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형 세단이 한물갔다고? K5를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중형 세단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대표하는 차종이다. 요즘 들어 조금 주춤하지만 K5는 성장세를 유지하면서 시장을 이끌어간다”



가수와 자동차의 공통점. 첫 번째, 활동과 휴식을 반복한다. 가수는 음반을 내고 본격적으로 활동한 후 신곡 효과가 떨어지면 다음 음반을 준비하기 위해 활동을 줄인다. 자동차는 신차가 나오면 신차효과가 나타난 뒤 다음 신차발표 때까지 판매량이 줄어든다. 두 번째, 유행을 탄다. 발라드가 인기이다가 어느 때인가 댄스가 대세가 되는 등 유행이 변한다. 자동차도 유행을 탄다. 국내 시장은 세단이 주류였는데 요즘에는 SUV가 인기 차종으로 떠올랐다. 세 번째, 꾸준한 인기를 얻기가 쉽지 않다. 오래도록 사랑받는 가수는 드물다. 나이가 들고 유행에 뒤처지면 잊힌다. 국민가수 칭호를 받으며 장수하는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자동차도 같은 이름으로 장수하기가 쉽지 않다. 시장은 변하고 새로운 차들이 쏟아지기 때문에 늘 경쟁해야 한다.

중형 세단은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을 떠받치는 중요한 분야다. 세단과 큰 차를 선호하는 시장 특성에 딱 들어맞는 차종이라 가장 큰 인기를 누렸다. 오래도록 많은 판매량을 유지하며 시장을 이끌었고, 우리나라 자동차시장을 대표하는 모델로 인정받았다. 국산 중형 세단은 4종이 경쟁한다. 중형 세단을 지배하는 업체가 시장을 손에 넣는다고 할까? 워낙 중요한 시장이라 각 업체는 중형 세단에 공을 많이 들인다.



아무리 시장을 책임지는 차라고 해도 항상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는 없다. 신차가 나오고 시간이 흐르면 다음 신차가 나올 때까지는 약발이 떨어진다. 지금은 중형 세단 시장이 고요하다. 신차도 없고 모두 완전변경 모델을 준비하는 중이다. 아마 신차를 준비하는 각 업체는 고민이 크리라고 본다. 시장이 예전 같지 않아서다. 중형 세단끼리 경쟁하는 시대는 가고 이제 다른 분야까지 상대해야 한다.

몇 년 전부터 국내 자동차시장이 변하기 시작했다. 중형 세단 시장 인기가 예전보다 떨어졌다. 수십 년 동안 시장의 주류 자리를 지켜온 중형 세단이 흔들린다. 중형 세단 자리를 준대형 세단과 SUV가 파고든다. 집과 차는 줄이기 힘들다는 말을 한다. 중형 세단 타던 사람들이 같은 중형 세단 안에서 수평 이동하는 비중은 작다. 중형 세단이 시장의 중심이었으니, 그보다 큰 준대형으로 중심이 이동하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이 밖에 상당수가 요즘 대세인 SUV로 이동하고, 국산차에서 이동할 곳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수입차로 옮긴다.



올해 중형 세단 판매량을 보면 시장 변화가 한 눈에 들어온다. 현대자동차 쏘나타는 1월부터 8월까지 4만4599대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은 5만5146대였다. 르노삼성자동차 SM5와 SM6를 합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3만2917대에서 올해 2만2795대로 줄었고, 쉐보레 말리부는 2만4519대에서 9353대로 떨어졌다. 중형 세단이 한물갔다고 하기는 이르지만 전성기는 지났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모두 하락세는 아니다. 기아자동차 K5는 유일하게 2만5145대에서 3만1174대로 판매가 늘었다. 올해 1월 부분변경 모델이 나와 신차효과를 유지하며 홀로 선방했다.



