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를 타보고 놀란 것은 엔진 출력이 아니라 다양한 부분의 기술적 진보였다.”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812 슈퍼패스트. 이 차는 짧은 이름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 풀이하면 800마력을 발휘하는 12기통 엔진을 장착한, 무척이나 빠른 차다. 페라리는 이 차를 두고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의 슈퍼카’라 소개한다. 여기선 슈퍼카란 카테고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페라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성능’이란 뜻은 아니니까. 그들에겐 이미 라페라리처럼 V12 엔진에 전기 모터 하이브리드 시스템(시스템 출력 960마력)을 얹은 ‘하이퍼카’가 있다. FXX K 에보처럼 출력이 1050마력을 넘는 트랙 전용 하이브리드 레이스카를 판매한 경험도 있다. 그러니까 812 슈퍼패스트가 강조하는 것은 단순히 ‘엔진 출력’이 아니라 ‘가장 진보한 슈퍼카’란 의미를 담고 있다.
수치만으로 이 차를 평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실제 운전석에서는 수치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기술적 진보를 경험할 수 있다. 이전엔 불가능하거나, 공존할 수 없었던 기술적 상황을 실현하고 있다. 예컨대 812 슈퍼패스트를 주행 테스트한 날은 외부 기온이 섭씨 38도였다. 태양의 뜨거운 열기로 도로 위의 모든 것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도심 속, 정체 구간은 열기가 더 심했다. 악조건이었다. 이전의 슈퍼카의 경험으로 미뤄볼 때, 언제든 V12 엔진에서 연기가 나며 차가 정지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812 슈퍼패스트는 교차로에서 정차할 때마다 엔진 스톱&스타트 기능을 활성화하며 엔진 시동을 끄고 연료를 아꼈다. 철이 녹아내릴 만큼 뜨거운 열기가 엔진을 괴롭혀도, 여유가 있다는 듯 반응했다. 시동이 꺼진 실내는 평온했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쏟아져 나왔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온/유온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하지만 달궈진 엔진이 시동을 끄고 있을 때도 모든 부분이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그만큼 냉각 시스템 성능이 탁월하고 안정적이라는 뜻이다.

도심에서 승차감은 놀랍도록 부드럽다. 앞 275mm, 뒤 315mm 폭을 가진 편평비 35시리즈 타이어. 20인치 휠을 달고도 승차감은 고급 세단의 그것과 비슷하다. 경사가 급한 주차장 입구에서 긴장할 필요가 없었다. 버튼을 누르면 즉각적으로 앞 서스펜션이 차고를 올려 진입 각을 확보했다. 골목의 입구에서도 여유로웠다. 앞 범퍼 좌우에 달린 카메라가 도로 양쪽 사각지대를 친절하게 보여줬으니까. “슈퍼카니까, 자잘한 불편함을 감수해야죠.” 이런 주장은 제품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스포트 모드(Wet 모드를 제외하고 사실상 노멀 모드)에서도 엔진과 변속기는 매끄럽게 반응했다. 변속 타이밍과 스로틀의 조작이 이상하게 겹칠 때도 신경질적이지 않았다. 시내에서 가속페달을 살짝 밟으면 엔진은 대략 1000rpm을 유지하며 달렸다. 이때 듀얼클러치 변속기는 시속 60km 정도에서 이미 기어를 7단까지 올리고 항속 모드에 들어선다. 그 과정을 계기반을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불필요한 진동이나 소음도 잘 억제하고 있다.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의 반응도 자연스럽고 일정했다. 예열되기 전과 뜨겁게 열 받았을 때의 반응이 모두 예상한 범위 안에 있다. 그러니까 이 거대한 슈퍼카는 거추장스러운 사치품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나 탈 수 있다는 무한한 신뢰를 줬다.

주행 모드를 ‘RACE’에 놓고 가속페달에 힘을 줬다. 순식간에 속도계가 시속 110km를 넘는다. 페라리의 주장에 따르면 이 차는 0→시속 100km 가속에 단 2.9초다. 물론 전문 레이서가 아니라도 비슷한 기록을 뽑아낼 수 있다. 가속 페달을 밟는 즉시 눈으로 속도계 바늘을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반응한다. 하지만 이렇게 엄청난 가속 중에도 위화감이 크지 않다. 강력한 펀치력으로 운전자를 내동댕이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과정이 부드럽고, 우아하다. 가속이 시작된 후 페달에 계속해서 힘을 주고 있으면 어떨까?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순식간에 숫자의 경계를 지나친다. 참고로 이 차는 0→시속 200km까지 가속에 7.9초, 최고속도는 시속 340km이다.

