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교시승기] ‘더 빠르게’ i30 N vs ‘더 여유롭게’ 벨로스터 N
[강병휘의 자동차 버킷리스트] 지난 독일 출장에서 아직 한국에서 만날 수 없는 두 가지 N 모델을 모두 타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i30 N 모델과 벨로스터 N 모델이죠. 이 중 국내 출시 예정 모델은 벨로스터 N입니다. 벨로스터 N이 국내 시장 및 북미 시장의 스페셜티 카 시장을 겨냥한 모델이고 i30 N은 5도어 핫 해치백 세그먼트가 견고한 유럽 전략 차종으로 기획된 모델입니다. 이미 i30 N은 독일 시장에서 빠르게 팬덤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차량 동호회가 활발하게 활동 중이고 지난 24시간 내구레이스 현장에 50대의 N 차량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계약을 해도 인도까지 3~4개월을 기다려야 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유럽의 i30 N 고객 상당수가 현대라는 브랜드를 처음 구매하는 층이라는 겁니다. 고성능 버전 브랜드가 기존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이나 이미지를 바꾸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두 차를 만나보기 전 저 역시도 무척 궁금했습니다. N 브랜드의 신호탄이었던 i30 N과 두 번째 작품이자 한국에서 만나게 될 첫 번째 N 모델인 벨로스터 N이 얼마나 다르게 요리가 되었을지 말이죠.

두 모델 모두 외관은 비슷한 폭으로 변화를 거쳤습니다. 전면 범퍼 하단의 스플리터와 N 전용 휠 타이어 세트, 대형 브레이크 키트, 그리고 후면부에 보다 공격적인 윙을 올렸습니다. i30 N은 순정보다 더 길어진 형태이고 벨로스터 N은 복엽기의 날개처럼 위아래 두 층으로 나뉜 디자인을 갖춰 보다 과격한 인상을 풍깁니다. i30는 1.6 터보 모델부터 배기관이 좌우로 뻗어 나오고 N 모델에서도 그대로 직경만 커졌습니다. 벨로스터는 배기관의 배치 위치가 달라집니다. 벨로스터 기본 사양은 뒷범퍼 중앙에 자리한 팁을 거쳐 나오지만 N 버전은 범퍼 좌우로 떨어져 들어갑니다. 센터 팁 머플러는 벨로스터의 오랜 상징 같은 디자인이었지만 N 고유의 배기 사운드 튜닝을 위해 배치를 바꾸었다는 후문입니다. 그래도 센터 팁 머플러 형태를 유지해 둔 채로 배기음 튜닝을 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두 N 모델의 배기음도 미묘하게 차이가 났습니다. 엔진 회전수 상승에 따른 소리 변화는 두 대 모두 유사했지만 가속 페달을 떼었을 땐 벨로스터 N 모델이 더 적극적으로 파동을 만들어 냈습니다. 보글보글 펑펑 소리가 너무 요란하다면 설정 화면에서 배기음을 작게 만들 수 있습니다. 집 주차장으로 민폐 없이 들어갈 때 유용한 기능이죠. 두 모델 모두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등 세 가지 배기 음색을 고를 수 있습니다.
i30와 벨로스터가 동일한 차급의 모델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볼륨은 유사합니다. 두 모델의 휠베이스도 동일하지요. 그럼에도 둘 사이에 몇 가지 차이가 있습니다. 벨로스터 N이 더 넓고 루프가 낮으며 중량도 소폭이나마 더 가볍습니다. 하지만 가장 체감적으로 큰 차이는 시트 포지션입니다. i30 N에 적용한 스포츠 시트도 기본 모델보다 높이가 낮아졌지만 벨로스터 N의 운전석에 앉자 아늑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확연합니다. 낮게 앉은 만큼 격한 코너링에서의 안정적인 지지력 면에서도 도움이 되겠지만, 탑승자의 힙 포인트를 끌어내린 만큼 차량의 무게 중심을 낮추는 데에도 일조할 수 있습니다.

스티어링 휠 디자인이나 계기판 배치는 다르지 않습니다. i30 N은 기어 노브에 퍼포먼스 블루 색상으로 포인트를 넣었고 벨로스터 N은 센터페시아 라인과 안전벨트 색상까지 바꿔 적극적으로 실내 분위기를 변화시켰습니다. 기어 레버의 작동 감각은 꽤 놀라웠습니다. 유격 없는 링크로 짧고 정확하게 게이트를 따라 움직이는 느낌은 누군가 집요한 의지를 갖고 여러 번 조율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분명 자동차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의 노력이었을 겁니다.

주행 질감은 어떨까요? 비슷한 크기와 같은 파워트레인, 서스펜션 전후 구성도 동일하기 때문에 결국 디자인만 다르고 달리기 감각은 비슷한 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없지 않았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두 대의 하체 감각도 명확하게 지향점이 달랐습니다. i30 N은 벨로스터 N보다 더 단단한 승차감을 추구합니다. 서스펜션 조절 단계 역시 배기음처럼 세 단계로 나뉩니다만 i30 N의 스포츠 모드 서스펜션이 벨로스터 N의 스포츠 플러스 모드와 유사하게 느껴집니다. 분명 동일한 휠베이스 길이를 갖고 있지만 i30 쪽이 더 짧은 휠베이스 차량을 운전하는 감각입니다. 275마력과 6단 수동기어의 조합은 아우토반에서 i30 N을 260km/h 이상으로 무리 없이 끌어 올릴 수 있었지만 초고속 주행을 하다보면 구불구불한 국도로 가서 달리는 쪽이 더 즐겁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벨로스터 N은 조금 더 여유로운 노면 장악력을 바탕으로 와인딩 로드건 고속도로건 장소를 가리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i30 N을 한계 성능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운전자도 감각을 예리하게 세워야 할 것 같은 느낌이라면 벨로스터 N은 한바탕 트랙에서 에너지를 쏟아낸 후에도 편하게 귀갓길에 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일한 속도로 달린다면 i30 N이 더 빠르게, 벨로스터 N이 더 여유롭게 달리는 느낌을 줍니다. 노면 상황이 변화무쌍한 국내 여건에서도 벨로스터의 하체 감각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아 다행이란 생각도 듭니다. 다소 과도하다고 생각했던 35 시리즈 규격의 19인치 타이어는 승차감 저하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습니다.

몇몇 독자 분으로부터 두 대 중 어느 모델이 뉘르부르크링에서 더 빠를 것이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개인적인 시승 소감으로는 벨로스터 N이 조금 더 좋은 기록을 낼 것 같습니다. 워낙 이곳은 노면이 좋지 않고 고속 코너가 많아 휠베이스가 긴 차량의 움직임이 유리한 편이니까요. 하지만 자동차 세계에서 길고 짧은 건 제대로 붙여보기 전에 속단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노르트슐라이페 위에서 비교 평가를 진행해 보겠습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강병휘(레이서)
강병휘 칼럼니스트 : 국내 레이스에서 2012 아마추어 챔피언, 2013 프로경기 챔피언을 달성하고 2016년부터 뉘르부르크링 국제 24시간 내구레이스에 출전 중. 자동차 회사에서 상품기획 및 트레이너로 근무했으며, 다양한 자동차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