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 프리미엄은 어디 가고 모던과 프리미엄만 남았나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6년. “더 이상 품질과 안전만 강조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전 세계 어떤 자동차 제조사라도 하는 일이니까요. 글로벌 리더로서 이제는 그 이상의 가치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6년 전, 그러니까 2012년 4월쯤 현대자동차가 양재동 사옥에서 진행한 ‘브랜드 전략 설명회’에서 마케팅사업부장 조원홍 전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시 그 자리에서 오간 얘기는 많았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현대자동차에 브랜드를 입혀나가겠다’는 것. 좀 더 상세하게는 양산 자동차로서 프리미엄을 선보이겠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정리했다는 새로운 브랜드 방향성도 이때 공개했다. 모던 프리미엄(Modern Premium)이었다.

당시 현대차는 승승장구 중이었다. 그해 영업이익만 8조4369원에 달했다. 매출액에 비교한 영업이익률은 10.0%나 됐다. 미국과 중국 시장에서 성공, 대규모 리콜에 천재지변까지 덮친 일본 자동차 제조사의 부진이 맞물린 결과였다. 세상 무서울 것 없는 시절이었다. 기아차까지 포함한 그룹의 연간 세계 판매량은 700만대를 넘었고, 머잖아 연간 세계 판매 1000만대 클럽이 될 거라며 떵떵거리던 시절이기도 했다. 어떤 변화가 있어야 했다. 젠 채 하는 게 아니라 그래야만 했던 시점이다. 현대차는 2000년대에 제품 수준과 회사 규모를 비약적으로 키웠다. 품질경영으로 대표되는 정몽구 리더십의 결과였다. 회사의 몸집을 키웠으니 다음 단계는 성장한 몸집을 보기 좋게 가다듬고 가꾸는 일이었다. 흔히 말하는 브랜딩(branding)이 필요했단 얘기다. 모던 프리미엄은 바로 그런 시절에 등장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모던 프리미엄은 기존 프리미엄이나 럭셔리와는 다른, 새롭거나 현대적인 프리미엄이었다. 바꿔 말하면 ‘고급스러운 대중차’였다. 대량생산 대중차 브랜드에 프리미엄이 웬 말인가 할 수 있지만 난 무릎을 탁 쳤다. 가격대비 가치(Value for money)로 대중차 시장 저변에 파고든 현대차였지만 중국 자동차 회사들의 성장을 생각하면 마냥 그 자리에 머물 순 없는 노릇이었다. 마침 고급차 브랜드 출범도 백지화돼 가는 분위기였다. 고급화된 대중차는 당시 현대차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향이었다.



6년이 지났다. 그 사이 현대차는 인테리어나 세부 기능 등 사양에 있어 자동차 시장의 최신 추세를 충실히 따라갔다. 파워트레인, 섀시 등의 기술 수준도 이를 든든히 뒷받침했다. 신모델들은 그룹 내 자매 브랜드 기아차의 희생(?)을 발판 삼아 한 끗 더 고급한 분위기를 갖춰갔다. 현대모터스튜디오라는 브랜드 체험관도 새롭게 문을 열었다.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브랜드 방향성은 순조롭게 구현돼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최근 현대차가 모던 프리미엄을 언급하는 일은 꽤 줄어들었다. 어디선가 꾸준히 그 문구를 입에 올리고 있다 해도 모던 프리미엄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이는 여전히 많지 않다. 그게 현대차라는 브랜드의 방향성이란 걸 아는 사람은 더 드물 테고. 모던 프리미엄이 여전히 유효한 브랜드 방향성인 점은 분명하다. 기업 면면을 홍보하는 브로셔에 ‘Modern Premium’ 문구가 선명한 게 한 증거다. 6년 전 브랜드 전략 설명회에서 모던 프리미엄을 처음 소개한 조원홍 마케팅사업부장 역시 지금은 고객경험본부 부사장으로써 기회가 있을 때마다 ‘모던 프리미엄 익스피리언스’를 설파하고 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현대차엔 모던 프리미엄의 자취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 스스로 꺼내어 말하길 망설이는 게 이유일 수 있다.



망설이는 이유를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다.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막연한 표현을 쉽게 설명할 방법을 아직 찾지 못해서다. 그런데 그게 큰 이유라면 그것대로 심각한 문제다. 모던 프리미엄은 결코 막연한 표현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 이는 ‘가격대비 가치(Value for money)’의 조금 더 세련된 표현이다. 지난해 반짝 유행했던 ‘B+ 프리미엄’과 같은 맥락에 있기도 하다. 가격은 합리적이지만 기능과 품질이 뛰어난 준(準) 고급 제품 말이다. 설마 모던 프리미엄이라는 표현에 도취돼 자신들의 상대가 진짜 프리미엄 브랜드라고 여겼던 걸까? 모던 프리미엄은 가격대비 가치로 승부하던 과거 이미지를 떨쳐내고 싶어 꺼내든 방향성이지만 현대차가 대중적인 자동차라는 사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위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리 멋지고 세련된 수사를 동원해도 당위를 얻기 어렵다.



시시콜콜 참견하는 건 브랜드 방향성을 다루는 그들의 방식이 안타까워서다. 이는 캐치프레이즈나 슬로건, 캠페인보다 앞서는 상위 개념이다. 브랜드의 근간이나 철학이라 이해해도 무리 없다. 그런데 현대차는 넥쏘, 코나 일렉트릭과 같은 친환경차의 트림명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두 종류 전기차에 운영하고 있는 ‘모던’과 ‘프리미엄’ 트림을 통해서 말이다. 난 브랜드의 큰 그림을 이런 식으로 소비하는 자동차회사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저작권자 © 오토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