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딜락 CTS-V vs ‘배드파파’ 장혁
[강희수·정덕현의 스타car톡] 괴력에 대한 로망은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많은 슈퍼히어로들이 보여주듯이 괴력에는 그만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다. 이런 면은 자동차도 마찬가지 아닐까. MBC 드라마 <배드파파>에는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먹고 엄청난 괴력을 갖게 된 파이터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 파이터가 타는 캐딜락 CTS-V가 예사롭지 않다. 거기에는 힘에 대한 로망과 동시에 느껴지는 대가 같은 것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라면 어떤 가치를 따르겠는가. MBC 드라마 <배드파파>와 거기 등장하는 캐딜락 CTS-V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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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의 이 드라마는 : 과거 세계 챔피언이었으나 승부조작에 휘말려 몰락한 유지철(장혁)은 가족을 위해 불법적인 신약 임상실험에 참여했다가 거기서 그 약의 부작용을 이겨내고 괴력을 갖게 되면서 격투기 파이터로 재기한다. 약을 먹어야 괴력을 발휘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는데 어딘지 부작용을 이겨냈다고 해도 불안함은 남아있다. 그는 가족을 위해 제 몸을 희생해가며 또 다른 부정한 경기를 치르고 있는 셈인데, 과연 이 선택은 어떤 결과로 돌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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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수(이하 강) : <배드파파> 유지철(장혁)은 속은 따뜻하지만 겉은 한없이 거칠다. 무패의 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전성기를 보내다 한순간에 몰락했고, 무력한 삶을 살다가 신약의 힘을 빌려 격투기 파이터로 재기한다. 장혁의 필모그래피에서 단 한 사람의 캐릭터를 끄집어내라고 한다면 바로 유지철이 아닐까 생각 들 정도다.
정덕현(이하 정) : 이 드라마를 볼 때마다 떠오르는 인물이 이현세 화백이 그린 ‘까치’다. 유지철은 까치고 그와 대결구도를 세우고 있는 이민우(하준)는 마동탁이다. 다만 엄지 캐릭터는 딸 유영선(신은수)에 맞춰졌다. <배드파파>를 그리고 있어서다. 사실 스포츠 소재의 콘텐츠가 전성기를 구가했던 시절에 큰 인기를 끌었던 이현세 화백이 그린 ‘까치’ 시리즈들은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 성공에 대한 욕망, 좌절, 그럼에도 가족을 위해 연인을 위해 다시 제 몸을 불사르는 인물. <공포의 외인구단>의 인물들이 그랬지 않나. 그래서 <배드파파>라는 드라마를 볼 때마다 느껴지는 건 남자들을 위한 드라마라는 점이다. 여기에 신약을 먹고 괴력을 발휘하는 슈퍼히어로가 된다는 설정까지 들어갔으니 말이다. 그래서 시청률이 2%대(닐슨 코리아)까지 떨어졌다. 조금 옛날 스타일의 이야기인데다, 여성시청자를 유입할 요소가 거의 없어서다.

강 : 나락으로 떨어지기는 했지만 복싱 세계 챔프의 자존심만은 버릴 수 없었던 장혁, 그에게 딱 맞는 차는 어떤 게 있을까? 장혁이 연기하는 유지철은 ‘나쁜 아빠’라고 자책하지만 가족은 끔찍이 사랑한다. 타고난 파이터로 괴력을 발휘하지만, 명성 드높은 현역 복서는 아니다. 이런 면에서 번쩍거리는 스포츠카는 일단 유지철과 어울리지 않는다. 제작진이 많은 고민을 했겠지만 제작협찬사가 캐딜락 브랜드로 정해진 순간부터는 결정이 쉬웠을 게다. 그에게 딱 맞는 차가 캐딜락에 있다.
정 : 나도 이 드라마에 나오는 캐딜락을 보고 그 이미지가 유지철과 너무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덩치 크고 힘쓰는 데는 그만한 차가 없다고 느껴질 만큼 캐딜락이 주는 이미지는 파이터의 그것과 잘 어울려 보였다.

