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120년. “자동차 업계가 하나의 마일스톤(milestone, 중요한 시점)을 지날 때마다 우리는 커다란 족적을 남겨왔습니다. 미니밴 에스파스는 사회에 대가족이 많아졌을 때 등장했습니다. 1990년대에는 가족이 파편화되면서 보다 작은 차를 필요로 했지요. 소형 MPV인 (메간)세닉을 소개한 이유입니다.”
데이비드 쿠사닉(David Kusanic) 르노 그룹 브랜드 담당 매니저가 담담히 설명을 이어가는 가운데 나는 허를 찔린 기분으로 잠시 멍해졌다. 에스파스나 세닉이 시장 개척모델이자 세그먼트 파괴자였다는 사실을 난생처음 알게 돼서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신들의 유산을 문명, 사회 발달의 일부 또는 없어선 안됐을 중요한 변곡점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는 화법이 새롭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실상 르노는 당대가 필요로 하는 자동차를 만들어왔을 뿐이다. 보다 솔직하게는 그 시점 제일 잘 팔릴 만한 물건을 개발하고 만들어 판매한 것이다. 그런데 그건 르노뿐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자동차 제조사가 해왔고 해나가고 있는 일이다. 모두가 우러러보는 포르쉐도, 페라리나 롤스로이스도 예외일 수 없다. 중요한 점은 그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있다. 의미 부여와 후대의 해석에 따라 그 물건은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시대의 명작이 되기도 하고 그저 존재했을 뿐인 여러 물건 중 하나로 남기도 한다(물론 예외적으로 시대를 너무 앞서갔거나 단지 콘셉트만 획기적일 뿐 품질이 형편없어 반짝 뜨거웠다 사라진 모델도 없진 않지만).

쿠사닉 매니저의 설명에 멍했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네 자동차 생각 때문이었다. 시발 자동차를 출발점으로 본 한국 자동차 역사는 60여 년에 달한다. 132년째 ‘최초의 특허등록 차’ 회사로 기억되고 있는 벤츠, 올해로 창립 120주년인 르노에 비하면 일천해 보이지만 포르쉐 역사가 70년, AMG가 지난해 갓 50년에 다다랐음을 생각하면 결코 짧다고만 하기 힘든 역사다. 나아가 한국 자동차의 역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까지 겪은 뒤에야 뒤늦게 자리 잡기 시작한 한국 현대사회와 거의 한 호흡으로 함께 달려왔다. 한국 문명, 사회의 숨결이 묻어 있는 자동차가 엄연히 존재해 마땅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 자동차 연대기에 오르는 자동차는 하나같이 ‘한국 최초’ ‘세계 최초’ 같은 타이틀이나 ‘산업 역군’ ‘세계화의 첨병’ 같은, 당장 몸을 꼿꼿이 펴고 거수경례라도 해야 할 법한 경직된 수식이 따라붙기 일쑤다. 제법 역사가 쌓이고 차 자체 수준도 높아진 최근은 ‘전 세계 누적 판매 1000만대’ ‘품질조사 역대 최고 순위 기록’ 같은 새로운 자랑도 들려오지만 그 역시 겸연쩍은 자기과시일 뿐 우리의 시대상을 담는 거울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르노 에스파스, 세닉은 자동차 역사가 기억하는 명징한 원조 모델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자동차 역사에 획을 그은 수많은 자동차가 모두 원조이거나 당대에 찾아볼 수 없던 획기적 모델이기만 하진 않았다. 최초의 페라리 GT카로 기억되는 166은 125S가 경주에서 보여준 우수한 성능을 등에 업은 기획상품이었고 이는 레이스에 기반한 자동차 회사의 전형적인 판매형태였다. 공랭식 비틀의 후속으로 선보인 폭스바겐 골프는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적 경제위기에 힘입어 대히트를 기록했다. 하지만 1970년대 유럽엔 이미 그와 비슷한 개념의 소형 해치백이 우후죽순 출시해 있었다. 어느 것이든 세상에 둘도 없는 완벽하고 파격적인 파이어니어는 아니었단 얘기다.
유산(heritage)는 당대(當代)보다 후대(後代)가 끄집어내 적절한 해석을 더했을 때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물론 그 해석은 시대의 맥락, 브랜드의 정신에 맞닿아 있어야 더욱 빛나 보일 수 있는 것이고. 현재 국내에 출시돼 있는 국산 자동차 중 무엇이 이 같은 시대상을 담기에 적절할까? 기아 카니발이라면 2010년대 후반 한국인의 ‘워라밸’ 욕구를 반영할 수 있겠다. 현대 벨로스터 N은 엑센트 TGR, WRC F2 출전을 위해 500대 한정 생산한 티뷰론 스페셜과 같은 ‘미친’ 차 계보로 스스로의 뼈대를 세울 수 있을 터다. 쏘나타, K5, SM6, 말리부 등 국내에서 유독 인기 많은 중형세단의 발전사는 한국 가족사회의 변천사 그 자체라 해도 무리 없다.

이런저런 국산차를 한국 문명사에 대입해보다 보면 문득 몇 개인가의 ‘잃어버린 고리’가 눈에 띈다. 국내 최초의 고유 모델인 현대 포니, 한국 자동차문명화의 기폭제였던 대우 티코, 기아차가 미국 포드, 일본 마쓰다와 함께 작업한 월드카 프라이드 등이다. 과거를 샅샅이 훑어보고 거기서 유의미한 역사를 찾아내 찬란한 유산으로 빚어내는 건 결국 브랜드의 몫이다. 지나간 영화(榮華)에 특별한 해석을 더해 지금은 큰 존재감 없는 차로도 브랜드 철학을 효과적으로 설파하는 르노의 경우처럼 말이다. 반면 한국 자동차와 문명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긴 차들은 재해석될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강제 소거됐다고 생각하면, 머리가 멍해지다 못해 가슴까지 쓰려진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