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생처음 가진 차 티코에 우린 갖가지 주문을 외웠다
[내가 사랑한 올드카] 지난해 한국의 승용차 등록대수는 1800만대를 넘어섰다. 1997년엔 758만여 대였다. 2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늘어난 셈이다. 승합차, 화물차, 특수차까지 포함하면 1041만여 대에서 2252만여 대로, 역시 곱절로 늘었다. 시계를 그보다 10년 전으로 더 되돌리면 한층 극적이다. 지난 1987년, 대한민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겨우 166만여 대였다.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우리말로 자동차 사회화 혹은 자동차화가 진행된 결과였다.
현대 사회의 발전에는 예외 없이 자동차화가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즈음의 독일, 전후 유럽 여러 나라와 일본 등이 국가경제 재건의 수단으로 자동차 보급에 열을 올렸다. 명칭은 저마다 달랐지만 맥락은 동일했다. 소위 국민차 프로젝트였다. 폭스바겐 비틀, 피아트 친퀘첸토, 프랑스 2CV, 스바루 360 등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저가 소형차가 이런 배경에서 태어났다.

한국의 본격적인 자동차화는 다소 늦었다. 88 서울올림픽 개막에 앞서 교통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정비, 확충하고 자가용(自家用) 차 보급에 심혈을 기울인 게 시작이었다. 국제 대회를 개최하면서 국제적 망신(?)을 당하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는데, 어쨌든 한국 사회는 이 무렵부터 급속한 자동차화에 접어들게 됐다. 대우 티코는 한국 사회의 자동차화에 방점을 찍는 차였다. 1980년대부터 준비해 1991년 출시한 티코는 명실상부한 국민차였고 한국 최초의 경차였다.
300만원대에서 시작하는 가격은 자동차가 사치품이던 시절의 국민들에게 ‘마이카’의 꿈을 꾸게 했다. 우리 집도 그중 하나였다. 난생처음 가진 ‘우리 차’에 가족들은 각자의 주문을 담아 온갖 장신구를 매달았다. 어머니는 룸미러에 염주를 달았고 형님은 의자 뒤 주머니에 지도책을 꽂았으며 나는 글러브박스 구석에 이승환 2집 앨범 ‘Always’ 카세트 테이프를 쑤셔 넣었다.

최초의 패밀리카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된 자동차가 맞을까 싶을 만큼 그 차의 면면은 허술했다. 어른 둘에 어른이나 다름없는 고등학생 둘이 타면 실내는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창문을 열고 닫으려면 작고 동그란 레버를 쥐고 힘껏 돌려야 했다. 엔진은 언덕을 오를 때마다 차 안에 앉아 있는 게 미안할 정도로 힘겨워했다. 한여름 땡볕에도 에어컨은 아껴 틀 수밖에 없었다. “에어컨 바람을 맞으면 두통이 온다”던 어머니 때문이었지만, 3기통 엔진의 체력을 생각하면 그 이유가 아니었어도 에어컨을 쌩쌩 틀고 다니기는 어려웠을 터다. 하지만 식구마다 커다란 등짐을 지고 열차나 관광버스로 바캉스를 떠나야 했던 수고를 생각하면 그깟 거,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당시 유일한 운전면허 소지자였던 어머니의 진두지휘(?) 아래 닭장 같은 티코에 몸을 구겨 넣고 전국을 누볐다.
물론,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우리 가족의 첫차는 오래지 않아 퍼졌다. 어렴풋한 기억으론 3~4년 만에 중고차 매매업자에게 넘겨졌고 그 자리는 고급스러운(!) 준중형 세단 대우 씨에로가 대신했다.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어쩌면 어머니의 서툰 운전과 차량 관리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머니의 운전 솜씨가 뛰어나고 매뉴얼에 따라 제대로 된 유지·관리를 해주었다 해도 우리가 그 차와 함께 지낸 시간이 더 길어질 일은 없었을 거다. 고속도로에서 옆 차로의 버스가 지나칠 때마다 종이인형처럼 펄럭이던 차체, 조금만 힘주어 코너를 돌아나가도 바퀴 한쪽이 들려버리던 수차례의 위험천만한 경험을 생각하면 말이다.

그럼에도 내가 사랑한 국산 올드카를 꼽으라고 했을 때 우선순위의 꼭짓점에는 여전히 티코가 있다. 한국 자동차 시장에 ‘처음’인 자동차였다는 상징성을 지님과 동시에 우리 가족 역시 그 차와 난생처음인 (즐겁거나 아찔한) 경험을 숱하게 함께한 덕분이다. 나아가 티코는 자동차가 안기는 기쁨과 즐거움은 만듦새, 성능, 편의장치 등 차의 수준과 비례하지 않음을 일깨워주는 생생한 증거이기도 하다. 차를 만드는 쪽도, 구입하는 사람들도 오롯이 ‘가성비’에만 매달려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어느 모로나 수준 미달이었던 그 차가 남긴 기억은 한층 더 애틋하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모터 트렌드> 편집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