시대에 따른 취향 및 국산 중형 세단 위상 변화를 보면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된다. 국산 중형 세단은 국산차 중에서는 역사가 제법 긴 편이다. 모델마다 고유한 역사와 전통을 쌓아왔다. K5를 예로 들면, 1987년 선보인 콩코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5년 크레도스가 나왔고 2000년 옵티마, 2005년 로체로 이어졌다. 2010년 선보인 K5는 기아 중형 세단의 중대한 전환점이다. 패밀리 세단을 지향하는 중형 세단에 스포츠 세단 감성을 입혀 파격적인 모습으로 등장했다. 디자인 경영을 선언한 기아차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피터 슈라이어를 영입했다. 슈라이어가 기아 정체성을 살려 디자인한 첫차가 K7이고 그다음이 K5였다. 디자인 통일과 함께 K시리즈 이름을 달고 나온 두 번째 차이기도 했다. 시장 파급력이 큰 중형 세단이었기에 K5는 기아차의 디자인 변화를 시장에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K5는 기아차 내에서 뿐 아니라 국산차 전체 시장에서도 파란을 일으켰다. 국산차 디자인이 K5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산차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 ‘디자인 기아’라는 인식을 심어준 바로 그 차가 K5다. 사실상 피터 슈라이어가 기아차의 정체성으로 고안한 호랑이 코 그릴을 첫 번째로 적용한 차는 K5의 바로 전 모델인 로체 이노베이션이다. 기아차 변화의 근원이 중형 세단인 셈이다.

K5는 출시 후 반응이 좋아서 월 판매 1만 대를 넘기기도 했고, 그동안 현대차 쏘나타가 확고하게 지키던 1등 자리에 치고 올라가는 이변을 일으켰다. K5 출시는 기아차 이미지 개선은 물론 점유율 상승에도 영향을 미쳐서, 금융위기로 어렵던 시절에 기아차가 급성장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집안인 현대차를 따라가는 위치에서 벗어나 넘어섰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K5는 큰 효과를 거뒀다.



이름을 달리하며 국내 시장에 선보인 기아차 중형 세단은 K5부터 같은 이름을 유지한다. K5 2세대는 2015년 선보였다. 30년 기아차 중형 세단 역사 안에 K5가 세대를 이어가며 고유한 영역을 만들어간다. 디자인 변화와 K5라는 새로운 시리즈 이름을 달고 나온 기아차 중형 세단은 꾸준한 인기를 얻으며 국산 중형 세단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다. 2010년 출시 이후 8년 만인 올해 6월 누적 판매 50만대를 돌파했다. 특히 올해 들어서는 중형 세단 중 유일하게 성장해 꾸준히 제 역할을 해낸다.

K5가 이룬 디자인 혁신은 세계 시장 판매에 큰 영향을 미쳤다. 국내 취향에 머무르지 않고 세계 시장에도 맞게 디자인한 게 효과를 냈다. 특히 미국 시장에서 K5 판매가 큰 폭으로 늘었다. 2010년 11월 미국 시장에 첫선을 보였고, 올해 7월 판매량이 100만대를 넘겼다. 해마다 10만대 이상 팔린 셈. 특히 2012~2015년에는 해마다 15만대 넘게 팔려, 미국 판매 기아차 모델 중 4년 연속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중형 세단 시장이 예전 같지 않지만 시장 특성상 갑자기 확 줄어들지는 않는다. 중형 세단은 워낙 탄탄하던 시장이라 주춤하더라도 조금만 노력을 기울이면 회복을 기대할 만하다. 각 업체도 이 점을 노려 다음 세대 중형 세단에 심혈을 기울인다. K5도 2020년에 3세대 모델이 나올 예정이다. 디자인 혁신의 전환점이라는 큰 역할을 해낸 만큼 신형이 어떻게 나올지 기대가 크다.

국민 가수가 되기는 쉽지 않다. 연령과 성별 불문하고 호응을 얻어야 하고 꾸준하게 인기를 얻어야 한다. 한번 국민 가수 반열에 오르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모든 계층에 두루두루 오래도록 사랑받아야 한다. 이제 K5에도 국민차 타이틀을 붙일 때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탑기어> 한국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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