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열해지는 프리미엄 스포츠 중형 세단 시장
고성능 모델을 중심으로 후광 효과를 노려라
[이동희의 자동차 상품기획 비평] 차체 길이 4600~4800mm, 휠베이스 2800~2900mm, 엔진 출력 200마력 안팎에 후륜 구동, 공차 중량 1500~1600kg, 차 값은 3600~5000만 원 부근. 국내 자동차 세단 세장에서 가장 운동성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그먼트인 스포츠 중형 세단들의 간단한 제원이다. 여기에는 전세계적으로 당연히 1인자로 대접받는 BMW 3시리즈부터 시작해 판매량이나 모델 다양성에서 가장 앞선 메르세데스-벤츠 C 클래스, 국산 브랜드로 프리미엄 시장에 도전해 선전하고 있는 제네시스 G70와 같은 그룹사의 형제차 기아 스팅어가 있다.
사실 이 시장은 일반적(?)이지 않다. 같은 값이면 장비가 풍부하고 차체가 더 큰 그랜저 등은 물론이고 중대형급 SUV의 최고급 사양까지 고를 수 있다. 실내 공간이나 트렁크 등 사용 용도나 활용성을 중요한 구매 동기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저 좁고 불편한 작은 차를 왜 저 돈을 주고 사야하나’는 말이 나올 만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자동차가 크게 증가한 모터리제이션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였고, 이후 1990년대를 거치며 구동방식에서는 앞바퀴굴림이, 보디 형태로는 세단이 시장을 이끌었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첫 독자개발 모델인 현대 포니나 당시 경쟁이었던 기아 브리사, 대우 맵시 등은 모두 소형 후륜구동이었다. 그럼에도 현대 엑셀, 기아 프라이드와 대우 르망 등 폭발적으로 성장한 시절에는 앞바퀴굴림이 대세였고 대형 세단에만 존재했기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이는 국내 사정일 뿐 해외는 달랐다. 물론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몇몇 브랜드에서 경제성 중심의 앞바퀴굴림 차를 내놓으며 큰 흐름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BMW 3시리즈와 벤츠 C 클래스를 비롯한 프리미엄 시장에서는 여전히 중형 세단급에서도 후륜구동을 고집했고, 세상이 돌고 돌아 럭셔리 브랜드의 시대가 오면서 다시 고급차=후륜구동의 공식이 각광을 받게 되었다. 특히 실용성을 최고의 가치로 따지던 것에서 자동차의 운동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소비자들이 늘어나고, 모터스포츠를 비롯한 고성능 브랜드에 대한 인기가 올라가며 중형 후륜구동 세단들은 어느덧 ‘스포츠 세단’으로 불리며 좁은 공간이라는 절대적 단점이 슬쩍 사라지는 분위기다.
큰 그림에서 볼 때 이 시장의 특징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이만한 급에서 후륜구동은 실내 공간이 좁다. 앞 엔진에서 뒷바퀴로 가는 드라이브샤프트가 실내 바닥 중간을 가로지르고, 무게 중심을 낮춰 운동성을 좋게 만들기 위해 지붕선을 낮추기 때문에 실내 공간이 좁다. 그나마 앞자리는 앞유리의 각도와 지붕과 만나는 위치 등에 따라 머리 공간이 적당히 확보되지만 뒷자리는 그것마저 쉽지 않다.

특히 스포티하게 보이기 위해 4도어 세단임에도 지붕 선을 트렁크 리드까지 날렵하게 떨어지도록 설계하면 2열 머리 공간을 더 손해 본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열 시트를 바닥으로 낮추면, 상대적으로 다리 공간이 줄어드는데 휠베이스가 짧거나 1열 시트가 낮은 경우 더 좁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또 2열이 바닥에 붙어 있으면 타고 내리기 불편하기도 해 주 고객층인 ‘카 시트에 태워야 할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에게는 불만 요소가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균형잡힌 차 전체의 실루엣이 주는 멋과 좁은 공간을 활용해 단단하면서도 고급스럽게 보이도록 만들어진 실내 등은 다른 급에서 찾기 어려운 장점이다.

이 시장의 ‘갑’은 당연히 BMW 3시리즈다. 고성능 모델인 M3와 왜건인 투어링, 지붕이 높은 5도어 크로스오버 형태의 그란투리스모를 포함해 2017년 한해 11,931대가, 올해 4월까지는 6,292대가 팔렸다. 여기에 같은 섀시로 2도어 쿠페와 4도어 쿠페, 컨버터블이 포함된 4시리즈까지 포함하면 2017년 14,681대, 올 4월까지는 7,702대다. 아직 1년의 절반이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지난해 총 판매량의 절반을 넘어섰다. 재미있는 것은 4시리즈의 판매량이다. 3시리즈와 4시리즈 판매량은 같은 기간 동안 각각 2,750대와 1,410대 차이가 난다. 올해 들어 4시리즈 판매가 지난해에 비해 조금 떨어진 것인데, 이는 할인 판매 가격과도 연관이 있다. 사실 내년에 새 모델이 나오는 3시리즈는 단종 전에 반짝 세일 중이어서 판매가 급증한 것이다. 그럼 지금 산다고 손해일까? 그렇지는 않다. 지난해 7월 이후 생산분부터 적용된 8.8인치 컬러모니터는 터치스크린을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사양이 좋은 차를 합리적인 값에 살 수 있다는 면에서는 기회가 된다.

