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4,300만 명.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가 최근 한국에서도 본격 활성화됐다. 안드로이드 오토는 안드로이드 OS 기반 스마트폰과 자동차 인포테인먼트를 연결한다. 지도 및 길안내, 문자와 전화 통화, 음악재생 등의 기능을 터치 디스플레이와 음성인식 및 명령으로 이용할 수 있다. 자동차 업계에 처음 소개된 건 지난 2014년이고 일반 시판차에 적용되기 시작한 건 2015년부터다. 국내 적용까지 3년 가량 걸린 셈인데, 가장 큰 이유는 다들 잘 알다시피 구글이 한국의 정밀지도 데이터를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국내에 적용된 안드로이드 오토 역시 구글 지도는 적용하지 않았다. 대신 카카오의 내비게이션 앱 카카오내비를 쓴다. 구글이 안드로이드 오토의 지도 앱으로 자사의 구글 맵(과 그들이 인수한 웨이즈 앱) 대신 현지 시장의 지도 애플리케이션을 적용한 건 한국이 처음이다. 여기엔 구글과 현대차, 그리고 현대차그룹과 카카오의 전략적 제휴 관계가 얽혀 있다.

현대자동차는 일찌감치 안드로이드 오토 진영에 합류했다. 시판차에 안드로이드 오토를 가장 먼저 적용한 것도 현대자동차였다. 하지만 한국 내에선 앞서 언급한 한국 정밀지도의 해외 반출 불가 문제로 구글 맵 기반인 안드로이드 오토를 적용하지 못했다. 그 사이 현대차는 국내에서 카카오와 다각도로 협력관계를 맺어왔다. 서버형 음성인식 기술인 키카오 I는 지난해 제네시스 G70에 처음 도입된 것을 시작으로 현대/기아차 다수 시판차에 적용됐다. 올해 초엔 현대차가 50억원을 투자한 카풀 스타트업 회사 럭시(LUXI)의 지분을 카카오 모빌리티가 인수해 자회사로 삼기도 했다.

현대차와 카카오의 협업은 서로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결과다. 카카오는 한국에서 새로운 이동성 시대의 정상에 우뚝 서고 싶어한다. 4300만 명이 사용하는 카카오톡, 유료 가입자 460만 명으로 국내 음원사이트 시장 1위인 멜론 등 모빌리티 서비스에 당장 적용 가능한 플랫폼과 방대한 사용자 정보가 이들의 든든한 판돈이다. 문제는 서비스를 담을 새로운 이동성 도구인데, 지금까지 그것이 PC, 노트북, 스마트폰이었다면 다음은 자동차다. 자율주행차를 테스트하고 차량용 인포테인먼트를 공급하는 등 손수 모빌리티 생태계 구축에 나선 라이벌 네이버와 달리 카카오는 사용자 정보 기반의 서비스 플랫폼을 확장하는 데 애쓰고 있다. 자동차 말고는 모두 가진 카카오에게 국내 시장점유율 1위 업체인 현대차그룹보다 나은 파트너는 없다.

새로운 모빌리티 시대에도 시장점유율 1위를 바라는 현대차에게도 역시 카카오는 더할 나위 없는 동반자다. 음악은 물론 일상의 관심사, 소비패턴과 소득수준까지 가늠할 수 있는 사용자 정보를 이미 거머쥐고 있어서다(물론 당장은 국내 사업체가 사용자정보를 이용하는 데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서버형 음성인식 기술(카카오 I)에서 보듯 AI와 빅데이터 및 분석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모두 자동차 제조사인 현대차가 손수 확보하거나 직접 관리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들이다. 현대차는 이미 주요 시장마다 별개의 전략적 파트너를 두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 최대 인터넷 기업 바이두와 ‘커넥티드 카 전략적 협업 양해각서’를 체결했고 올해 초에는 동남아시아의 우버라 할 수 있는 그랩(Grab)에 투자를 결정했다. 카카오는 한국 내 커넥티드 카 개발의 주요 파트너인 셈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지난 12일 포문을 열자 볼보, 지프, 메르세데스 벤츠, 캐딜락 등 수입 브랜드도 잇따라 안드로이드 오토를 적용하고 나섰다. 구글-현대자동차그룹-카카오로 연결되는 파트너십이 결국 안드로이드 오토의 한국 자동차시장 도입의 길을 연 셈이다. 안드로이드 오토가 그렇게 ‘신박한’ 기술인가 묻는다면, 꼭 그렇지는 않다. 최근 적용된 수입 브랜드의 신모델로 경험해본 바, 아직은 안정성이 떨어지고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과 호환되지도 않아 불편한 점이 없지 않았다. 안드로이드 오토의 디자인을 반영한 카카오내비의 UI는 다소 어수선해 보였고, 스마트폰을 직접 다루려 할 때 종종 안내 중이던 경로가 초기화되는 등의 오류도 보였다. 케이블과 블루투스가 모두 연결된 상태에서 통화 중이던 전화가 갑자기 종료되는 일도 있었다.

음악 애플리케이션은 멜론부터 벅스, 지니뮤직, 네이버뮤직까지 다양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지만 지도 앱은 카카오내비와 국내에선 쓰임새가 크게 떨어지는 웨이즈(Waze) 두 가지뿐이다. 인터넷 매체 ZD넷 코리아 보도에 따르면 구글은 “내비게이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앱 개발에 필요한 기본 구조)는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라 T맵, 네이버지도 등 다른 지도 앱은 당분간 안드로이드 오토에서 사용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