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차의 생존 마지노선 ‘유로 6d-TEMP’, 진작 이렇게 했어야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유럽에서 디젤차 점유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ACEA)의 자료에 따르면 EU 기준 올 3분기에 판매된 디젤 자동차는 120만대가 조금 넘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판매량인 147만대와 비교해 약 18%가 줄어든 것이다. 1월부터 9월까지 전체 판매량을 봐도 16.9%가 감소했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하락세가 곧 진정될 것으로 내다보는 전망도 있다. 독일 자동차 경제 전문지인 아우토모빌보헤는 분기별 디젤차 감소율이 조금 줄었고, 일부 국가에서는 되레 판매량이 늘었다고 보도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2018년 3분기에 불가리아(7.4%), 덴마크(24.9%), 폴란드(4.3%), 루마니아(24.2%) 등은 디젤 신차 판매량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실제로 늘었다.

하지만 이 내용으로 디젤차에 희망이 있다고 이야기하기엔 근거가 부족하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유럽 자동차 시장에서 비중이 가장 큰 나라에서 여전히 디젤 판매량이 끝 모르게 미끄러져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간 전기차나 하이브리드, 그리고 가솔린 자동차의 판매량은 크게 증가했다. 디젤 수요가 그쪽으로 몰린 까닭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언론들이 이야기하듯 유럽에서 디젤 퇴출은 기정사실인 걸까?



◆ 독일 BMW 매장에서 겪은 일

지난주, 프랑크푸르트에서 남쪽으로 약 25분 거리에 있는 BMW의 한 대형 대리점을 찾았다. 조촐한 행사를 진행하고 있는 주말 매장은 고객들로 활기찼다. 인기 있는 SUV가 모델별로 전시돼 있었고, 새로 나온 8시리즈 쿠페도 방문객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전시된 모델 중 사람들이 크게 관심을 보인 것은 X3과 X5였다.

중형 SUV X3의 경우 전통적으로 20d 모델이 독일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편이다. 하지만 행사를 위해 전시돼 있던 것은 고마력에 더 비싼 30d였다. 그런데 행사장 뒤편 2층 중고차 전시장에서 1년쯤 지난 X3 20d 모델을 발견했다. 거의 모든 옵션이 적용된 최고급 모델이었다.

이 중고 X3에 관심을 보인 고객과 막 상담을 끝낸 딜러 호프만 씨는 유로 6c라는 것 때문에 고객이 고민하는 것 같다면서, 정치가 자신들과 같은 자동차 딜러들을 어렵게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잘 알고 있듯 지금 독일은 노후 디젤차가 곳곳에서 통행금지 판결을 받고 있다. 도시는 물론 질소산화물 기준치를 넘는 고속도로 일부분도 앞으로 다닐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유로 1부터 유로 5까지만 해당될 뿐 유로 6에 해당하는 디젤차는 제외다. 그런데 유로 6에 해당하는 X3 20d에 관심을 보였던 그 고객은 왜 고민을 했던 걸까?



◆ 유로 6 디젤도 불안하다

유럽의 배출가스 기준은 1992년 유로 1부터 시작됐다. 이 당시 디젤 자가용의 질소산화물에 대한 기준치는 존재하지 않았다. 질소산화물 배출이 규제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에 시작된 유로 3부터로 500mg/km가 법적 허용치였다. 유로 4(기준치 250mg/km)와 유로 5(180mg/km)를 거쳐 2014년 9월 1일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유로 6이 새롭게 적용됐다.

유로 6의 디젤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은 80mg/km. 하지만 환경단체 등에서는 실제로 유로 6에 해당하는 디젤 자동차들의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이 기준치를 만족하지 않는다며 제도 개선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 사이 디젤 게이트가 터졌고, 이로 인해 디젤차의 실제 도로에서 배출량이 얼마나 기준치와 멀었는지 속속 드러나기 시작했다.

참고로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가 실시한 에코테스트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다. 유로 5에 해당하는 디젤 자동차 149개 모델을 신 배출가스 측정법(WLTP)에 의해 확인한 결과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평균 528mg/km였다. 모델간 편차도 심해 어떤 유로 5 디젤 자동차는 135mg/km을 내뿜었는가 하면 어떤 모델은 1,500mg/km 이상을 배출하기도 했다.

유로 6도 마찬가지였다. 69개의 유로 6에 해당하는 디젤차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테스트 결과 평균 341mg/km였다. 기준치인 80mg/km와는 큰 차이를 보였다. 그런데 유로 6c와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25개 디젤 모델의 경우 평균 질소산화물 배출량은 81mg/km였다. 합격선인 80mg/km에 거의 도달한 것이다.

현재 유로 6은 모두 4단계의 과정을 거치는 중이다. 우선 2014년 9월 1일부터 2017년 8월 31일까지 유로 6은 EURO 6b로 분류된다. 그리고 2017년 9월 1일부터 2019년 12월 31일 안에 나오는 자동차는 유로 6c와 유로 6d-TEMP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2020년 1월부터는 EURO 6d로 강화한다.

이 기준은 사실 형식 승인을 새롭게 받은 신모델에 한한 것이고, 이미 출시가 돼 세대교체를 하거나 연식 변경을 하는 모델들은 이보다 1년씩 유예된 상태다. 그렇다면 유로 6c와 유로 6d-TEMP의 정확한 의미는 멀까?



◆ 도로 테스트를 거친 디젤차만이 살아남을 것

새로운 측정법인 WLTP의 강화된 기준에 맞춰 실험실에서 테스트 된 모델들이 유로 6c에 해당한다. 유로 6d-TEMP에는 실험실은 물론 실제 도로를 달리며 테스트(RDE)를 통과한 자동차들이 해당된다. 대신 도로 테스트의 질소산화물 배출 기준은 실험실과는 달리 168mg/km이다.

