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 콧수염 회장 가고 젊은 스웨덴인 오고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지난 수요일 다임러 그룹은 현 회장 디터 체체가 내년 5월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젊은 스웨덴인 올라 칼레니우스(Ola Källenius)가 새로운 회장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 디터 체체 시대, 막을 내리다

콧수염이 인상적인 디터 체체 회장은 2006년 다임러 그룹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신입사원에서 회장 자리에까지 오르며 월급쟁이 신화를 쓴 위르겐 슈렘프 전임 회장의 실책이었던 크라이슬러와의 합병을 정리하며 그의 회장으로서의 역할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엄격할 것 같은 인상과 달리 그는 친근한 이미지를 구축했다. 모터쇼 등에서는 캐주얼한 차림과 특별 이벤트를 진행하는 등, 활동적인 모습으로 다가섰다. 첫 번째 아내를 2010년 암으로 떠나보내고 그는 2016년 프랑스 여인과 두 번째 결혼을 하게 된다. 독일어와 영어, 프랑스어 외에도 여러 외국어에 능통하다.

이런 디터 체체는 2013년까지였던 임기가 2016년으로 연장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사회는 2019년 말까지 그의 임기를 3년 더 연장하게 된다. 그를 믿고 지지했던 것이다. 디터 체체가 회장 자리에 올랐을 때 주가는 10% 가까이 뛰었고, 그가 물러날 것이라는 발표에 주가는 2%가량 떨어졌다. 그가 회장으로서 이뤄낸 성과가 작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디터 체체 체제의 성공

당시 다임러 그룹은 메르세데스 벤츠로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그룹이었지만 BMW는 물론 아우디에도 밀리는 상태였다. 순이익은 낮았고, 판매량에서도 밀렸다. 2013년까지 이런 좋지 않은 상태가 이어졌다. 하지만 2016년, 메르세데스 벤츠가 BMW를 넘어섰다. 이후 계속 성공적인 판매량을 보이며 잠자던 공룡이 깨어났음을 알렸다.

이처럼 변화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은 디터 체체의 과감한 승부수들이 통했기 때문이다. 당시 다임러의 상용차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던 젊은 디자이너 고든 바그너를 메르세데스 벤츠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앉혔다. 늙고 오래된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디터 체체 회장의 선택이었다.

결정은 성공적이었다. 노인들이 타는 차로 여겨졌던 A클래스를 젊은 스타일의 해치백 형태로 바꾸었다. 소형 해치백에 대한 노하우가 많지 않던 벤츠는 르노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변화는 시선을 끌어 모았다. 벤츠에 관심을 두지 않던 젊은 여성 고객들까지 벤츠 스타일에 매료된 것이다. 점점 소형 라인업을 키우면서 남녀노소 모두에게 어필하는 브랜드로 바뀌어갔다.

좀처럼 성과를 보이지 못하고 헤매던 마이바흐 브랜드를 과감하게 정리한 것도 디터 체체의 결정이었다. 오히려 마이바흐를 S클래스에 흡수시켜 벤츠의 진정한 플래그십은 S클래스임을 분명히 했다. S클래스의 지지층은 더 넓어졌고 더 확고해졌다. 또한 F1에서도 성공을 거두며 스포티한 브랜드라는 이미지까지 더할 수 있었다.



◆ 디터 체체 체제의 어두운 면

하지만 이런 성과들 속에 어두운 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최근에는 유럽에서 77만 대의 디젤차를 강제 리콜해야 했다. 디터 체체 회장은 프로그램 결함에 따른 리콜이라고 했지만 배출가스 저감 장치가 작동하지 않게 의도적인 조작이 있었다는 게 독일 정부의 발표였다.

2017년에는 300만 대에 해당하는 모델을 자발적 리콜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언론에서 프로그램 조작 의혹이 발표되고 난 뒤의 조치였다. 이처럼 디젤 배출가스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던 다임러는 설상가상 담합의혹으로 도덕성이 다시 한 번 타격을 입었다. EU의 반독점법 위반에 따른 벌금을 피하고자 다임러가 가장 먼저 자백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최소 10조의 벌금을 피할 수 있게 됐다는 독일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 불과 7개월 남기고 물러나

현 디터 체체 다임러 회장의 임기는 2019년 말까지였다. 그런데 5월에 물러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불과 임기를 7개월 앞두고 스스로 물러나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아마도 2년 뒤의 일정을 고려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임러 그룹은 디터 체체가 물러난 뒤 2년 동안의 휴지기를 갖는다고 전했다. 회장이 바로 감독위원회에서 활동할 수 없게 한 다임러의 규정에 따른 것으로, 디터 체체 회장은 퇴임하고 2년 후인 2021년 감독위원회로 들어가 의장직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 의장의 임기가 2021년 중에 끝나기 때문이다.

경영 1선에서 더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여전히 그는 다임러 그룹의 미래를 위해 일하게 된다. 어두운 면도 있었지만 벤츠의 부활에 14년 동안 그룹을 이끌어온 디터 체체 회장의 역할이 컸음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뒤를 잇게 될 사람은 누굴까?



◆ 신임 회장 외국인, 비엔지니어 출신

디터 체체 회장이 한때 여성이 자신의 뒤를 이을 수 있다고 발언하기도 했지만 결국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게 됐다. 여성 대신 선택한 이는 올라 칼레니우스. 스웨덴에서 태어나 스웨덴과 스위스 등에서 국제 경영과 재무를 공부했던 비엔지니어 출신이다.



독일에서는 이미 황태자라는 표현을 쓰며 유력한 디터 체체 회장의 후임으로 얘기되고 있던 인물이었다. 1969년생으로 만 49세로 젊은 편이다. 메르세데스의 수석 디자이너 고든 바그너보다도 1살 더 어리다. 1993년 다임러에 입사한 그는 엔진과 전장 부분 수석 관리자 역할을 하는 등,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기술자들과의 사이도 좋은 것으로 평가된다.

2015년 이사회 임원이 되면서 차기 회장의 유력 후보로 이때부터 거론되기 시작했고 현재는 그룹 마케팅과 벤츠 자동차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감성과 이성의 조화, 다양성 등을 강조하며 디터 체체 회장처럼 캐주얼 차림을 즐기며 소통에 능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5년 임기로 내년 5월 회장에 취임하게 되면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로 대표되는 새로운 자동차 시장의 변화에 잘 대처해야 한다. 다임러는 바로 이런 다변화 시대에 어울리는 인물로 올라 칼레니우스를 본 것 같다.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이 자신들의 운명을 비독일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그간의 독일 자동차 회사의 모습으로는 쉽지 않은 결정처럼 보인다.

또한 늘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회장직을 수행했던 흐름도 올라 칼레니우스의 등장으로 바뀌게 되었다. 디터 체체 회장이 삼각별을 부활시켰다면 올라 칼레니우스 신임 회장은 이전과 다른 감각과 능력을 발휘해야 한다. 과연 이 젊은 스웨덴인이 벤츠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을까? 다임러의 선택에 큰 관심이 쏠린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와 <핀카스토리>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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