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덩치 키워 밀어붙이기 시작한 독일산 자동차들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유럽의 자동차는 덩치가 작다. 같은 차급이라도 우리나라와 일본, 그리고 미국산 자동차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렇다. 특히 전장이 짧은 편이다. 운전 재미를 찾는 시장의 특성상, 또 좁은 도로가 많은 환경 등에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키180cm가 넘는 독일 남성이 미니나 푸조 208 같은 소형 해치백에 몸을 구겨 넣듯(?) 타고 달리는 걸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SUV가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주도하면서 변화는 더 선명해졌다. SUV 미덕은 민첩한 운동성능에 있는 게 아니다. 높은 차고와 넉넉한 실내 공간 등, 안락함과 실용성이 중요해졌다. 이런 점을 독일 자동차들이 최근 받아들인 것인지 그 변화가 눈에 띈다. 최근 가장 확실하게 덩치를 키우고 있는 곳은 폭스바겐이다.

◆ 부쩍 커진 투아렉과 티구안
폭스바겐은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SUV라고 해봐야 투아렉과 티구안이 전부였으며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덩치 또한 작았다. 하지만 세대교체를 단행하며 변화의 폭을 키웠다. 올 6월부터 유럽에서 판매를 시작한 투아렉만 하더라도 2세대와 3세대의 전장 차이는 83mm나 된다.
투아렉 크기 비교
2세대 투아렉 전장, 전폭, 전고 : 4795 / 1940 / 1709mm
3세대 투아렉 전장, 전폭, 전고 : 4878 / 1984 / 1717mm
길고, 넓고, 높아졌다. 대신 무게는 최소 60kg 이상 가벼워졌다. E세그먼트급 SUV로는 다소 작았던 몸통을 확실하게 불린 것이다. 신형 투아렉의 전장은 기아 준대형 SUV 모하비 길이 (4880mm)와 거의 같은 수준이다. 고급스러운 실내 디자인, 그리고 특유의 정확한 조향성과 핸들링이 전문지로부터 장점으로 꼽혔는데, 여기에 공간까지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투아렉 신형보다 2년 6개월이나 먼저 나온 2세대 티구안 역시 차체 크기 변화를 분명하게 했다.

티구안 크기 비교
1세대 티구안 전장, 전폭, 전고 : 4426 / 1809 / 1686mm
2세대 티구안 전장, 전폭, 전고 : 4486 / 1839 / 1632mm
60mm 길었고 30mm 넓어졌다. 높이를 낮추고 무게를 역시 줄였다. 현대의 준중형 SUV 투산의 전장(4,475mm)보다 더 길다. 폭스바겐은 여기에 투아렉과 티구안 기본형 사이에 공백을 중형급 크기(전장 4701mm)인 티구안 올스페이스로 채웠다. 이게 끝이 아니다 티구안 아랫급 B-SUV 티록 역시 소형 SUV치고는 덩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티록 전장 비교
VW 티록 전장 : 4,234mm
현대 코나 전장 : 4,165mm

그리고 이제 하나 남은 가장 작은 A세그먼트 CUV 티-크로스의 경우 최근 공개된 티저 이미지와 함께 전장이 약 4.11m 수준이 될 것이라는 정보가 함께 알려졌다. 르노의 소형 SUV 캡처와 맞먹는 길이다. 모든 SUV 라인업이 경쟁 모델들과 비교해 커진 것이다. 그런데 SUV의 변화는 폭스바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최근 신형이 공개된 BMW X5 역시 세대교체와 함께 덩치를 키웠다.
BMW X5 비교
3세대 X5 전장, 전폭, 전고 : 4,880 / 1938 / 1717mm
4세대 신형 전장, 전폭, 전고 : 4,922 / 2004 / 1745mm

역시 길어졌고, 많이 넓어졌으며, 높아졌다. 이처럼 눈에 띄게 독일산 SUV들이 덩치를 키우는 동안 세단 역시 크기 싸움에 발을 담갔다. 가장 큰 변화를 보인 것은 메르세데스의 엔트리 모델 A클래스다. 지난 5월부터 유럽에서 판매가 시작된 4세대와 3세대의 차이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A클래스 해치백 전장 비교
3세대 A클래스 전장 : 4299mm
4세대 A클래스 전장 : 4419mm
자그마치 120mm가 늘어난 것이다. 해치백 스타일로 바뀐 3세대 A클래스가 등장했을 때 받았던 공간에 대한 많은 비판을 수용한 결과로 보인다. 현대 준중형 해치백 i30의 전장(4340mm)을 넘어섰으며, 몇 개월 후에 공개될 A클래스 세단 역시 약 4,550mm 수준으로, 아반떼의 길이(4570mm)와 큰 차이가 없다.
한국에서는 자주 중형으로 취급당하는 아우디 E세그먼트 세단 A6 역시 신형의 경우 전장 4939mm로 이전 모델보다 24mm정도 늘어났다. 같은 E세그먼트 그랜저(4930mm)보다 길어졌고 제네시스 G80(4990mm)과의 차이를 60mm 수준으로 좁혔다.

◆ 충실하게 트렌드를 반영
대부분의 자동차 제조사들은 세대교체를 단행할 때 차체를 키우고 무게를 줄인다. 감량을 통해 기술력을 뽐내고 공간을 늘려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이런 흐름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그동안 고급감이나 주행능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은 실내와 작은 차체로 아쉬운 평가를 받기도 했던 독일산 자동차들이었지만 이제는 그 약점 아닌 약점을 지운 채 시장을 뛰어들고 있다. 과연 이 변화가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지, 흥미롭게 지켜볼 부분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와 <핀카스토리>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