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골쇄신, 환골탈태와 상전벽해 사이의 어디쯤
쉐보레 말리부의 변신을 바라보는 기대와 걱정
[이동희의 자동차 상품기획 비평] 쉐보레의 중형 세단 말리부가 바뀌었다. 앞뒤 범퍼와 램프류를 바꾸는 페이스리프트 수준이지만 파워트레인이 변경되는 등 변화의 폭이 제법 크다. 더욱이나 중간 트림부터 가격을 내리고 장비를 조절해 경쟁력을 갖추려는 다양한 노력을 한 것이 특징. 최근 여러 모델이 나오면서 SUV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국산 자동차 시장에서 중형급 세단은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심지어 국내 5개 자동차 회사가 모두 참전한 소형 SUV급이 올해 10월까지 12만 여대가 팔린 것과 비교할 때, 중형 세단은 15만대가 넘는 새차가 도로에 굴러 나왔다.
가격대에서도 가장 싸다고 할 수 있는 르노 삼성의 SM5부터 제네시스 G70까지,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등 다양한 파워트레인이 존재해 선택의 폭도 넓다. 물론 후륜 구동을 기반으로 하는 기아 스팅어와 제네시스 G70은 전륜 구동인 차들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과 좁은 실내 등으로 수요가 한정되어 있다. 이 두 차종을 제외하더라도 13만5천대가 넘기 때문에 역시나 국산차 중 가장 많이 팔리는 세그먼트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여기에서 말리부의 비중은 높지 않다. 지난에는 연간 3만3천대가 넘게 팔려 쉐보레 브랜드 안에서 4만7천여대가 팔린 스파크에 이어 2위에 올랐지만, 올해 들어서는 한국GM 문제로 판매량 감소의 직격탄을 맞았다. 올해 10월까지, 스파크는 3만0651대가 팔리며 지난해의 65% 수준이지만 말리부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합쳐 1만3600대가 나가 41% 수준에 그쳤다. 대당 가격이 높은 중형 세단의 감소는 전체 매출과 수익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크기 때문에 가벼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준중형 모델인 크루즈의 판매가 완전히 중단되면서 판매 모델 수조차 줄어든데다 전기차인 볼트의 올해 판매분도 끝나 말 그대로 ‘팔 차가 없는’ 상황이기에 더욱 그렇다. 새 차인 이쿼녹스라도 잘 팔리면 좋겠지만, 데뷔한 6월 385대를 기록한 이래 10월까지 단 한번도 200대를 넘긴 적이 없을 정도로 판매가 부진한 것도 말리부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 것이다.
새로 바뀐 말리부에서의 핵심은 파워트레인이다. 가솔린 4기통 2.0L 터보 엔진은 그대로지만 가솔린 4기통 1.5L 엔진은 GM의 새로운 엔진 전략인 CSS(Cylinder Set Strategy)에 따라 새로 만들어진 것이다. 과거 GM은 같은 크기의 엔진 블록을 사용하는 대신 실린더 내경인 보어의 센터를 맞추고 직경을 줄여 배기량을 다르게 만드는 방식을 썼다. 하나의 블록으로 여러 배기량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체 엔진이 크고 무거운 단점이 있었다.

하지만 CSS 컨셉은 기준이 되는 개별 실린더 배기량(375, 450, 500, 625cc 등)을 바탕으로 실린더를 3개 혹은 4개를 붙여 만든다. 필요한 출력을 얻어내는 적정 크기 기술 (Right Sizing Technology)로 불리는데, 이번 말리부에 쓰인 1.35L는 실제로 450cc를 변형한 447cc를 사용했다. 전체 엔진 크기가 작아져 무게를 줄이고 열효율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또 하나 새로운 기술은 여러 부분에 전동 모터를 사용해 직접적인 엔진 부하를 줄여 엔진 전체의 효율을 높인 것이다. 배기계를 안쪽(실내 격벽 쪽)으로 돌려 배기계의 온도가 높아지더라도 달리는 동안에 앞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타고 블록에 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했다. 이와 함께 쓰인 전자식 워터펌프는 로터리 밸브를 이용해 엔진룸으로 가는 7개의 통로를 한 번에 조절할 수 있다. 덕분에 블록과 헤드 등 엔진 곳곳의 온도 편차가 적어 역시 효율을 높여주는 효과를 낸다. 이런 CSS 엔진 전략은 향후 2025년까지 GM이 추진하는 VSS(Vehicle Set Strategy), 즉 승용차는 앞바퀴굴림과 뒷바퀴굴림 각각 하나씩의 플랫폼을 만들고 SUV와 픽업 트럭도 하나씩을 만들어 소비자의 요구에 따라 엔진룸/실내/트렁크 공간의 배치를 다르게 해 차를 개발하는 방식에도 꼭 필요한 엔진이기도 하다.

