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는 어드밴스드 스튜디오에서 일을 할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디자이너를 원했다. 일본인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레이더망을 넓혔다. 그 중 한 명이 나였다”

[임범석의 디자인 에세이] 혼다 어드밴스드 스튜디오는 비밀스러운 공간이었다. 물론, 나는 일본으로 건너오기 전 혼다와 계약을 맺었고, 회사 ID카드에도 혼다 로고가 명확히 새겨져 있기는 했다. 하지만 명함에는 혼다 소속임을 보여주는 그 무엇도 없었다. 우리 역시 이곳을 그냥 ‘WAVE 스튜디오’라고 불렀다. 당시 도쿄에 J-WAVE라는 라디오 방송국이 있었는데, 이 때문에 WAVE 스튜디오를 라디오 방송국 자회사, 혹은 그와 비슷한 일을 하는 곳으로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쨌든,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임을 연상시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혼다는, 외부사람은 물론이고 내부인들에게도 혼다 어드밴스드 스튜디오가 알려지는 걸 바라지 않았다. 단지 몇몇 임원들만 알고 있었을 정도. 따라서 어드밴스드 스튜디오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CEO 직속이었다. 내 사무실 옆이 헤드쿼터에서 온 임원용 방이었다.
그렇다면 왜? 혼다는, 어드밴스드 스튜디오가 일반적인 디자인 스튜디오 그 이상이 되기를 원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전략기획까지 세울 수 있는 새로운 부서를 설립한 것. 어드밴스드 스튜디오가 자동차 디자인 그 이상의 새로운 컨텐츠를 기대했고, 또 그렇게 할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했다. 록히드 마틴의 ‘스컹크 웍스’를 벤치마킹한 아이디어였다. 스컹크 웍스는 U-2, SR-71 블랙버드, F117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와 같은 비행기를 만든 록히드 마틴의 미래형 개발 프로그램. 이제 스컹크 웍스라는 이름은 비공개 프로젝트 관련,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갖춘 대규모 조직 내 소규모 엘리트 그룹을 지칭하게 됐다. 그렇다, WAVE 스튜디오는 혼다의 스컹크 웍스였다. 임무는 ‘미래를 위한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 생산라인에 존재하지 않는 ‘미래형 모델 개발’이 목표였다.

어디밴스드 디자인 스튜디오는 ‘긴자’ 근처 스미다 강변에 자리 잡았다. 긴자는 고급백화점과 명품브랜드 숍이 즐비한 도쿄 최고의 번화가였다. 비즈니스 중심지역에 어드밴스드 스튜디오를 둔 이유는 가장 빠르게 최신 트렌드를 접할 수 있고, 또 그만큼 쉽게 흡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래 디자인을 위한 다양한 영감을 얻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였다. 다른 자동차 브랜드 역시 도심 중심부에 스튜디오를 열었는데, 당시 트렌드이기도 했다.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당시 일본은 버블경제 절정기였고, 도쿄 중심부 땅값이 평당 1억 엔(약 10억 원)을 육박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혼다 어드밴스드 스튜디오는 클린 스튜디오(clean studio)였다. 실물 크기의 1:1 모델은 스튜디오 내에서 직접 만들지 않았고(외주작업으로 진행), 따라서 페인팅작업도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서는 1/4 사이즈의 모델작업과 스케치만 했다. 물론 석 대의 대형세단을 한번에 세워놓을 정도의 넉넉한 공간은 있었다.
혼다는 어드밴스드 스튜디오의 기획을 끝낸 뒤, 디자이너를 스카우트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낼 디자이너를 원했다. 일본인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레이더망을 넓혔다. 그 중 한 명이 나였다.

