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름값보다는 캐릭터, 제네시스의 영리한 PPL 대응법
G70·아이오닉 일렉트릭 vs <미스 함무라비>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자동차 PPL이라고 하면 응당 우린 주인공이 타는 차에 주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PPL이라는 것이 드라마 캐릭터나 내용과 맞지 않으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JTBC 월화 <미스 함무라비>에서 주연이 아닌 조연에게 PPL을 맡겨 더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을 시도한 현대자동차의 선택은 실로 돋보인다. <미스 함무라비>와 그 캐릭터와 어우러진 현대자동차의 영리한 PPL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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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드라마는 : JTBC <미스 함무라비>는 문유석 판사가 쓴 작품으로 법정물이면서도 현실감이 뛰어난 드라마다. 신입 판사 박차오름(고아라)과 그의 선임인 임바른(김명수) 판사가 갖가지 민사사건들을 접하며 느낀 우리네 사회의 현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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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이하 강) : <미스 함무라비>를 보고 있노라면 <응답하라 1994>가 떠오른다. <응답하라 1994>가 꿈 많은 대학생 고아라의 사랑이야기였다면 <미스 함무라비>는 열병 같은 사랑도 했고, 시간이 흘러,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 된 고아라의 눈에 비친 세상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응답하라 1994>에 경망스럽지만 정 많았던 ‘아버지’ 성동일이 있었다면 <미스 함무라비>에는 열정은 예전 같지 않지만 마음 저 아래에 정의감을 감추고 사는 ‘부장판사’ 성동일이 있다. 두 드라마를 연관 지을 수 있는 고리는 오로지 고아라-성동일 콤비뿐이다. 스타일도 다르고, 제작진도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드라마를 잇는 게 어색하지 않는 이유는 배우 고아라의 ‘성장기’에 있다. 성장드라마 <반올림>에서 속 여린 청소년으로 시작해, <응답하라 1994>에서 사랑에 눈 뜨는 대학생이 되고, 마침내 <미스 함무라비>에서 듬직한 판사복을 입은 고아라의 모습은 마치 내 자녀의 성장을 곁눈질 할 때 얻는 흐뭇함과 다르지 않다.
정덕현(이하 정) : 이 드라마는 현실을 잘 알고 있는 한세상 부장판사(성동일)와 이름처럼 이상적인 정의를 꿈꾸는 박차오름 신입판사(고아라) 그리고 그 현실과 이상 중간쯤 서 있는 임바른 판사(김명수)가 등장한다. 아마도 현직 판사가 쓴 작품이라 판사의 직업적인 현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어떤 답답함도 느꼈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박차오름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세워 그가 꿈꾸는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박차오름이라는 인물도 현실을 겪으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아마도 고아라의 성장이 느껴지는 건 이러한 캐릭터의 몫 또한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강 : 그런데 <미스 함무라비>에는 또 다른 성장도 찾아볼 수 있다. 드라마에서 자동차 PPL을 녹이는 방법이다. 아주 영리한 기법이 동원되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에는 현대자동차가 제작지원을 한다.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박차오름 판사역의 고아라와 임바른 판사역의 김명수가 번쩍거리는 제네시스 차량들과 억지로라도 엮여 있었을 게다. 그러나 이들은 지하철이 편하고 버스가 더 친숙한, 때 묻지 않아 정의감 넘치는 젊은 판사들이다. 설사, 임바른 판사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엘리트 코스만 밟고, 초고속으로 판사에 임명된 인물이라고 가정하더라도 제네시스는 어울리지 않는다. 낮에는 근엄한 판사지만, 밤에는 이태원 클럽을 전전하는, 지극히 만화적인 설정이라 하더라도 영 아니다. 그때는 오히려 페라리나 포르쉐 같은 럭셔리카가 더 맞다.

