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치백의 무덤’ 한국에서 드러난 폭스바겐 골프의 저력

[최고의 반전] 2016년 7월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국내에 판매하고 있던 대다수 차종의 판매가 한꺼번에 중단되었다. 국내 인증과정에서 관련서류를 조작한 증거가 드러나 조사를 받고 있는 과정에서, 정부가 강제로 인증을 취소하고 판매를 중단시키기에 앞서 자발적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이다. 당시 판매를 중단한 브랜드는 아우디, 폭스바겐, 벤틀리였고, 그 가운데 특히 아우디와 폭스바겐은 디젤게이트 여파로 주춤하기는 했지만 이전 몇 해에 걸쳐 수입차 점유율 상위권을 차지하며 시장 성장에 큰 몫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우디는 전통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는 우리나라에서 트렌디한 마케팅이 힘을 보태면서 높은 인기를 얻었는데, 그에 비하면 폭스바겐은 상대적인 브랜드 프리미엄이 열세에 있으면서도 탄탄한 소비자층을 끌어안는 데 성공했다. 물론 SUV 붐과 더불어 적절한 상품성과 가격, 할인 등 여러 요소가 겹친 티구안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그러나 의외였던 것은 골프의 선전이었다. 오랫동안 세단 중심의 보수적 장르 선택 경향이 짙었던 수입차 시장에서 해치백인 골프가 잘 팔리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개인적으로야 해치백이라는 장르를 좋아하는 만큼 골프를 좋게 평가하고는 있었지만, 보편적 소비자 성향과 잘 들어맞는 차가 되기는 어렵겠다고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골프가 보여준 첫 번째 반전이었다.



물론 골프가 한창 잘 나갈 때에도 베스트셀링 카에 오를 만큼 폭발적 인기를 끈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시장을 ‘해치백의 무덤’이라고 얘기할 만큼 인기 없는 장르였으니, 골프가 그만큼 팔리는 것만해도 대단해 보였다. 사실 골프는 오랫동안 해치백으로서는 구성이나 성능, 꾸밈새 등 여러 면에서 거의 흠잡기 어려울 만큼 잘 만든 차였다. 잘 만든 차라고 해서 꼭 잘 팔리라는 법은 없는데, 적어도 내 기준으로 골프의 선전은 잘 만든 차가 잘 팔린다는 점에서 '국내 자동차 소비자의 제품 선택 기준이 조금씩 서구화되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주목받을 만큼은 아니었지만, 골프보다 한참 뒤에 들어온 폴로가 꾸준히 판매된 것도 그런 생각에 힘을 보탰다. 그렇게 시장을 달리 보게 만든 차가 골프였다.

그래서 폭스바겐의 판매 중단 모델 목록에 골프가 끼었을 때 자연스럽게 골프가 빠진 수입 해치백 시장에서는 과연 누가 맹주 자리를 차지할지 궁금해졌다. 골프가 한창 때 월 700 대, 연간 5,000대 이상 판매되기도 했으니, 브랜드나 상품성 면에서 열세인 다른 브랜드 차들이라도 해치백 수요가 있다면 어느 정도 몫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개성 있는 패션 카로 꾸준히 판매되던 미니 해치백은 열외로 놓더라도 말이다.



당장 물망에 올랐던 모델 가운데에는 이전 세대보다 상품성이 크게 좋아진 푸조 308이 있었고, 주가를 높이고 있던 볼보의 V40도 다양한 모델을 내놓으며 적극 나서고 있었다.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와 BMW 1 시리즈도 값은 비싸지만 브랜드라는 후광이 있으니 어느 정도 몫을 가져갈 수 있으리라 예상했다. 그밖에도 포드 포커스, 시트로엥 DS3/DS4처럼 브랜드가 적극적으로 알리지는 않아도 알음알음 소비자들이 찾는 모델도 라인업에서 빠지지 않았다. 골프가 키워 놓은 수입 해치백 시장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수입차 업계 전반에 있었음을 입증하는 증거로 여기기에 충분했다.



여기에서 골프는 두 번째 반전을 보여준다. 여러 해치백이 나름의 자리를 지키긴 했지만, 정작 골프가 물러난 왕좌는 지금까지도 비어있다. 골프가 만든 해치백 시장에 대한 착시효과에 속았다고나 할까. 올해 들어 지금까지 월 100대 이상 꾸준히 판매되고 있는 수입 해치백은 다른 차들과 조금 성격이 다른 미니 해치백과 유럽형 해치백과는 거리가 먼 토요타 프리우스를 빼면 메르세데스-벤츠 A-클래스와 BMW 1 시리즈 정도가 거의 전부나 다름없다. 그나마도 전성기 골프 판매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고, 심지어 각자 나름의 이유로 최근에는 판매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상태. 나머지 모델들은 그새 판매가 중단되었거나 베스트셀링 모델 순위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다.



과장 섞어 이야기하면, 골프의 성공은 폭스바겐 브랜드를 빼고 이야기하면 미스터리나 다름없다고 해도 좋을 만큼 장르적 특성은 판매에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해도 좋다. 물론 지난 2년 사이 국내 경제여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소형 SUV가 대거 등장하며 해치백 시장이 더 좁아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큰 흐름으로 본다면 골프 없는 수입 해치백 시장은 그냥 무덤 그대로였던 셈이다. 폭스바겐이 판매를 재개한 지금. 머지않아 골프는 다시금 우리나라 시장에 발을 들여놓을 것이 틀림없다. 그때가 되어 과연 골프가 세 번째 반전을 보여줄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류청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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