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 제네시스의 유럽 공략, 자신감인가 무모함인가
[전승용의 팩트체크] 변방의 프리미엄 브랜드에게 있어 유럽 진출이란, 뭐랄까 ‘난공불락의 끝판왕’을 무찔러야 하는 최종미션 같습니다. 유럽에서 성공해야만 진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는 법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한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야구선수는 으레 메이저리그에 진출해야만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네요.
그러나 제아무리 한국에서 날고 기는 최고의 선수였더라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닙니다. 류현진 선수가 너무 잘 해주고 있지만, 사이언상을 타기에는 쟁쟁한 경쟁자들이 너무도 많죠. 사이언상까지는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부상 없이 매년 10승 이상만 꾸준히 올려주길 기도할 뿐입니다.

현대차나 제네시스 기사에 종종 등장하는 댓글입니다. 대략적으로는 ‘제네시스(DH)가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 영국 판매에 나섰지만, 극심한 판매 부진(2년 동안 50대)으로 진출한지 2년 만에 철수했다’는 내용입니다.
비단 영국뿐 아니라 제네시스가 유럽에서 실패하고 철수했다는 것은 예전부터 들려왔던 이야기입니다. 뭐, 당시에는 정확한 확인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패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이런 댓글이 꾸준히 달리고 있는 만큼, 현대차(제네시스 브랜드)에 문의해 사실 여부를 확인해 보기로 했습니다.

현대차의 공식 입장은 ‘제네시스는 영국을 포함해 유럽에 공식적으로 진출한적 없다’ 입니다. 유럽에 판매됐다는 제네시스(DH)는 현지에 있는 현대차 임원 및 공관용으로 제공한 차량이라는 설명입니다. 유럽 현지에서 국내 본사에 요청을 하면 만들어 보내는 방식이었다고 하네요.
당연히 대대적인 광고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혹시 현대차가 유럽, 특히 영국에서 제네시스 광고를 한 증거가 있으면 제 이메일로 제보 부탁드립니다. 현대차가 거짓말을 했다는 기사를 써야겠습니다. 아무리 검색해봐도 중고차 판매 이외에는 다른 증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공식 출시는 하지 않았지만, 현지 요청에 의해 차량을 보낸 것은 사실”이라며 “이 차량들이 등록이 되면서 판매량으로 집계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영국 현지 임원인 토니 화이트혼(Tony Whitehorn) 전무 역시 “제네시스(DH)는 한국과 미국 등을 위해 만든 것이지 유럽을 겨냥한 모델은 아니다”면서 ”3.8 리터급 가솔린 엔진을 장착한 차량은 유럽, 특히 영국에서 요구하는 사양이 아니다”면서 선을 그엇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무턱대고 ‘진출 실패 후 철수’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물론,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도 무리가 있겠죠. 공식 출시는 하지 않았더라도 현지 임원용 등으로 차량을 보냈고, 슬쩍슬쩍 미디어에 노출시키며 일종의 ‘간보기’를 한 것은 사실일 테니까요. 반응이 좋았더라면 어찌됐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최근 제네시스 판매량이 잡히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 대한 현대차의 명쾌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의 힌트는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새롭게 출범한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를 위해서입니다.
현대차는 유럽 공략을 위해 현대차 제네시스(DH)와 제네시스 브랜드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고 싶어 하는 눈치였습니다. 실제로도 현대차 관계자는 “유럽에 판매된 제네시스는 어디까지나 ‘현대차의 제네시스’ 차종으로, ‘제네시스 브랜드’가 유럽 시장에 진출했던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결론은 DH와 G80을 다른 차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겠죠. 새로운 프리미엄 브랜드로 론칭하려면 DH의 흔적을 지워야만 했고, 그러려면 어느 정도의 공백이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현지 임원 및 공관용으로 요청해도 차량를 내주지 않았겠죠. 진출 실패 후 철수했다는 오해를 사더라도 말이에요. 현재 현대차는 제네시스 브랜드의 유럽 시장 진출을 면밀히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도 출시 시기 등은 아직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왜 자꾸 제네시스 유럽 진출 이야기가 나올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현대차가 꽤 많은 원인제공을 했다고 생각됩니다.
2013년 12월, 현대차는 제네시스(DH)를 출시하면서 ‘유럽’을 강조했습니다. 개발 단계부터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등 독일 프리미엄 3사의 준대형 모델을 공략하기 위해 유럽 감성의 DNA를 듬뿍 녹여낸 모델이라고요. 특히,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을 했고,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인 로터스가 섀시 개발에 참여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했죠. 누가 봐도 유럽 공략을 목표로 만들어진 차라고 느껴질 정도였죠.
이런 상황에서 해외 매체를 통해 시원찮은 판매량 집계 기사로 나옵니다. 영국에서는 2년 동안 50대를 팔았고, 독일에서는 ‘기타 차량’으로 묶여서 집계됐다고 합니다. 유럽 전체로도 월 10대를 넘기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당연히 실패했다는 소문이 퍼질 수밖에요. 마냥 억울해하기에는 현대차의 ‘귀책 사유’가 분명히 있는 듯합니다.

그렇다면 제네시스 브랜드가 다시, 제대로, 철저히 준비해 유럽에 진출한다면 성공할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매우 가능성이 낮다고 봅니다. 아예 진출하지 않는 게 현대차그룹에게 더 이익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어쨌든 영업 및 서비스망을 늘리려면 엄청난 돈이 들아갈 테고, 실패하면 이 손실을 모조리 떠안아야 할 테니까요.
냉정하게 살펴봅시다. 제네시스가 경쟁해야 하는 유럽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은 국내와 마찬가지로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독일 3사가 바늘 하나 꽂을 구멍 없이 꽉 잡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럽에서만 연간 70만대를 팔아치웁니다. 점유율이 90%에 달할 정도라니 믿어지시나요?
반면,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렉서스조차도 유럽에서는 연간 4만대를 넘기기 힘듭니다. 영국 프리미엄 브랜드인 재규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인피니티와 캐딜락 등은 언급하기 미안할 정도로 설 자리조차 없습니다. 그나마 볼보가 ‘안전’을 무기로 존재감을 지켜내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제네시스 브랜드가 과연 독일 3사를 뚫고 유럽 시장에 안착할 수 있을까요. 아니, 이를 뚫기 위해 내세울 무기가 있을까요. 미국에서의 성공 경험과 ‘하이브리드’란 강력한 무기를 가진 렉서스조차 20년 넘게 유럽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역사와 전통이 부족한 제네시스가 브랜드 특유의 개성까지 없다면 성공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울 겁니다. 지금이라도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와는 다른 제네시스만의 ‘색’을 찾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이런 댓글을 평생 보기 싫다면 말이에요.
자동차 칼럼니스트 전승용
전승용 칼럼니스트 : 모터스포츠 영상 PD로 자동차 업계에 발을 담갔으나, 반강제적인 기자 전업 후 <탑라이더>와 <모터그래프> 창간 멤버로 활동하며 몸까지 푹 들어가 버렸다. 자동차를 둘러싼 환경에 관심이 많아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