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 업체가 국산차를 따라잡는 시대다. 아직은 일부에 그치지만 일시적인 현상은 아니다. 국산차와 수입차가 구분 없이 팔리는 대통합의 시대 전조가 보인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한국적인 색채를 유지하느냐 무색무취이더라도 선택권이 넓어야 하냐는 결론을 내리기 힘든 문제다. 국산차가 시장을 주도해 한국 특성에 맞는 차들이 거리를 채워야 하는 게 맞는지, 더욱 많은 수입차가 들어와야 하는지에 대해 의견은 갈린다. 국가 경제나 애국심 등을 끌어 붙이면 국산차가 많이 팔리는 게 맞지만, 구매자 선택권을 따지면 수입차가 밀려오더라도 차종이 많아지는 게 낫다.
우리나라는 특정 국산차 업체 비중이 높다. 이런 시장 구조가 하나의 특색으로 자리 잡았다. 독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니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잘 만들고 잘 팔아서 그렇다면야 딱히 시비 걸 수는 없겠지만,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해서 그런 상황에 이르렀다면 불균형을 깰 필요가 있다. 다른 국산차 업체가 맞상대 역할을 잘 해주면 균형이라도 잡힐 텐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도 않다. 수입차가 많이 팔리기는 하지만 불균형을 깰 정도의 대중화는 이뤄지지 않았다.

국산차와 수입차는 격차가 좀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분리된 시장이다. 대등한 수준에서 경쟁이 이뤄지지는 않는다. 수입차는 아직도 동급 국산차에 비해 가격이 높다. 예를 들자면 수입 준중형차 살 돈이면 국산 중형차를 살 수 있다. 수입차는 국산차와 비교 경쟁하기보다는 분리된 채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한다. 선택권 확대 차원에서 국산차와 수입차의 격차는 없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수입차 업체가 국산차 업체처럼 돼야 한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국산차와 수입차의 역전 현상이 종종 발생했다. 최근 들어서는 빈도가 높아졌다. 지난 달 메르세데스-벤츠 판매량은 7,932대를 기록했다. 르노삼성자동차의 7,800대와 한국지엠의 6,272대보다 많다. 9,243대를 판매한 쌍용자동차와도 1,311대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BMW도 7,052대로 만만치 않다. 2월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벤츠와 BMW가 각각 6,192대와 6,118대를 팔았다. 한국지엠과 르노삼성은 각각 5,804대, 5,353대로 수입차보다 적게 팔았다.

판매 대수뿐 아니라 매출도 몇 년 전부터 수입차가 앞서기 시작했다. 지난해 벤츠와 BMW의 매출액은 각각 4조2,663억 원과 3조6,336억 원으로 쌍용차 매출 3조4,946억 원을 넘어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2016년에도 매출에서 쌍용차를 제쳤다. 이런 추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선두를 달리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의 성장세는 계속해서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다. 만 단위 판매 대수 경신이나 조 단위 매출 기록 돌파가 꾸준하고 빠르게 이뤄진다. 반면에 국산차 업체는 상황이 그리 좋지 않다. 한국지엠은 군산공장 철수 발표 이후 판매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신뢰도가 떨어졌다. 르노삼성은 마땅한 성장 동력이 없다. 그나마 꾸준하게 신차를 출시하고 SUV 인기 추세 혜택을 보는 쌍용차가 상황이 좀 나은 편이다.
국산차 5개사가 선두를 달리고 그 뒤를 수입차가 따라가는 전통적인 구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판매량이나 매출에서 일부이지만 수입차가 국산차를 따라잡았다. 달리 해석하면 국산차가 낙오했다. 홈그라운드의 이점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이런 역전 현상이 특수한 경우이기는 하다. 우리나라는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라는 두 프리미엄 브랜드가 유별나게 잘 팔린다.

그렇다면 예외적인 현상으로 봐야 할까? 예외는 맞지만, 두 브랜드에 국한된 일은 아니다. 예외에서 벗어나 원칙대로 흘러가면 대중차 브랜드들이 메르세데스-벤츠나 BMW처럼 잘 팔리는 날이 올 테니 말이다. 국내 들어온 주요 수입차 업체가 20여 개 라고 하면 나머지 18개 업체가 벤츠와 BMW처럼 될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 절반 아니 4분의 1만이라도 치고 올라온다면 시장은 지금과는 완전 딴판으로 변하고 국산차와 수입차의 구분도 무의미해진다.
수입 대중차는 국내에서 한계를 넘지 못한다고 한다. 가격경쟁력이나 값 대비 가치에서 동급 국산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근거로 든다. 맞는 말이지만 상황은 바뀌기 마련이다. 지금이야 격차가 있지만 시장 변화를 보면 국산차와 대중 수입차가 동급으로 수렴해가고 있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언젠가는 비슷한 가격대에서 만날 날이 온다. 국산차와 수입차 중에 선택이 아니라, 그저 여러 자동차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때가 온다는 뜻이다.

특정 업체의 독점을 이야기할 때 꼭 나오는 업체가 이탈리아 피아트다. 이탈리아 시장의 60%를 차지할 정도로 승승장구하다가 2000년대 초반 30%대 이하로 떨어졌다. 최근 들어 경쟁력을 회복해가고 있지만, 과거의 명성을 다시 얻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내에서도 이런 변화가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국내 시장에서 점유율이 높은 현대기아차가 아직은 방어를 잘 하고 있지만, 시장은 현대기아차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는다. 다른 국산차 업체들이 크게 힘을 쓰지 못한다고 해서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국산차를 따라잡은 수입차가 불균형을 깨뜨릴 태세로 무섭게 세력을 불리고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국산차를 넘어서는 업체가 또 등장할 게 분명하다.
수입차를 국산차처럼 살 수 있는 때가 올까? 지금은 국내에서 수입차가 국산차보다 불리한 상황이지만, 머지않은 때에 ‘수입차 천국, 국산차 지옥’이 펼쳐질지 모른다. 선택권이 넓어지고 국산차 가격에 수입차를 살 수 있는 대통합 시장이 열리면 구매자에게는 천국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