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독일에서 ‘디젤’은 피로감과 불확실성, 그리고 갈등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미운털이 박힌 걸까, 아니면 정당한 주장일까? 독일에서는 한 환경단체를 향한 보수 정치권 및 보수 언론의 불만과 의혹 제기가 보통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도이체움벨트힐페(DuetscheUmwelthilfe, 이하 DUH)는 요즘 독일은 물론 세계 언론에 자주 이름을 올리고 있는 환경단체다.

질소산화물 기준치를 초과하는 노후 디젤 자동차의 도심 진입 금지 소송을 펼친 곳으로, 지난 2월 말 연방행정법원의 최종심에서 DUH 요구가 정당하다는 승소 판결을 이끌며 이슈 중심에 섰다. 이들의 디젤차 배출가스 관련 움직임은 2010년부터 본격화됐다.

서른 개 도시 교통부서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며 디젤차 배기가스와의 전쟁이 시작됐음을 알렸고, 연방법원의 판결 이후 계속되는 지방 법원에서 다툼을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로 가져갔다. 또한 이들은 자동차 업계 대모로 불린 메르켈 총리를 향한 비판도 쉬지 않고 이어가는 중이다.



그리고 운명의 2015년 9월 19일, 미국에서 디젤 게이트 소식이 터졌다. 이날은 프랑크푸르트 모터쇼 개막일. 현장에서 라디오를 통해 소식을 접하고 받은 충격은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마침 행사장 입구에서는 이 소식을 알았는지 모르는지 DUH 회원들이 디젤 배기가스 시위를 펼치고 있었다. 독일 자동차 업계, 그리고 그들을 수년 동안 비판해온 환경단체 DUH의 운명이 이 한날에 전혀 다른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슈투트가르트, 쾰른, 에센,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 겔젠키르헨, 마인츠 등에서 노후 디젤차는 내년부터 순차적으로 다닐 수 없게 됐고, 10월에는 수도 베를린의 8개 도로를 오래된 디젤 승용차와 트럭 등이 이용할 수 없게 하라는 법원의 결정까지 나왔다. DUH의 이런 계속되는 승소는 독일 곳곳에서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 그들을 향하는 비판과 비난, 그리고 위협

판결들의 후폭풍은 컸다. 독일 제조사들은 요소수를 이용하는 SCR 장치를 장착하는 비용을 대거나 아니면 노후 디젤차를 팔고 새 차를 살 때 2,000유로에서 최대 10,000유로까지 보조금을 지급하라는 정부 요구에 백기를 들어야 했다. 독일 브랜드뿐 아니라 현대와 볼보 등, 독일에서 자동차를 판매하고 있는 많은 제조사가 보조금 정책에 참여할 수밖에 없게 됐다.

디젤 게이트 이후 갖가지 소송에 휘말리며 천문학적 보상금을 내야 하는 폭스바겐 그룹, 그리고 수십만 대의 디젤차를 리콜한 벤츠와 BMW 등은 광풍처럼 몰아치는 배기가스 문제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독일 완성차 업체의 저승사자, 오랜 눈엣가시 같은 DUH와 이 단체를 이끄는 위르겐 레쉬 대표를 향한 비판과 비난이 커져가기 시작했다.

‘왜 자국 자동차 시장, 자국 회사들에게 이렇게 지독하게 구느냐’는 것이었다. 극우에 가까운 AfD와 친기업 정책을 펴는 FDP와 같은 정당은 물론, 현재 여당인 CDU 소속의 한 장관도 노골적으로 DUH의 행보를 비판했다. 그리고 비영리 단체 지위를 박탈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렇게 되면 기부금에 대한 세금 공제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DUH는 이런 일부의 위협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눈치다.



◆ DUH의 배후는 토요타?

특히 이 환경단체에 기부금을 내는 토요타와의 관계도 도마 위에 올랐다. 하이브리드에 특화된 토요타는 매년 5만 유로, 우리 돈으로 약 6천 5백만 원을 기부하며 이 환경 단체를 후원하고 있다. 하지만 일간지 차이트와의 인터뷰에서 레쉬 대표는 자신들은 독립적 기구이며, 토요타 디젤차의 질소산화물 과다배출도 테스트해 밝혔다고 반박했다. 또한 토요타의 에너지 소비 표시 의무 위반에 따른 48건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며 음모론을 일축했다.

하지만 도이체움벨트힐페를 향한 의심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005년 그들은 ‘미립자 필터 없이는 디젤도 없다'는 캠페인을 벌였다. 그런데 당시 필터 제작사 중 한 곳으로부터 수천 유로의 기부금을 받았고, 이로 인해 캠페인의 순수성이 의심받기도 했다. 하지만 DUH는 이 점 또한 반박했다. 그린피스 같은 단체는 회원 수가 300만 명이나 되지만 자신들의 경우 정기 후원을 하는 회원이 350여 명에 불과하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환경 활동을 펼치기 위해서 기부를 받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참고로 DUH의 1년 예산은 약 800만 유로(약 104억) 정도 된다. 이중 독일 연방정부와 EU 집행위 등이 내는 보조금, 그리고 독일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 등으로부터 발주된 프로젝트 비용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기업이 내놓는 제품이 환경 기준을 초과하는지, 또 그들이 제시한 것과 같은 값을 내는지를 조사해 잘못을 밝혀낼 경우 이에 따른 비용을 추가로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 이 고발 조치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운영 자금이 전체의 1/3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큰 편이다.

독일의 보수 시사주간지 포커스는 이미 지난 3월 이 환경 단체의 보조금 내용과 그 과정을 특집 기사 형태로 자세히 보도하며, ‘포드재단’ 등 미국의 여러 단체로부터도 기부금을 받는다며 그들의 활동에 어떤 불순한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뉘앙스의 보도를 하기도 했다. 정부 보조금을 거론하며 간접적으로 DUH의 자금줄을 압박한 것이다.



◆ 피로감 호소하는 사람들 늘어나, 긴 갈등 예고

물론 이런 일부 움직임을 다수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DUH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목소리 또한 높다. 이들이 용기를 내 나서지 않았다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을 거라며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디젤 배출가스 문제, 그리고 계속 발표되고 있는 노후 디젤차 운행 금지 조치로 피로감을 호소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독일인이 많은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도이체움벨트힐페는 며칠 전 소개한 것처럼 유로 6d-TEMP 수준, 그러니까 도로 테스트를 거쳐 합격한 디젤차를 제외한 모든 디젤차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법적 다툼을 예고하고 있어 앞으로도 갈등과 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 독일에서 ‘디젤’은 피로감과 불확실성, 그리고 갈등이라는 세 단어로 대변되고 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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