상품 구성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여러 기본 사양을 보강하면서 기본형의 가격을 묶은 대신 실제 판매량이 많은 중간급 트림을 낮춰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낮은 급인 LS 트림은 2345만원인데, 경쟁 모델인 현대 쏘나타 가솔린 2.0 스타일 트림(2219만원) 및 K5 가솔린 2.0L 럭셔리 트림(2228만원)과 비교할 때 100만원 이상 차이가 난다. 두 경쟁 모델이 앞좌석/운전석 무릎/커튼/앞좌석 사이드 에어백 등 모두 7개를 가진 것에 더해 말리부에는 3개의 에어백이 더해진다. 앞 승객석 무릎과 뒷좌석 사이드 에어백이 추가되어 운전자뿐 아니라 탑승자 보호에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평소 탑승 인원이 많다면, 특히 뒷좌석에 아이들이나 가족이 타는 경우가 많다면 말리부가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다.
또한 원가가 높고 연비 향상에 도움을 주는 엔진 스톱 스타트 시스템, 소음을 줄여주는 어쿠스틱 윈드 실드와 액티브 노이즈 캔슬레이션 시스템, 버튼 시동 스마트 키, 2열 6:4 폴딩 시트, 좌우 독립식 전자동 에어컨, 전자식 파킹 브레이크, 애플 카플레이와 구글 안드로이드 오토를 지원하는 8인치 터치스크린이 포함된 쉐보레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추가된다. 스마트폰 유저라면 익숙한 여러 앱을 사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사실 이 정도의 추가 장비라면 117만~126만원의 가격차는 충분히 납득할 수준이기도 하다. 물론 말리부에서 빠진 장비도 있다. 앞좌석 열선 시트가 그것인데 당장 추워진 요즘 날씨를 생각하면 아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K5에는 비록 인조 가죽이기는 하지만 가죽 시트도 기본이다.

사실 쏘나타에서 가장 강력한 상품성을 갖춘 트림은 2430만원인 스마트 초이스다. 후측방 경보 시스템과 LED 헤드램프, 운전석 통풍 시트, 버튼 시동 스마트 키와 스마트 트렁크, 인조 가죽 시트 등이 추가되며 가격은 211만원이 올라갔다. 여기에 선택사양 세 가지(후방카메라 및 8인치 스마트 내비게이션, 하이패스 기능의 ECM 미러, 18인치 휠과 LED 테일램프)를 합쳐 148만원을 더한 2578만원이 된다. 이와 같은 기능을 갖추기 위해서 말리부는 통풍 시트와 열선 스티어링이 기본으로 달리는 프리미어 트림(2845만원)에 LED 헤드램프 옵션(54만원)을 더한 2899만원이 된다.
물론 이 가격차이에는 기본형 비교에서 쏘나타에 없는 장비들 외에도 전방 주차 보조, 앰비언트 라이팅, 두 가지 컬러를 고를 수 있는 프리미엄 천공 가죽 시트, 앞좌석 전동 조절과 이지 억세스 기능, 보스 오디오 등 풍족한 장비가 더해진다. 물론 2741만원인 LT 디럭스 트림을 골라도 되는데 LED 헤드램프와 보스 오디오, 앞좌석 통풍 시스템은 없지만 가격차 이상의 장비를 충실하게 챙길 수 있다. 물론 쏘나타에 일반형 천연 가죽 시트, 조수석 전동 시트와 뒷좌석 열선을 넣으려면 2919만원인 프리미엄 스페셜을 골라야 하기 때문에 말리부의 가격이 높다고 하기도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말리부의 상품 구성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거의 없거나 매우 적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쏘나타 스타일 트림에는 후방카메라, 하이패스, 오토라이트와 8인치 스마트 내비게이션이 포함된 패키지(103만원)를 비롯해 버튼시동 스마트키, 인조가죽 시트와 스마트 트렁크가 포함된 패키지(50만원) 등을 선택할 수 있다. 이를 더할 경우 차 값은 2372만원으로 올라가 말리부 기본형보다 23만원 비싸 지지만 중형차 크기에 걸 맞는 편의장비를 기본으로 갖출 수 있게 된다.
이는 K5도 비슷한데 이런 방법은 기본 가격은 낮게 보여 많은 사람들을 끌어 들일 수 있고 분리한 옵션들의 값을 더 높게 받을 수 있어 판매에서 수익성은 올라갈 수 있지만,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생산 복잡성(Production Complexity)이 높아져 단가가 올라가기도 한다. 반대로 말하면 말리부는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옵션 구성을 단순하게 운영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새 말리부는 나중에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을 줄이면서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노력했는데 그에 따라 최근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사양을 위해서는 경쟁 모델에 비해 상위 트림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말리부와 쏘나타는 맞비교 하기 어려울 정도로 생산 단가 차이가 클 것이다. 쏘나타는 국내 옵션을 복잡하게 운영하더라도 국내외 팔리는 양을 고려할 때 생산 단가를 낮출 수 있을 것이지만, 말리부는 상대적으로 적은 생산량이 이런 선택을 어렵게 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물론 출력에서 마력은 쏘나타가 높지만 17인치 휠을 기준으로 할 때 실용 영역에서 토크가 큰 말리부 쪽이 복합연비에서 리터당 1.9km/L가 더 높고 확실하게 차이 나는 엔진 배기량 덕에 연간 부담해야 하는 자동차세도 더 낮아 유지비에서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어떤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운행 패턴이나 탑승자 유무, 동행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옵션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자동차는 결국 사용자가 편한 것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동희
이동희 칼럼니스트 : <자동차생활>에서 자동차 전문 기자로 시작해 크라이슬러 코리아와 재규어 랜드로버 코리아 등에서 영업 교육, 상품 기획 및 영업 기획 등을 맡았다. 수입차 딜러에서 영업 지점장을 맡는 등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