자연흡기 방식 V12 엔진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엔진은 페라리 브랜드 탄생 70주년을 기념에 완전히 새롭게 개발됐다. 그래서일까? 이전 V12 엔진과 비교하면 좀 더 현대식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럽고, 정밀하게 반응한다. 자료에 따르면 이 엔진은 연료 압력을 상황에 따라 바꿀 수 있을 뿐 아니라(최대 압력 5076psi), 엔진 오일 압력을 유지하는 기술로 출력/토크도 최적화한다. 실제로 많은 전제제어 기술이 사용됐다. 하지만 감성적인 측면에서 부족함은 없다. 여전히 그르렁거리고, 강렬하게 진동한다. 812의 저속 토크와 차의 반응은 웅장하다. 반면 고회전에서 엔진 출력은 포효하듯 뿜어져 나온다. 엔진 회전수가 올라가면서 스로틀 반응이 명료해진다. 이런 반응은 고회전 엔진의 스포츠카를 정교하게 다루기 위해선 꼭 필요한 조건이다.

6.5L V12 엔진은 8900rpm까지 회전하며 800마력을 발휘한다. 3500rpm 수준에서 이미 59.0kg·m의 토크가 뿜어져 나온다. 엔진 회전이 7000rpm에 이르면 최대토크 73.3kg·m을 기록한다. 당연히 뒷 타이어가 남아날 리가 없다. ‘ESC OFF.’ 모든 전자제어 장비를 끄고 차를 대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타이어의 접지력이 남아있는 상태와 미끄러지는 경계가 정확하게 느껴진다. 가속페달에 힘을 줘 엔진 출력이 뒤 타이어를 완전히 뭉개버리는 순간에도 차의 균형이 무척이나 잘 유지된다. 엉덩이를 흔들며 요동치는 야수가 아니라, 차분한 이성으로 잘 조율된 기계적 감각이다. 실제로 812는 앞뒤 무게 배분에 있어서 47:53으로 설계됐다. 앞차축에 거대한 V12 엔진을 얹고도 이런 세팅을 한 이유가 있다. 넘쳐나는 출력을 좀 더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 뒤 타이어 접지력을 더 끌어내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812 슈퍼패스트는 F12 베를리네타의 후속이자 F12 tdf(Tour de France)에서 보여준 전자식 섀시 제어 기술, 공기역학을 더 발전시킨 형태다. 여기서 전자제어 안전장비의 성능도 개선됐다. 사실 800마력이 넘는 슈퍼카는 주행 상황에 따라 언제든 흉기로 변할 수 있다. 하지만 812는 안전 부분에서도 철저하다. 젖은 노면, 스포트 등 일부 주행 모드에서는 놀랍도록 쉬운 운전 감각을 제공한다. 절대 운전자를 압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코너에서 운전자 실력 이상으로 오버해서 달리기가 쉽지 않다. 기본적으로 뛰어난 핸들링 성능과 잘 조율된 균형을 가졌을 뿐 아니라, 똑똑한 전자제어 장비를 갖췄다. 필요할 경우 전자제어 장비가 있는 듯 없는 듯 차의 자세를 잘 달랜다. 전자장비가 개입할 때 반응이 대단히 자연스럽다. 차를 타고 즐기는 모든 순간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처럼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는 모든 부분에서 발전했다. 슈퍼카라는 장르의 기술적 진보 또 한 번 이뤄냈다고 마땅히 평가할 수 있다. 엔진 출력으로 경쟁하고, 뉘르부르크링 서킷 구간 기록에 목숨 걸던 슈퍼카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고효율 정책과 안전 규제가 넘쳐나는 시대, 당연히 슈퍼카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모든 기술적 영역에서 진보한 자동차로 발전하기 위해. 페라리 812 슈퍼패스트는 그런 이정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