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부활의 상징’ 티볼리, 롱런 장담하긴 어려운 까닭

[김형준의 숫자 깨먹기] 36%. 현실과 이상은 괴리가 있게 마련이다. 결혼한 상대가 이상형인 경우가 드문 것처럼 말이다. 실소비자 집단과 자동차 칼럼니스트 무리가 생각하는 ‘좋은’ 자동차도 비슷하다. 대개 자동차 칼럼니스트들이 좋아라 하는 자동차는 시장에서 인기가 없다. 반대로 그들이 별로라고 말하는 차가 시장에선 불티 나게 팔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단적인 예가 쌍용 티볼리다. 그 차에 관해서라면, 나를 포함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지 않는 자동차 칼럼니스트가 드물 정도다. 이유를 물으면 조악한 장식물, 어수선한 인테리어 배치, 유행과 모방 사이를 넘나드는 정체불명의 스타일링, 설익은 주행품질 등 푸념이 쉼 없이 이어진다. 그 얘기를 듣고 있자면 이렇게 별로인 차가 과연 세상에 또 있을까 싶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티볼리는 잘나간다. 그것도 매우. 판매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이 차는 지난 9월 3071대가 팔렸다. 올해 누적판매량은 3만1166대다. 소형 SUV 시장에서 이보다 많이 팔린 차는 코나(3만4943대)뿐이다. 구매비용 지원을 받는 EV(4727대)를 제외하면 코나의 누적판매량은 3만216대로 내려가고, 티볼리가 동급 최다 판매모델에 오른다. 티볼리의 해당 시장 내 점유율은 36%다(기아차 니로 제외). 지난해(47.4%)에 비해 많이 줄었지만 여전한 영향력이다. 코나 EV까지 포함한 소형 SUV 시장 내 점유율도 34.1%로 적지 않다. 소형 SUV 신규 고객 100명 중 34~36명은 티볼리를 선택한다는 얘기다.



자동차 저널리스트 무리는 그래서 더 티볼리를 대할 때마다 머쓱하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동차에는 분명 미치지 못하는 제품인데 시장에선 아랑곳 않고 융숭한 대접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이 차는 데뷔한 지 3년이 지난 중견 제품이다. 그리고 그 시장엔 공식 출시 1년을 갓 넘은 ‘신상’이 둘이나 있다. 이쯤 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티볼리라는 자동차가 지닌 특별한 힘을.

그 힘은 최근의 SUV 인기와 떼놓고 얘기할 수 없다. SUV 인기의 상당부분은 ‘은근한’ 기대에서 비롯한다. 재래식 승용차보다 큰 몸집에서 주는 안도감(안전성), 높은 의자에 앉아 운전하는 편안함(운전 편의성), 껑충한 지붕과 네모 반듯한 실내(공간 활용성), 그리고 넉넉한 지상고와 SUV라는 장르가 지닌 다재다능한 이미지(확장성)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차깨나 안다고 으스대는 사람들은 이 같은 특징이 장점인 동시에 단점도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하지만 지금 승용차 시장에서 SUV처럼 다양한 가치를 한꺼번에 안기는 차종은 찾아보기 어렵다. 소위 ‘가성비’ 으뜸 시대에 최적화된 제품이라고 이해해도 무리 없다.



그리고 티볼리가 바로 그런 제품이다. 진입가격은 낮고 이용할 수 있는 편의사양은 다양하며, 단단해 보이는 차체에 높이 앉는 의자 등 SUV의 전형도 보여준다. 대충 보면 미니 컨트리맨 분위기가 나는 스타일링이나 이탈리아 휴양도시에서 따온 이름(Tivoli)처럼 적당히 속물적인 분위기로 소형 SUV의 저렴한 이미지도 효과적으로 감추고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성공의 비결을 말한다면 여성 운전자다. 지난 10월 초의 미디어 시승행사에서 쌍용차는 티볼리의 여성 고객 비중이 64%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는 남성 고객이 60% 이상인 소형 SUV 경쟁모델과 크게 대비되는 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특징이 출시 초기 시장연착륙의 비결이었다면 탄탄한 여성 고객층은 소위 전문가 집단이 지적하는 ‘자동차로서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티볼리가 꾸준히 시장선도적 위치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섣부른 일반화는 경계해야 하지만 자동차 업계에서 여성 운전자는 상대적으로 주변인의 차 구매에 미치는 영향이 낮은 저관여 소비자로 분류된다. 세세한 기능이나 공학적인 사고보다는 모양새나 분위기 등 자동차를 감성적으로 대하는 경향도 크다. 내리막 속도제어 장치(HDC) 버튼은 왼쪽에 있고 차로 이탈방지 장치(LKAS) 스위치는 비상등 옆에 놓여 있는 등 기능을 여기저기 아무데나(?) 뿌려둔 듯한 인테리어 설계는 크게 문제삼지 않는 부류라는 얘기다. 티볼리의 기능적 단점을 용납하지 못하는 자동차 칼럼니스트·저널리스트 무리(그들 대부분이 남자다)가 그 속내를 알기 힘들어 하는 부류이기도 하고.

경쟁모델들과 달리 제조사가 열과 성을 다해야만 하는 제품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쌍용차에 티볼리는, G4 렉스턴과 함께 ‘유이’하게 팔리는 제품이고 그래서 더욱 이 차를 각별하게 다뤄왔다. 출시 이후 5~6개월 간격으로 새로운 캠페인 전략을 선보여온 점이 대표적이다. 소형 SUV가 수많은 제품 중 하나인 현대차·기아차나 자연스럽게 중형 제품군에 집중하게 되는 르노삼성의 제품이었다면 티볼리라는 제품은 결코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을 터다.



하지만 티볼리를 둘러싼 환경이 언제까지고 우호적일 수는 없다. 연간 10만대 이상 규모로 성장한 소형 SUV 시장은 서서히 정체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A 세그먼트로 구분되는 경형 SUV의 등장, 일제히 세대교체를 준비 중인 C 세그먼트(준중형) SUV 시장도 소형 SUV 성장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티볼리 구매자의 60% 가량을 차지하는 여성 소비자는 차량 제품에의 충성도가 높지 않다. 코란도 후속모델 개발이 한창임을 감안하면 티볼리에 대한 쌍용차의 특별대우도 유효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당장의 인기가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거라 장담하기 힘든 까닭이다.

이쯤 되면 다시 자동차 칼럼니스트·저널리스트 집단의 목소리가 커진다. ‘자동차의 기본부터 챙기시라’는 꼬장꼬장한 잔소리 말이다. 알다시피 그들의 이상주의적 판단은 시장의 현실적 결정과 엇박자를 내기 일쑤지만 티볼리의 기본기가 성공한 자동차로 롱런 할 만큼 탄탄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긴 하다. 조악한 주행품질은 해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고 지난 8월 출시한 2019년형은 이전연도 모델보다 더 나아지긴 했다. 하지만 나도 사고 싶고, 너도 사라고 권할 만큼 충분히 나아진 건 아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형준

김형준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톱기어> 한국판, 남성지 <지큐코리아>에서 다년간 자동차 글을 써왔다. 글로벌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 편집장을 거쳐 현재는 한층 흥미롭고 심도 깊은 자동차 문화 탐구를 위해 자유 항해 중이다.
저작권자 © 오토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