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이 까여야 잘 팔리는 자동차?

“자동차 디자인 평가는 주관에 좌우되기 때문에 평가가 분분하다. 혹평을 받는다고 판매까지 실패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초반에 평이 좋지 않다가 익숙해지면서 대박 나기도 한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디자인은 자동차 요소 중에서 평가하기 조심스러운 분야다. 워낙 주관이 많이 작용해서다. 디자인 전문 지식이 있는 층과 그렇지 않은 쪽의 평가가 엇갈린다. 자동차에 관심 있는 마니아와 굴러가기만 하면 자동차라고 아는 문외한 사이에도 평가 기준이 다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게 전부가 아니어서, 별 볼 일 없어 보여도 디자이너의 심오한 세계관과 철학이 깊이 담겨 있기도 하다.

평가가 쉽지 않다지만 성공한 또는 잘한 디자인을 가려내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는데, 판매량도 기준 중에 하나다. 많이 팔린 차 디자인은 성공한 디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반 대중이 크게 거부감 느끼지 않고 구매해서 나온 결과니, 수많은 사람의 심판을 통과한 셈이다. 물론 자동차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디자인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성능, 가격, 브랜드, 효율성 등 여러 요소를 복합적으로 판단해서 결정한다. 다른 부분이 좋아도 디자인이 밉다면 판매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디자인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다른 부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는 경우도, 어색함은 클지언정 받아들일 수는 있다는 마음이 작용한 결과다. 정말 디자인이 밉다면 아예 선택하지 않는다.



보다 보면 익숙한 디자인도 성공한 축에 속한다. 처음 볼 때는 아니다 싶은데 보면 볼수록 괜찮아지는 디자인이 있다. 너무 앞서 나가서 현재 트렌드에 맞지 않고 이상해 보이는 경우다. 새로운 시도는 어색해 보이기 마련이다. 2000년대 초반 크리스 뱅글이 주도해서 BMW 디자인이 파격적으로 바뀐 적이 있다. 엄청난 논란이 일었고 대부분 비판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자동차 디자인 트렌드를 뒤엎는 혁신으로 평가받았다. 시대를 앞서나가면서 보기도 좋은 디자인은 생각보다 잘 없다. 현재 트렌드에 길든 구매자들의 시각을 쉽게 바꾸기 힘들어서다. 시간이 흘러야 좋아 보인다.

얼마 전 현대자동차는 아반떼 부분변경 모델을 내놓았다. 부분변경인데도 디자인 변화 폭이 커서 완전변경 모델처럼 보인다. 디자인 변화가 커서 관심도 그만큼 많고 평가도 분분하다. 처음 예상도가 돌아다닐 때만 해도 ‘망작’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평이 좋지 않았다. 속된 말로 ‘대차게 까였다.’ 잘 팔리던 아반떼가 디자인 때문에 망할 것이라는 예측이 돌았다. 한 집안 형제차인 기아자동차 K3이 혜택을 보겠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다. 실제 사진이 공개됐어도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도 때 나왔던 예측에 힘을 실어줬다.



신차발표를 하고 실물이 공개되고 나서야 분위기가 좀 달라졌다. 이상해 보인다는 의견이 여전히 많지만 실물로 보니 괜찮다는 평가가 조금씩 나온다. 보통 자동차 평가는 인터넷 여론이 주도한다. 실제 구매자들 평가는 묻히기 마련이라 판매를 시작해야 반응을 알 수 있다. 설사 이상한 디자인이라도 눈에 익으면 괜찮아 보인다. 아반떼의 판매량 추이를 보면 디자인 성공 여부도 판가름 날 터다.

아반떼 같은 대량 판매 모델은 인지도가 높고 가성비가 우수해서 아주 흉측하게 생기지 않은 이상 어느 정도 판매는 보장된다. 새로운 디자인을 시도해도 사람들이 받아들인다. 거부감이 있어도 판매가 늘어 길거리에 많이 돌아다니면 익숙해진다. 새로운 디자인을 전파하는 도구로 제격이다. 까인다고 망작이 아니라, 까이는 차가 오히려 반전을 일으켜 새로운 디자인 트렌드를 전파하며 승승장구할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에 유독 초기에 좋지 않은 평가를 받다가 잘 된 경우가 몇몇 눈에 띈다. YF 쏘나타가 처음 나왔을 때 이번 아반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혹평을 받았다. 그런데 디자인이 익숙해지고 난 후에는 쏘나타의 명성을 이어가며 판매는 고공 행진했다. 아반떼 디자인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헥사고날 그릴을 적용한 아반떼 MD는 곤충룩이라는 비아냥 섞인 혹평이 따랐지만 금세 익숙해졌고, 디자인이 판매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현대차가 내놓은 모델을 보면 혹평까지는 아니더라도 낯설어서 어색해 보이는 디자인도 금세 익숙해진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국내 시장에서 독점하다시피 잘 팔리다 보니 물량으로 익숙함을 주입한다. 마치 세뇌하듯 괜찮은 디자인이라는 암시를 심어 넣는다.



반대로 첫인상이 보기 좋고 어색한 부분이 없는 차가 부진한 경우도 있다. 디자인은 잘 뽑았는데 판매는 신통치 않다. LF 쏘나타가 그렇다. 어디에도 먹히는 안전한 디자인을 추구하지만, 전혀 안전하지 않은 결과가 나온다. 자극이 없어서다.

요즘은 희소하고 개성 강한 차를 찾는다. 대중차에도 이런 특성을 요구한다. 첫인상에 무엇인가 자극이 필요하다. 파격을 입히니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아주 많이 못생겨서 진짜로 망할 차의 단계까지는 내려가지 않은, 시간을 두고 익숙해질 디자인을 입힌다. 까이더라도 살아날 여지를 심어 놓는다. 일종의 모험일 수도 있고, 고도로 계산된 수준 높은 디자인일 수도 있다.



디자인을 놓고 어떤 깊이 있는 분석과 전문적인 평가가 나오든 간에, 대부분 구매자들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어느 정도 인지도가 있는 차는 생김새가 혐오스럽지만 않으면 선택한다. 게다가 까인다는 것은 새로운 요소가 있다는 뜻이다. 까여야 잘 팔리는 속실이 이번 아반떼에도 통할 지 두고 볼 일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탑기어> 한국판 편집장)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등을 거쳤다. 현재 글로벌 NO.1 자동차 전문지 영국 BBC <탑기어>의 한국판 편집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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