벤츠 C 클래스는 어떨까? 국내에서 벤츠가 판매 1등으로 나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 등급에서는 3시리즈의 아성을 깨트리지 못하고 있다. AMG와 쿠페, 컨버터블을 모두 포함해 2017년에 8,839대, 올 4월까지는 5,153대를 팔았다. BMW 3과 4시리즈를 합친 숫자와 비교하면 2017년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59% 수준이었지만 올해 들어 판매가 늘면서 67%까지 따라붙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AMG C63과 C43 등 고성능 모델이 주는 후광효과다. BMW가 스포츠 세단의 정석 같은 브랜드라면, 벤츠는 고급스럽다는 브랜드 이미지에 더해 AMG 스피드웨이와 AMG 전용 매장 등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소비자들에게 어필했다.

또 BMW가 M3 세단과 M4 쿠페/컨버터블 3가지 모델만 있는데 반해 벤츠는 C63에 세단과 쿠페, 컨버터블의 3가지가 있는 것은 물론 상대적으로 값이 낮으면서도 충분한 성능을 발휘하며 고성능 이미지를 그대로 즐길 수 있는 C43에도 똑같이 세단/쿠페/컨버터블을 고를 수 있다. 여기에 일반 세단에서 AMG 패키지가 있어 멋진 겉모습을 누리는 것도 가능한 점을 생각할 때, 자동차에서 고성능 브랜드와 모델을 판매로 연결시키는 정석 같은 라인업이 아닐 수 없다.

상대적으로 아쉬운 것은 동급 모델이 있는 다른 회사들이다. 대표적으로 재규어 XE와 캐딜락 ATS, 렉서스 IS가 있다. 하이브리드 모델만 판매하는 인피니티 Q50을 제외하더라도 이 세 모델의 판매량은 2017 합계/2018년 4월 기준으로 XE 1,097/163, ATS 310/40이고 IS는 187/32대로 이 셋을 모두 합쳐 봐야 2017년 1,594대, 2018년 4월까지 235대 밖에 되지 않는다. 물론 렉서스의 경우 주력 파워트레인인 하이브리드가 없다는 점이, 캐딜락은 판매 네트워크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하고 중대형 모델이 주력이어서 판매 집중도가 떨어진다는 걸림돌이 있다. 또 이 급에서 많이 찾는 디젤 엔진이 아예 없다는 점도 문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재규어 XE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 애당초 브랜드 자체가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7번 우승한 것을 강조하는 등 독일식 스포츠 세단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을 회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진동이 적고 성능이 뛰어난 인제니움 디젤 엔진 등 상품으로 볼 때도 장점이 많다. 한편으로는 위의 캐딜락이나 렉서스에 비교하면 판매 네크워크가 많긴 하지만 창사 이래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랜드로버 때문에 판매 집중도는 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재규어 브랜드 안에서도 F-페이스와 E-페이스 등 SUV 모델이 나오면서 역시나 소외된 느낌을 버릴 수 없다.

어떤 면에서 보면, 재규어라는 브랜드와 디젤 엔진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재규어 XJ와 랜드로버 모델들에 쓰이는 V6 3.0L 디젤 엔진은 독특한 2개의 시퀀셜 터보 차저를 달아 300마력이 넘는 출력을 내는 등 성능에서 매우 앞서 있지만 재규어에 어울린다고 볼 수는 없다. 본격적인 스포츠 모델인 F 타입을 구입하는 사람들 중에는 멋진 디자인을 첫 번째 구매 이유로 꼽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디자인 언어는 XE까지 내려왔지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사운드다. 심지어 플래그십 세단인 XJ도 3.0L 수퍼차저 엔진을 얹은 모델은 꽤나 스포티한 엔진과 배기음을 낸다. 반면 XE는 BMW 3시리즈와 비교해도 상대적으로 단단한 서스펜션으로 뛰어난 핸들링 성능을 발휘하지만 평범한 사운드와 약간 좁은 실내를 최대 단점으로 꼽는다.
그럼 이 세 브랜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 벤츠의 예를 봤듯이 지금 이 시장은 스포츠성을 가진 플래그십 모델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애당초 BMW가 3시리즈를 내세울 때 스포츠 세단의 기준이라는 말을 내세운 것과 같은 결이다. 당장 고성능 모델이 있는 캐딜락은 ATS-V를 활용하면 되고, 같은 모델에 C63이나 M3 등과 경쟁할 차가 없는 렉서스와 재규어는 브랜드 안의 고성능 모델인 RC F와 F 타입 등과 함께 마케팅이나 시승 행사를 진행하는 건 어떨까. 예를 들어 XE를 구매한 고객에게 일정 기간 F 타입을 빌려주거나 트랙데이 행사에 초청하는 등 브랜드가 가진 모터스포츠에 대한 열정과 달리기 성능을 적극적으로 알릴 필요가 있다.
물론 동급의 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스포티한 이미지만을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같은 값이면 더 크고 넓은 차를 살 수 있음에도 굳이 공간에서 손해를 보면서 동급의 차를 사는 이유는 결국 고급스러움을 포함한 스포티한 브랜드를 통해 얻는 만족감이다. 또 이 등급을 통해 브랜드에 입문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상위 모델을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기에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여기에는 위에 언급한 수입차뿐 아니라 국산차인 제세시스 G70과 기아 스팅어도 있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두 모델을 중심으로 어떻게 진입하고 팔아야 하는지, 어떤 차를 사는 것이 가장 자신에게 맞는지를 알아보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이동희 칼럼니스트 : <자동차생활>에서 자동차 전문 기자로 시작해 크라이슬러 코리아와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등에서 영업 교육, 상품 기획 및 영업 기획 등을 맡았다. 수입차 딜러에서 영업 지점장을 맡는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