정 : 이 코너를 하다 보니 드라마를 보면서도 차를 눈여겨보게 됐는데. 처음에는 이 드라마에 자동차 PPL이 없는 줄 알았다. 주인공들이 차를 타고 다니지 않아서다. 우리가 막연히 판사 하면 부유한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이 드라마는 그게 현실이 아니라고 말한다. 판사의 월급이 여느 월급쟁이와 다르지 않다는 걸 아예 드라마 초반부터 깔아놓고 보여준다. 그러니 아예 주인공들이 뚜벅이인 이 드라마에서 자동차 PPL이 있을까 싶었다. 물론 PPL이 주연이 아닌 조연에게서 등장했을 때 신선한 의미로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지만.
강 : <미스 함무라비>에서는 스토리의 또 다른 축인 류덕환(정보왕 역할)-이엘리야(이도연 역할)에게 PPL을 맡겼다. 마치 아이돌 그룹들이 ‘보컬’ ‘랩’ ‘댄스’로 담당을 나눠 각자의 장기를 살리는 방식과 유사하다. 농담 삼아 말하는 ‘미모담당’이 존재한다면 류덕환-이엘리야 커플이 그쯤 될 듯하다. 이들은 자동차업계에서 말하는 전형적인 상징을 타고 났다. 화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이엘리야는 제네시스 ‘G70’을 타고 다니는 법원 속기사다. 류덕환은 그런 이엘리야와 사랑에 빠지는 판사이면서 현대차 ‘아이오닉 일렉트릭’의 소유주다.

정 : 이 드라마에서 이엘리야가 하는 이도연이라는 인물은 미스터리하고 섹시한 캐릭터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가 처음부터 궁금증을 일으키는 그런 캐릭터다. 그런데 그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오브제가 바로 그가 몰고 다니는 차다. 물론 화려한 캐릭터 이미지와는 어울리지만 어딘지 법원 속기사라는 직업과는 어울리지 않는 잘 빠진 G70을 보고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하는 대목이 그렇다. ‘밤일’을 한다는 소문이 돌고 그래서 그에게 한눈에 반했던 류덕환이 살짝 거리를 두게 됐을 때 이엘리야가 그 사실을 알고 실망하는 이야기도 등장한다. 자동차의 화려함을 부각시키면서 캐릭터와 이야기가 잘 맞물린 PPL 활용이었다.
강 : 류덕환은 이엘리야의 화려한 치장과 번쩍이는 ‘G70’을 보고 “나이 좀 많은 사람을 만나면 어떻고, 밤에 술집을 나가면 또 어떻겠습니까? 각자 사정이 있는 것이겠죠”라고 속마음을 엉겁결에 말해 버린다. 미래 환경을 생각한다고 자부하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G70’의 럭셔리를 보면서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단정 지어 버리는 ‘상징의 오류’다.

정 : 최근 방영분에서는 속기사가 어떻게 G70 같은 스포츠세단을 끌고 다닐 수 있는가에 대한 이유가 드러났다. 한 판사가 주차장에서 “속기사가 스포츠카? 직장 생활은 취미로 하나 보지?”하고 비아냥거리자, 이엘리야가 그 판사에게 다가가 “판사님 월급은 얼마나 되냐”며 오히려 그 판사가 끄는 차에 대해 묻는다. “이 차 판사님 초봉으로 몰기에는 부담스러우셨을 텐데 엄카로 사셨냐?”고 되묻는 것. 그리고 자신은 그 차를 “낮에도 일하고 밤에도 일해서” 자신이 번 돈으로 샀다고 밝힌다. 이엘리야는 유명한 웹소설가였던 것. 결국 류덕환과 이엘리야의 오해도 풀리고 두 사람의 멜로 구도도 되살아난다. 이엘리야가 끄는 G70과 류덕환이 끄는 아이오닉 일렉트릭이 나란히 주차장에 서 있고 두 사람이 만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하는데, 인물들이 썸을 타는 것처럼 자동차들도 썸을 타는 듯한 느낌마저 들더라. 그런데 왜 현대자동차는 하필 G70과 아이오닉 일렉트릭을 나란히 세운 걸까?