강 : 캐딜락의 세단 라인업은 ATS, CTS, XTS, CT6로 이어지는데(캐딜락은 조만간 세단 라인업을 새롭게 구성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중 ATS와 CTS는 ‘V’라는 파생 모델을 갖추고 있다. ‘속도’(Velocity) ‘승리’(Victory)라는 어원보다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다’라는 뜻의 ‘Voracious’가 더 잘 어울리는 이 모델은 캐딜락 고성능 스포츠 세단의 상징이 됐다. 메르세데스-벤츠는 AMG라는 고성능 파생 브랜드를 갖고 있고, BMW에는 ‘M’이, 아우디에는 ‘S’와 ‘RS’가 있는 것처럼 캐딜락은 ‘V’를 운용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도 최근 이 추세를 따라 ’N’이라는 파생 브랜드(벨로스터 N, i30 N)를 만들었다. 장혁이 몰고 나오는 차는 ‘V’ 중에서도 더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CTS-V다. 전장이 5,020mm나 되는 고성능 후륜구동 세단이다. 4,990mm의 제네시스 G80보다 더 길고, 고성능 스포츠 세단의 쌍벽인 E63 AMG(4,955mm)나 M5(4,965mm) 보다 사이즈가 크다. 이쯤 되면 ‘아메리칸 머슬카’의 개념이 고개를 내민다. 게걸스러움의 ‘V’ 그대로, 크고 요란하고 거친 녀석이다.

정 : <배드파파>에서 신약을 먹고 난 유지철은 쇠파이프를 쥐면 그대로 손자국이 나버릴 정도의 괴력을 발휘한다. 또 누가 주차를 잘못해놔 차를 뺄 수 없게 되자 그 약을 먹고 차를 치워버리는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사실 남자들이라면 한번쯤 상상하는 그런 판타지다. 그런 판타지들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자동차 회사들이 저마다의 ‘머슬카’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다.
강 : 캐딜락 CTS-V는 성능으로 들어가면 더 놀라운 숫자가 쏟아진다. 6.2리터 8기통 가솔린 슈퍼차저 엔진이 쏟아내는 최고 출력은 648마력이나 된다. 최대토크가 87.2kg.m이어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속도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7초면 충분하다. 별도의 튜닝 없이도 최고 속도가 시속 200마일(321km/h)에 달한다.

정 :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캐딜락 CTS-V 같은 차는 미국 같은 광대한 지역 어떤 변수를 만날지 알 수 없는 환경에서 어떤 것이든 넉넉히 이겨낼 수 있을 만한 그런 능력에 대한 로망을 자극하는 차인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차과 과연 우리나라 사정에도 어울릴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강 : 자동 8단변속기와 패들 시프트를 갖추고 있고, 운전석에는 레카로 버킷 시트를 앉혔다. 운전자를 감싸 주듯이 설계 된 버킷 시트는 트랙 주행과 같은 극한 환경에서 차와의 일체감을 높여준다. 육중한 차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브레이크 시스템이 필수적인데 전방 6피스톤, 후방 4피스톤의 브렘보 디스크를 사용했다. 퍼포먼스 차량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약간의 두려움을 느낄 정도로 폭발적인 운동성능을 자랑한다. 고속도로에서는 1리터로 8.6km를 달려 비교적 준수한 편이지만 도심에서는 5.7km/l 밖에 안 된다. 복합연비는 6.7km/l다.

정 : 연비 같은 경제성이나 차량가격 또 나아가 환경적인 문제 같은 지금의 자동차업계에서조차 관심을 갖는 사안들을 비춰볼 때 사실 캐딜락 CTS-V 같은 차가 합리적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화력은 좋아 보이지만 그만한 에너지 소모가 많고 또 환경에도 좋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게 최근 몇 십 년 사이의 일이다. 그 이전에는 자동차 하면 먼저 힘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 힘에 대한 대가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또한 알게 됐다. 이 드라마가 ‘가족을 위해서’라는 대의명분을 세워 하고 있는 신약 복용을 통한 힘으로 파이터로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불안감이 느껴지는 건 바로 이런 점들 때문이다.

강 : 물론 연비나 가격으로 따진다면 1억 2,000만 원짜리 CTS-V가 장혁에게 어울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배드파파>에서 장혁은 재기하는 파이터다. 작은 아파트의 전세금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추락했지만 장혁이 이 차만은 버리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이것을 파이터의 ‘혼’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몰락한 챔프로 빈한하게 살고 있었지만 그에 몸에 흐르고 있는 파이터의 피는 여전히 뜨거웠다. 신약에 의지해 전성기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파이터 기질이 없는 일반인이라면 약효를 견디지 못하고 파멸한다. 그에게 ‘CTS-V’는 에너지만 보충 되면 언제든 활활 타오를 수 있는 불씨였던 셈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정덕현 x 자동차전문기자 강희수
강희수 칼럼니스트 : <일간스포츠>에서 프로야구 기자로 출발해
정덕현 칼럼니스트 : 대중문화 속에 담겨진 현실을 분석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백상예술대상 심사위원이고, 현재 SBS 미디어 비평 <열린TV>에서 ‘정덕현의 TV뒤집기’, KBS <연예가중계> ‘심야식담’에 고정 출연하고 있다.
강희수·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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