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뉴 말리부 - 1.35리터 E 터보 엔진은 옳았다. 그러나……

[나윤석의 독차(讀車)법] 한국 GM이 2018년을 마무리라도 흐뭇하게 할 수 있을까요?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말리부 페이스리프트 모델과 함께 선보인 1.35리터 E 터보 엔진 때문입니다.

설날 연휴 전날에 발표한 구조 조정과 군산 공장 폐쇄 발표부터 시작된 2018년 한 해는 한국 GM에게는 지옥 같은 해였을 겁니다. 큰 구설수에 오르니 소비자들의 마음도 떠나고 새 차 시장은 물론 중고차 시장에서의 대접까지 차갑게 식어버렸습니다. 대중성보다는 세칭 ‘쉐슬람’이라는 충성도 높은 고객층들의 서포트가 중요했던 쉐보레 브랜드였기 때문에 고객의 마음이 돌아선다는 것은 정말 치명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가장 커다란 타격은 모델 라인업이 무너진 것이었습니다. 쉐보레의 경우는 군산 공장에서 생산하던 모델인 올란도와 신형 크루즈가 단종되었습니다. 쉐보레는 준중형 시장에 팔 모델이 없어졌습니다. 가장 핫 한 시장인 중형 SUV 시장에서 출시된 이쿼녹스는 전혀 시장의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쿼녹스는 상반기의 한국 GM 사태 이후 새출발을 선보이는 첫 모델이었다는 점에서 매우 뼈아픈 결과였습니다. 2016년에는 1만대를 넘기며 선전했던 준대형 시장의 임팔라는 이제는 한 달에 100 대를 넘기기도 힘겨운 상황입니다. 총체적 난국입니다.

쉐보레의 SUV 라인업은 내년에 출시될 트래버스 등이 있기 때문에 일단 판단을 유보합시다. 하지만 세단 라인업은 상황이 명확합니다. 말리부 하나밖에 없습니다. 즉, 말리부 혼자서 준중형 – 중형 – 준대형 시장을 모두 감당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미국에서 수입할 모델들이 있는 SUV나 픽업 시장과는 달리 세단은 독자생존밖에 답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한국 GM도 모르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이번 말리부 페이스리프트, 즉 더 뉴 말리부는 이와 같은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습니다. 첫째, 전반적인 상품성의 개선입니다. 기본 옵션 사양의 추가를 통한 가격 경쟁력 강화와 직접적 가격 인하에 대한 기사들은 많으니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디자인의 개선에 대한 부분도 다룬 기사가 많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부분은 질적인 변화입니다. 제가 신형 말리부가 출시되었을 때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내장재의 품질과 마무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이 상당히 개선되었습니다. 그리고 NVH(소음·진동·충격)의 개선입니다. 특히 매끈하게 바퀴가 굴러가는 감각 등 진동과 노면 요철을 매끈하게 흡수하는 진동 및 충격에 대한 질감이 매우 좋아졌습니다. 즉 승차감이 더 고급스러워졌다는 뜻입니다. 부드럽기도 합니다. 소음은 아주 조용한 편은 아니지만 거칠고 자극적인 소리는 잘 걸러내고 노면 상황만 전달하는 유럽적인 사운드 튜닝이므로 저는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런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서스펜션 튜닝은 2.0 터보 모델에게는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 왜냐 하면 말리부는 스포티한 주행을 좋아하는 고객들의 비중이 높은 모델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말리부는 출시된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2.0 터보 모델의 판매가 30%에 육박하는 희한한 고객군을 갖고 있습니다. 한 자리 숫자를 넘지 못하는 쏘나타나 K5와는 판이하게 다른 고객 구성입니다. 이런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부드러워진 더 뉴 말리부 2.0 터보의 서스펜션이 달갑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입니다.(쉐보레에서도 현대 튜익스 패키지 서스펜션 계획은 없으신지?)