그리고 유로 6d-TEMP가 끝이 나면 바로 유로 6d가 적용되는데 둘의 차이는 실도로 테스트에서 질소산화물 기준치가 168mg/km에서 120g/km로 강화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유로 6b : 구 연비측정법 적용
유로 6c : 신연비 측정법 적용
유로 6d-TEMP : 신연비 측정법 적용 & 도로 테스트
유로 6d : 신연비 측정법 적용 & 배출 기준 강화된 도로 테스트

앞서 이야기했던 BMW 매장에서 한 고객이 X3 20d 모델을 놓고 고민을 했던 이유는 바로 2017년식 X3 20d 모델이 유로 6d-TEMP에 해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행사장에 전시된 X3 30d 모델은 유로 6d-TEMP 기준을 이미 통과한 것이었다. 즉, 도로 테스트에서 합격 판정을 받았다는 얘기다. 들은 바에 따르면 X3 20d의 경우 내년 4월 이후에 출시되는 모델부터 유로 6d-TEMP에 해당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제조사별로 모델별로 도로 테스트를 통과했거나 아직 못 한 차들이 뒤섞여 있어 고객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독일은 물론 유럽의 많은 고객이 디젤차 구매에 앞서 언제 내가 사려는 차가 유로 6d-TEMP 승인을 받고 나올지 서로 정보를 주고받느라 정신이 없다. 그렇다면 왜 그 독일 고객은 WLTP에 해당하는 유로 6c였던 X3 20d 구매를 꺼렸던 걸까?



◆ 유로 6c까지 금지하려 하는 독일

지난 10월, 독일의 RBB라는 매체는 단독으로 베를린시 환경 및 교통부의 내부 문건을 소개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2020년부터 가능하다면 유로 6b는 물론 유로 6c까지 통행을 제한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녹색당과 제1야당이자 현재 연정 파트너인 사회민주당(SPD)의 일부 정치인들이 이 계획을 지원하고 있다.

실제 통과될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만약 베를린시 계획이 현실화 된다면 이것은 독일 전체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유럽 전체가 이것을 디젤 생존의 하나의 기준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이미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소비자들은 디젤차 구매를 고민하거나 꺼릴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스위스, 영국, 스페인 등, 가릴 것 없이 여러 언론이 디젤 자동차 구입을 생각한다면 이구동성 유로 6d-TEMP에 해당되지 않는 차는 피하라 권하고 있다. 도로 테스트를 거치지 않은 디젤 자동차의 미래가 불확실하다고 본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유로 6d-TEMP와 유로 6d는 안전한 디젤로 볼 수 있다.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자동차들이 얼마나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지는 이미 푸조∙시트로엥 그룹이 내놓은 자료에서도 잘 드러난다. 2015년 말부터 준비해 단계적으로 공개되고 있는 디젤차 도로 테스트에서 가솔린 자동차 수준의 질소산화물을 내뿜는 결과를 보였다. 앞서 소개한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의 테스트에서는 한 독일 디젤차가 도로 테스트에서 질소산화물을 8mg/km밖에 배출하지 않았다.

심지어 지금 독일에서 노후 디젤차 퇴출 판결을 이끌고, 유로 6(유로 6c까지)에 해당하는 디젤차도 통행금지를 해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독일 환경단체 DUH의 자체 도로 테스트에서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디젤 자동차들이 80mg/km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되는 질소산화물을 배출하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보쉬와 같은 부품업체는 최근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13mg/km 수준으로 떨어뜨리는 기술을 개발해 완성차 업체들과 협의 중이다. 이 정도면 가솔린 자동차와 같은 수준이다.



◆ 우리나라는 2019년 9월부터 유로 6d-TEMP 적용

이렇게 유럽이 유로 6d-TEMP이냐 아니냐로 시끄러운 사이 우리나라도 2019년 하반기부터 유럽처럼 디젤차 배출 기준이 유로 6d-TEMP로 바뀌게 된다. 물론 유로 6d-TEMP의 경우 질소산화물 도로 배출 기준이 168mg/km이지만 현재 많은 모델이 이 기준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질소산화물을 배출하고 있다.

따라서 이때부터 나오는 디젤차들은 이전과는 달리 ‘질소산화물은 가솔린 수준으로, 이산화탄소는 가솔린 자동차보다 더 덜 내뿜는’ 진정한 의미의 클린 디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디젤차 구입을 고민 중인 지인들에게는 우선 유로 6d-TEMP에 해당하는 모델인지 아닌지를 꼭 확인하고, 원하는 모델이 아직 변경 전이면 조금 기다리라고 권하고 있다. 또 가솔린 직분사 모델을 사겠다면 미세먼지 필터(GPF) 장착 여부를 따져보라고 이야기한다.

디젤 자동차는 현재 그 세를 급격하게 잃어가고 있다. 과거처럼 유럽에서 디젤이 자동차 시장을 지배하는 그런 모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배터리 전기차나 수소 전기차 등이 일정 역할을 하기 전까지 디젤은 이산화탄소 규제 대응을 위해 필요하다. 독일과 프랑스 자동차 제조사들이 전기차와 디젤차 모두에 막대한 연구 개발비를 투자하는 이유다.

그동안 느슨했던 제도라며 비난받아왔던 유럽의 연비 및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며 유럽 자동차 시장이 이제야 제대로 변하고 있는 느낌이다. 유럽 디젤차 연비 및 배출가스 규제법이 우리나라에도 적용되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유럽의 변화는 우리에게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유럽의 디젤 퇴출은 엄밀하게는 노후 디젤의 퇴출이다. 그리고 새로운 디젤차들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시장에 나오고 있다. 왜 진작 이러지 못했을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저작권자 © 오토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