면 박하지도 않다. 2.0 에코부스트 엔진은 신통방통할 정도로 힘도 연비도 잘 뽑아낸다. 이것저것 따져 봐도 아쉬운 구석이 없다. 미국이라는 대륙에서 태어나 자란 SUV로서 다분히 이성적이다. 이 정도면 뭘 더 바라, 할 정도로.



◆ SUV의 본성을 자극하는, 지프 랭글러

포드 익스플로러가 미국 SUV의 진화형이라면, 미국 SUV의 정수 같은 모델도 있다. 지프 랭글러다. 대형 SUV는 아니지만, 대형처럼 보이는 크기와 인상은 절대 뒤처지지 않는다. 게다가 지프 랭글러는 SUV의 화석 같은 모델 아닌가. 자연과 맞닿은 SUV 본령을, 어떤 모델보다 수도하듯 지켜나간다. 생김새는 물론, 자연에 더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능력도 출중하다. SUV라는 장르의 기술을 갈고닦았는데도 도리어 가장 원초적인 감성을 자극한다.

지프 랭글러에 앉으면, 오히려 낯설다. 자동차의 변화는 빠른데 랭글러의 변화는 더딘 까닭이다. 그 사이, 랭글러도 기술을 받아들이긴 했다. 하지만 다수 자동차와 방향성이 달랐다. ‘안락한 이동수단’이라는 간지러운 단어를 구현하기보다 화석으로서 가치를 높였다. 야외로 나가고자 SUV를 타는 게 아닌, 랭글러를 타기에 자연으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동한다. 꼭 험로 주파 능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이미 운전석에 앉는 순간, 모험심이 차오르게 한다. 운전자를 이끄는 몇 안 되는 자동차랄까. 덕분에 SUV로서 또 다른 대표성을 띤다.



두 모델은 미국 SUV로서 각자 다른 정점에 닿았다. 포드 익스플로러가 미국 SUV의 진화를 보여준다면, 지프 랭글러는 미국 SUV의 정신을 상징한다. 둘 다 대자연으로 나아가는 인간의 마음을 자극한다. 하지만 변화한 사회만큼이나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다. 포드 익스플로러는 넉넉하게 즐기고자 하는 편의성을, 지프 랭글러는 편의성을 좀 덜어내도 보다 진한 감정을 고양한다. 각자 다른 부분에 방점을 찍었다.



둘 다 짐 싸서 들로 산으로 나가도록 종용하는 SUV인 건 맞다. 미국 태생으로서 각각 SUV의 정점을 보여준다. 더구나 가격도 비슷하다. 하지만 둘 사이엔 전혀 다른 접근법이 존재한다. 이모저모 다 품은 효율적인 익스플로러는 이성적이다. 하나씩 단계 밟아 도달한 합리적인 지점이니까. 날것 그대로를 자극하는 랭글러는 다분히 감성적이다. 랭글러를 선택하려면 포기해야 할 점을 꼽는 게 더 빠르니까. 대신 그만큼 마음을 사로잡는 요소가 명확하다. 각각 선택하는 사람의 성향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뭘 선택해도 둘 다 만족도가 높은 SUV라는 점.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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