이렇게 충성도가 높을 확률이 큰 고객군이 아쉬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서스펜션을 부드럽게 한 이유는 바로 넓은 시장으로 다가가겠다는 뜻입니다. 목표는 그랜저와 K7 2.4 모델입니다. 더 뉴 말리부 2.0 터보는 여전히 적당히 스포티하면서도 실제로 매우 고급스러운 주행 감각과 승차감, 풍부하고 다루기 좋은 파워, 넓은 실내 공간, 그리고 늘어난 기본 사양 등으로 중형차의 수준을 넘어섭니다. 그리고 차체 크기도 그랜저와 같습니다. 4기통 모델끼리 비교한다면 2.4리터 엔진보다 말리부의 2.0 터보 엔진이 여러모로 낫습니다. 쏘나타 터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완성도입니다. 그랜저와 K7 2.4는 모델의 가솔린 라인업에서 60% 가량을 차지하는 핵심 시장입니다. 따라서 말리부 2.0 터보가 이 시장의 일부분이라도 침투할 수 있다면 이미 성공입니다. 마니아들에게는 아쉽지만 시장 관점에서는 옳은 선택입니다.

1.35리터 3기통 터보는 차의 느낌이 2.0 터보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엔진의 무게가 확실히 가볍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앞머리의 무게가 덜어지니 차의 움직임이 매우 경쾌해집니다. 그러나 원래의 매끈하고 고급스러운 주행 질감은 그대로입니다. 그 결과 분위기가 밝아졌다는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가장 걱정했던 3기통 터보 엔진은 의외로 진동이 작습니다. 실린더 하나의 크기는 이전의 1.5리터 4기통 엔진보다 크고 엔진 1회전 당 실린더의 폭발 간격이 커져서 배기음은 오히려 중저음으로 바뀌어 느낌이 괜찮습니다. 실린더가 커지니 당연히 저회전 토크 감각은 1.5 엔진보다 좋습니다. 잃어버리는 것은 5000rpm 이상의 고회전 영역의 시원함과 최고 출력입니다만 똑똑한 자트코 무단 변속기가 넓어진 기어비 폭으로 잘 대처합니다.

밝고 잘 달리면서도 나름 개성이 있는, 그러면서도 승차감은 고급진 더 뉴 말리부 1.35리터 E 터보는 매우 매력적이었습니다. 쏘나타 2.0 CVVL과의 경쟁에서도 가격이나 사양 모두 충분한 경쟁력을 갖습니다. 그런데 노림수는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크루즈가 사라진 준중형 시장의 윗부분을 겨냥합니다. 기본 사양이 나쁘지 않은 엔트리 트림인 LS의 가격은 2345만원. 더 뉴 아반떼 1.6 프리미엄의 가격이 2214만원이고 K3 노블레스가 2199만원입니다. 훨씬 크고 안락하면서도 스마트 키나 오토 에어컨과 같은 중요 사양은 빠뜨리지 않았는데 가격은 100만원 정도 차이가 날 뿐입니다. 물론 가죽 시트가 아쉽겠지만 훨씬 넓고 고급스러우면서도 연비와 성능까지 더 좋으니 충분히 솔깃할 만합니다.



이렇듯 말리부는 자기 본래의 시장 뿐만 아니라 준중형과 준대형 시장까지 책임지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대처가 나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차 자체의 기본기가 출중합니다. 완성도도 높아졌습니다. 의미 있는 수준의 결과는 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1.6 디젤은 별로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1.35리터 E 터보보다 370만원이나 비싼데 나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디젤 모델을 바라보는 시대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크루즈와 이쿼녹스가 책임지기로 한 오펠 에코텍 디젤 엔진의 물량이 급해서 출시한 것일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당장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낸다고 해도 이렇게 쭉 갈 수는 없습니다. 성을 책임지는 장수가 위험한 성벽과 성문에만 신경 쓰다가 본영을 내어주는 경우를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라인업을 확충하든가, 아니면 라인업 파괴 전략을 확고히 하든가 쉐보레는 명확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나윤석

나윤석 칼럼니스트 : 수입차 브랜드에서 제품 기획과 트레이닝, 사업 기획 등 분야에 종사했으며 슈퍼카 브랜드 총괄 임원을 맡기도 했다. 소비자에게는 차를 보는 안목을, 자동차 업계에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방법을 일깨우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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