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최근 포르쉐 파나메라 e-하이브리드를 타고 장거리를 달렸다. 현재 자동차 업계의 기술 변화와 흐름을 피부로 고스란히 느끼게 해준, 의미 있는 차였다. 이 차는 내연기관과 전기모터, 배터리가 합쳐진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구동계를 사용한다. 이전의 PHEV와 비교할 때 개념적으론 새로울 것이 없지만, 기술을 표현하는 방법은 분명 달랐다. 각 주행 모드는 목표가 구체적이다. 단지 효율을 높이거나, 주행 성능을 끌어올리는 게 전부가 아니다. 아주 미묘하고 복잡한 로직을 통해 동력과 에너지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든다. 그래서 자연스럽다. 마치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이 차의 특징이자 장점은 첨단 기술을 복잡하게 늘어놓거나, 과시하는 용도로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기술을 최대한 정제해서, 누구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도록 구현했다. 기술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괴리감을 줄였다. 포르쉐다운, 아주 세련된 표현력이다.

“어, 그런데 오디오는 보스를 쓰네? 아쉽다.” 파나메라 e-하이브리드를 함께 경험한 지인의 평이다. 조금 전까지 이 차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든다며 두 팔 벌려 반기던 그였다. 여기서 정확한 의미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이 차와 더 어울리는 고급 오디오 브랜드가 있을 것이라는 뜻처럼 들렸다. 렉시콘, 마크 레빈슨, 부메스터, 뱅&울룹슨 같은 하이엔드 카오디오 브랜드가 대표적일 것이다. 물론, 오디오는 개인의 취향이 크게 반영되는 영역이다. 그러니까 기준도 없고, 정답도 없다. 그의 관점에선 그 평가가 옳다(이유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내 관점에서의 생각은 좀 다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스(BOSE)만큼 뛰어난 카오디오 시스템도 드물다.

보스는 1964년 MIT 전자공학 교수이자 음양학 박사였던 아마 보스(Amar G. Bose)가 설립한 회사다. 이들의 특징은 첨단 측정 장비와 컴퓨터 기술로 고품질 음향을 만든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여느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와 접근 방식이 조금 다르다. 감성이나 예술적인 측면이 아니라 음향 기술적인 부분을 가장 강조하다.
보스 스피커는 무지향성(Direct Reflecting)이라는 특수한 설계방법을 사용한다. 이 기술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직접도달음보다 반사음에 비중을 둔다. 그래서 오디오 시스템 속에 있다면 위치와 상관없이 일정한 사운드를 제공한다. 실제로 포르쉐나 인피니티에 사용되는 보스 서라운드(BOSE Surround) 시스템을 사용해보면 운전석, 동승석, 뒷좌석을 가리지 않고 꽤 비슷한 음질을 경험할 수 있다.

미국 자동차 오디오 역사에도 보스가 많은 영향을 미쳤다. 혁신적인 기술로 성능을 크게 발전시킨 제품이 시대별로 있었다. 최근 인상적이었던 기술은 캐딜락 CT6에 사용된 파나레이(Panaray) 사운드 시스템이다. 이전의 ‘보스 심포니 사운드’ 시스템은 실내 4곳을 중심으로 스피커와 자체 앰프, 전용 신호 처리용 전자 장치가 소리를 구현했다. 반면 새로운 파나레이 시스템은 34개 스피커와 복잡한 데이터 네트워크 장치를 쓴다. 시스템에는 저속과 고속에서 개별적으로 제어되는 네트워킹 장치가 4개의 앰프와 각각 물린다.

파나레이 오디오 시스템은 분산형 베이스 기술이 특징이다. 보통 자동차용 우퍼는 커다란 크기의 스피커를 쓴다. 반면 파나레이에서는 크기가 작은 4개의 독립형 앰프가 달린다. 앞 좌석 아래에 달린 2개의 인클로져(Enclosure, 스피커 박스)에서 앰프 특유의 쿵쾅거리는 소리를 만든다. 그리고 각각의 앰프와 2.75인치 스피커 4개가 연동해 고유 진동을 상쇄한다. 뒷좌석에서는 양쪽 문에 달린 4개의 4인치 스피커와 선반 아래 달린 10인치 서브 우퍼가 각 채널의 베이스를 나눠서 표현한다. 이들은 CT6의 파워트레인에서 실내로 들이치는 소음을 상쇄하는 데도 큰 역할을 한다.

파나레이의 기술적 하이라이트는 앞좌석 헤드레스트 속에 두 개씩 장착된 2인치 울트라니어필드(UltraNearfield) 스피커다. 울트라니어필드 스피커는 다른 스피커와 일정한 시차를 두고 양쪽 귀에 소리를 전달한다. 윈드실드 아래, 혹은 다른 차의 부위에 달린 스피커에서 발생한 소리가 실내 어딘가에 반사되어 운전자에게 전달되기 까지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물론 결과적으론 자동차 안 전체에서 소리가 동시에 들리는 것 같은 효과다. 실제로 경험해보면 파나레이는 아주 선명하면서도, 동시에 넓은 공간감을 선사한다. 스피커가 승객을 향해 직접 소리를 조명하는 느낌이 아니라, 선명한 소리로 샤워를 하는 감각이다.

보스가 사용하는 이런 첨단 오디오 시스템을 자동차 회사가 꾸준히 주목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제는 오디오가 단순히 음악을 위한 기구가 아니다. 직접적인 신호 처리 기술을 포함한 하나의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으로, 승객이나 주변 환경과 연동해야 한다. 예컨대 내비게이션에서 우회전을 지시할 때 오른쪽에서 좀 더 강하게 소리가 들리면 어떨까. 또는 자동차 주변에 위험 요소가 감지될 때 경고음을 거리에 따라 다르게 구현할 수도 있겠다. 경고음이 멀리, 보통, 가깝게 구분해서 들린다면 운전자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위험 요소의 위치를 이해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 사실 이런 연구는 현재 다양한 자동차 회사에서 진행 중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양산 자동차에 첨단 기술을 접목하는 카오디오 브랜드는 많지 않다. 어쩌면 보스가 이 분야에서 거의 유일할 수도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