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구안이 독일에서 선전하는 이유와 몇 가지 아쉬운 점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묵묵히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신뢰감 가는 직원 같은 차.’ 1세대 티구안을 시승한 후 적었던 시승기의 한 줄이다. 그런 티구안이 세대교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어디가 좋아졌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막상 차가 공개되자 기대와 달리 실패할지 모른다는 예상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왜 그랬던 걸까?



◆ 티구안에는 끔찍한 타이밍

공교롭게도 2015년 프랑크푸르트모터쇼가 일반에 처음 공개되던 날 디젤 게이트가 터졌다. 당시 모터쇼를 위해 폭스바겐이 야심차게 준비한 티구안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집어삼켰다. 당연히 티구안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했다. 독일은 말 그대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소나기처럼 잠깐 왔다 사라질 사건이 아니라는 걸 모두 알았기 때문이다. 이슈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 반전을 맞다

당시 독일은 물론 유럽 전역에서 디젤 게이트 소식은 매일 전파를 탔고 신문 1면을 장식했다. 쏟아지는 소식은 폭스바겐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들밖에 없었다. 상상하기 어려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고 그로 인해 그룹이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는 극단적 비관론까지 등장했다. 그런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차는 예정대로 출시됐다.

쉽게 2세대의 성공을 예측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의외로 선전했다. 디젤차 감소 폭이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게 컸던 독일에서부터 티구안은 가솔린 모델 중심으로 판매량을 늘려갔다. 티구안 신형에 대해 당시 독일의 신차 가이드북으로 유명한 아우토카우프에는 장점과 단점이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장점 : 좋은 공간, 인체공학적인 실내 구조, 높은 다양성, 편안한 시트 위치, 좋은 시인성, 단단한 마감, 안전한 주행성, 정밀한 조향, 매우 우수한 핸들링, 좋은 안전 옵션

단점 : 비싼 옵션들, 겨우 2년인 무상보증 기간

차 자체만 놓고 보면 딱히 흠잡을 만한 것이 없는 평가였다. 1세대의 느린 난방 능력과 평범한 주행 안락함 등, 성능과 관련해 지적된 몇 가지 것들이 2세대 평가에선 사라졌다. 전문지들 시승 평가 역시 좋았다. 덩치가 더 커졌음에도 안정적이고 괜찮은 주행성과 공간 활용성 등, 여러 부분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다.



◆ 굳건했던 1~3위 구도를 깨뜨리다

티구안의 선전은 계속됐다. 2017년 독일에서 세 번째로 많이 팔린 자동차가 됐다. 골프, 폴로, 그리고 파사트는 오랜 세월 독일 판매량 1위, 2위, 3위의 자동차들이었다. 이 구도를 깨는 것은 쉽지 않았다.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68,584대)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지만 티구안의 판매량(71,437대)을 당해내지 못했다. 폴로를 밀어내고 티구안이 넘버 3가 됐다.

그리고 더 위로 올라갔다. 2018년 4월까지 독일에서의 누적 판매량은 총 27,527대로, 1위 골프(79,675대)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많이 팔린 자동차가 됐다. 3위 파사트(24,365대)와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이지만 티구안의 두 자릿수 상승 폭을 파사트가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유럽 전체로 봐도 티구안은 SUV로는 닛산 캐시카이 다음으로 10위 권 안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유럽에서도 상승폭이 높아 올해 안에 캐시카이를 따돌리고 SUV 판매 1위 모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티구안은 이렇게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걸까?



◆ 독일에서 티구안 선전의 이유

우선 공간이 더 늘었다는 점이 소비자들의 마음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세대와 비교하면 60mm가 길어졌고 30mm가 넓어졌다. 휠베이스 역시 77mm나 늘어났다. 투싼보다 작았던 차가 투싼보다 더 커진 것이다. 실제로 2세대를 처음 봤을 때 이전보다 넉넉해진 트렁크 공간과 탑승자 공간이 인상적이었다.

티구안의 가장 큰 단점으로 지적되던 공간 문제를 해결한 폭스바겐은 성능의 발전도 가져왔다. 인상적인 주행 안전성과 언제나 그렇듯 조향의 정확함은 운전자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거기에 더 고급스러워진 실내는 티구안의 상품성을 높이는 중요한 요인이 됐다. 또 올스페이스(Allspace)라는 7인승 변형 모델은 선택의 다양성을 가져다줬다.

폴로가 주춤하는 사이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기는 하지만, 왜건과 해치백의 나라 독일에서 티구안이 이렇게 잘 나가는 것은 자동차 소비 트렌드와도 무관치 않다. 독일에서 SUV는 가장 인기 있는 모델이고 이는 매년 가파른 성장세가 증명한다. SUV의 인기가 계속되는 한 티구안의 독일에서의 인기도 이어질 것이다. 덧붙여 독일에서 가장 촘촘한 A/S망을 구축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 티구안 성장을 위협하는 요소들

만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티구안의 독일 및 유럽 내 성장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엇보다 디젤 게이트를 뚫고 이뤄낸 성과이기에 더 그렇다. 하지만 마냥 미래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우선 티구안 성장의 가장 큰 부담은 차 가격이다. 2세대가 판매를 시작했을 때 사륜구동 수동 변속기 기준 2.0 TDI(150마력) 기본가격은 32,025유로였다.

그런데 최근 같은 모델의 기본가가 33,350유로로 1,300유로 이상 올랐다. 기본 사양이 상대적으로 적고, 옵션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싼 티구안은 몇 가지 필요한 사양을 추가하다 보면 가격은 훌쩍 뛰게 된다. 그나마 독일 등 유럽에서는 수동 변속기 모델이나 전륜 구동 선택이 많고, 또 옵션을 많이 넣지 않은 모델을 딜러들이 적절한 가격에 팔고 있어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지만 어쨌든 높은 가격은 티구안 성장을 막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가격이 높은 이유는 뭘까? 폭스바겐 기업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독일의 저명한 자동차 전문가 페르디난트 두덴회퍼 교수는 경직된 경영 구조와 독일의 높은 생산 단가 등을 요인으로 꼽기도 했다. 그나마 MQB 같은 효율적 플랫폼을 통해 생산 원가 부담을 낮추고는 있지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선 지금보다 더 줄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공통된 의견이다.



또 한 가지는 디자인이다. 독일에서도 티구안 스타일에 대한 의견은 갈리는 편이다.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 디자인을 지루하게 보는 경향이 독일에도 있는데, 티구안 역시 여기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단정하고 심플한 디자인을 선호하는 개인의 취향을 고려해도 티구안 디자인은 조금 아쉽다.

마지막으로 디젤 게이트를 일으킨 브랜드라는, 폭스바겐에 대한 비판적 시각 또한 티구안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여전히 많은 독일인이 폭스바겐 그룹에 대해 비판적이며, 게이트 이후 많은 이들이 폭스바겐 차를 더는 사지 않겠다고 답하기도 했다. 브랜드 이미지 개선은 단기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점에서 폭스바겐에게는 말 못 할 고민이라 할 수 있다.

몇 가지 위협 요소를 언급해봤지만 티구안은 분명 좋은 차다. 이는 많은 전문가의 평가, 높은 판매량 및 만족도 등에서도 알 수 있다. SUV가 독일에서 이처럼 높은 판매량을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잘 만든 차가 시장에서 어떤 선택을 받는지, 디젤 게이트라는 악재를 뚫고 티구안은 보여줬다. 이 모델이 경쟁 모델들을 만드는 다른 자동차 회사들에 타산지석, 혹은 반면교사로 활용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와 <핀카스토리>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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