당시 자동차 디자이너 고용시장이 지금처럼 글로벌화 된 건 아니었다. 대부분 현지에서 인력을 뽑았다. 즉, 미국 브랜드는 미국학교 출신을, 유럽 브랜드는 유럽학교 졸업생을 뽑았으며, 일본 역시 자국 내에서 일본 출신 디자이너를 고용했다. 일본에서 일하는 ACCD 출신 디자이너는 거의 없었다. 일본은, 미국 및 유럽 출신 자동차 디자이너들이 가기에는 너무 먼 곳이었다.
혼다는 해외 디자이너 영입을 위해 다양한 조건을 내걸었다. 기본급 외에도 보너스, 주택 및 가전제품 무료제공, 심지어 고향에 갈 때 쓸 수 있는 비행기 무료티켓도 있었다. 자국 출신 디자이너보다 더 좋은 혜택이었으며, 내가 GM에서 받았던 것보다도 더 괜찮았다.
어드밴스드 스튜디오에서의 공식언어는 영어였다. 물론, 스튜디오 내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에 능숙한 건 아니었다(덕분에 나는 스튜디오에 금세 적응했지만, 일본어를 익히기까지는 한참 걸렸다). 초기, 나는 일본어를 하지 못했고, 몇몇 디자이너만이 영어를 했지만, 이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동차를 이야기하는데 불편함이 없었다. 우리는 자동차 디자이너다. 스케치만으로도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자동차는 ‘카 가이’들에게, 특히 우리 같은 디자이너 세계에서는 보편적인 언어였다.
이곳은 매니저 및 비서진을 포함해 15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나를 포함해 세 명의 외국인 디자이너가 있었다. 그리고 젊은 스튜디오였다. 디자이너 대부분이 20~30대, 나이가 가장 많았던 사람이 40대 매니저였다. 폰티악 스튜디오에는 60대 엔지니어, 50대 후반의 모델제작자, 40대 디자이너가 일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일본 출신 디자이너와 외국인 디자이너 사이에 경쟁이 생긴다. 알게 모르게 경쟁은 치열하다. 당시 일본 노동시간 규정 때문에 일본 디자이너들은 매주 수요일만큼은 6시 전에 퇴근해야 했다. 야근금지. 반면에 외국 디자이너들은 그 규정을 받지 않았고,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일본 디자이너들도 그냥 집으로 가지 않았다. 퇴근과 함께 다시 사무실로 복귀해서 스케치를 하고는 했다(물론 야근수당을 받지는 못했다). 모두가 자동차에 푹 빠진 친구들이었다.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혼다에 입사한 이유를 물은 적이 있었는데, 혼다 자동차와 모터사이클을 좋아했기 때문이라는 답을 내놓았다. 혼다가 보여준 F1 능력에 관심이 많다는 답도 있었다. 자동차에 대한 열정은 혼다 제품에만 국한된 게 아니었다. 알파로메오, 포르쉐, 로터스, 콜벳, 페라리 등등 모든 브랜드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은 진정한 ‘카 가이’였다. 일본 디자이너들과 자동차 그리고 디자인을 이야기하면서 우정이 점점 두터워졌다.
그렇다고 경쟁관계가 사라진 건 아니다. 우정은 우정이고 경쟁은 경쟁이다. 화기애애한 스튜디오였지만 아침마다 긴장감이 맴돌곤 했다. 매일 아침 모든 디자이너들이 프리젠테이션 보드에 새로운 스케치가 있는지 확인한다. 디자이너 대부분이 퇴근 전 스케치를 끝내고 벽에 붙인다. 모두가 최고의 작품을 선보였고, 다음날에는 또 다른 플레이어가 더 멋진 스케치를 내놓았다. 그래서 모든 디자이너들이 아침마다 벽을 확인했다. 어느 순간부터 게임처럼 느껴졌다. 이 역시 스튜디오 활동의 일부로 전세계 어느 스튜디오나 마찬가지다. 메인 스케치가 결정되면 다른 스튜디오와 경쟁하기 위해 한 팀이 되지만, 메인 스케치가 정해지기 전까지는 서로가 경쟁을 한다. 내 작품이 메인 스케치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다. 경쟁과 협동의 반복이다.
프리젠테이션 날짜가 다가올 무렵이면 일본 친구들이 내 책상으로 자주 온다. 처음에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만은 아니었다. 내 스케치를 슬쩍 보러 온 것이다. 정찰이라고 해야 할까? 이후 나도 그 친구들 자리에 자주 갔다.
나는 일본 디자이너들보다 더 열심히 해야 했다. 그들보다 왜 더 높은 연봉을 받는지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일본 친구들 역시 외국인 디자이너에 비해 실력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사랑과 우정 사이>라는 노래가 있었듯, 우리 디자이너들 관계는 ‘우정과 경쟁 사이’였다. 그렇다고 내가, 혹은 그들이, 민족주의를 내세운 적은 한 번도 없다. 우리는 친구이자 경쟁자였다. 서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내가 일본 자동차 디자인 스튜디오서 근무하는 유일한 한국인 디자이너였지만, 그게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몇몇 일본 디자이너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놀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자동차업계 주류에 끼지 못했던 상태. 그럼에도 디자이너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치 않았다. 뛰어난 아이디어와 이를 멋진 스케치로 표현하는 실력이면 충분했다. 자동차 디자인 세계는 공정한 경기장이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범석 (전 미국 ACCD 디자인학과 교수)
임범석 칼럼니스트 : 미국 ACCD를 졸업하고 GM 및 혼다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ACCD 교수를 역임하며 미래 자동차업계를 이끌어갈 인재를 양성했다. 최근 중국으로 활동무대를 넓혀 글로벌 디자인 컨설턴트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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