강 : 제네시스의 ‘G70’과 현대차의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현대자동차그룹의 두 가지 미래 방향성이다. 미래의 자동차는 이동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확보하고 있어야만 생존할 수 있다는 절박함에서 탄생한 두 모델이다. 대리-과장은 준중형차를 타고, 과장-부장은 중형차를 탄다는 공식은 자율주행차와 자동차 공유 개념의 시대가 오면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되면 자동차 제조사는 개인에게 판매할 차는 없어지게 된다. ‘이동수단’으로서의 차는 자율주행을 기반으로 하는 카셰어링 회사에만 공급될 수 있다. 결국 미래의 자동차는 친환경 자율주행이거나 유니크 한 재미를 추구하는, 두 가지 유형만 남게 된다. ‘아이오닉 전기차’가 전자에 속한다면 ‘G70’은 후자에 속한다. 현대자동차그룹이 화제의 드라마에 ‘아이오닉 전기차’와 ‘G70’을 투입한 이유도 이와 같은 미래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정 : 그렇게 이야기를 들으니 <미스 함무라비>에 두 자동차가 나란히 등장한 게 굉장히 상징적인 선택이라는 생각이 든다. G70이 이엘리야라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 차의 특징과 매력이 드러나는 것처럼, 아이오닉 전기차는 류덕환에 의해 그 스마트한 이미지가 부여되어 있다.
강 : 전기차인 ‘아이오닉 일렉트릭’은 2018년식 모델이 한번 충전으로 최대 251km를 달린다. 아직은 충전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현실을 감안해 ‘찾아가는 급속 충전 서비스’로 운전자들의 조바심을 달래고 있다. <미스 함무라비>에서도 데이트 약속에 늦은 류덕환이 만성적인 교통체증에 정신이 나가 있을 때, 설상가상으로 배터리 잔량마저 바닥나는 상황이 나온다. 이때 전화 한 통으로 급속 충전 장비를 실은 서비스차량이 백마 탄 왕자처럼 등장한다. 굳이 이런 설정을 하지 않더라도 완전충전으로 251km를 달리는 용량이라면 일상생활에서 크게 아쉬울 게 없다.

정 : 여러 모로 주연이 아닌 조연에 자동차 PPL을 집중시키는 역발상으로 이런 효과를 내고 있는 <미스 함무라비>를 자동차업계나 드라마업계나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강 : 주연 배우를 과감히 버리고, 감초 스토리에 엮어 차량 노출을 하고 있는 <미스 함무라비>의 PPL 방식은 다른 드라마에도 추천해주고 싶을 만큼 신선해 보인다. 드라마의 큰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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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의 이 차는 : ‘G70’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퍼포먼스 세단이다. 기아자동차 ‘스팅어’와 함께 태어날 때부터 스포츠 주행을 목적으로 개발됐다. 2.0 가솔린 터보, 2.2 디젤, 3.3 가솔린 터보 등 3가지 트림으로 구성 되는데, 디자인은 세련되고 움직임은 운전자의 의도대로 지체 없이 반응한다. 수입차들이 장악하고 있는 프리미엄 스포츠세단 시장을 방어하겠다는 야심 아래, 상대적으로 젊은 전문가그룹을 공략하고 있다. 제네시스 브랜드에는 돌림자를 공유하는 ‘EQ900’과 ‘G80’이 상위 모델로 포진하고 있지만 ‘G70’은 형들하고는 DNA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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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강희수 칼럼니스트 : <일간스포츠>에서 프로야구 기자로 출발해
정덕현 칼럼니스트 : 대중문화 속에 담겨진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이고, 현재 SBS 미디어 비평 <열린TV>에서 ‘정덕현의 TV뒤집기’, KBS <연예가중계> ‘심야식담’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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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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