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부, GM이 말하고자 한 라이트사이징의 진정한 의미

[김태영의 테크 드라이빙] ‘국산 중형차에는 2.0L 이상 가솔린 엔진’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어진 지 오래다. 2013년, 르노삼성 SM5는 1.6L 엔진과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장착한 TCE 모델을 선보이며 중형차 시장의 틈새시장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르노-닛산 그룹에서 가져온 1.6L 직분사 터보차저 유닛을 개량해 최고출력 190마력(최대토크 24.5kg․m)을 발휘했다. 약간 부족한 중속 토크와 터보 래그는 6단 듀얼클러치(DCT)의 빠른 변속으로 상쇄하도록 했다. 더불어 DCT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동력 손실을 최소화하는 데 힘썼다. 복합연비는 리터당 13.0km였다. 이것은 기존 SM5 2.0L보다 출력(141마력, 19.8kg․m)과 연비(리터당 12.6km)에서 월등히 앞선 것이었다.



그리고 2018년 11월. 한국 시장에 데뷔한 쉐보레 더 뉴 말리부는 이보다 파격적인 다운사이징 엔진을 선택했다. ‘E-터보 1.35L’가 그것이다. 이 엔진은 1341cc 배기량을 바탕으로 터보차저와 조합된다. GM의 라이트사이징 기술로 높은 연료 효율과 출력을 발휘한다. 라이트사이징은 엔진 전반에 걸쳐 사용된 기술을 말한다. 알루미늄 소재의 확대로 무게를 줄이고 초정밀 가변 밸브 타이밍으로 불필요한 연료 낭비를 줄인다. 더불어 엔진 내부 온도를 효과적으로 제어하는 전자제어 워터 펌프와 터보차저의 효율을 높이는 전자식 웨스트게이트, 전자 유압식 브레이크 부스터 등을 사용하고 있다. 쉽게 말해 엔진에 걸리는 전기적, 물리적 부하를 최소화하고 열효율을 끌어올린다.



E-터보 1.35 엔진과 조합되는 변속기는 VT40 무단변속기다. 2005년부터 GM이 개량해온 무단변속기의 최신 버전. 초기엔 문제도 많았지만, 현재는 여러 부분에서 검증된 기술로 평가받는다. 말리부에 얹힌 무단변속기는 일반 스틸벨트 타입이 아닌 체인벨트 방식을 쓴다. 쉐보레에 따르면 ‘체인벨트를 통해 탁월한 내구성을 실현하고 광범위한 토크 영역에 충분히 대응하도록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또 ‘고부하가 걸리는 상황에서 변속감 개선을 위해 일반 자동변속기처럼 톱니바퀴(Sawtooth) 패턴 프로그램도 사용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실제로 달리기 성능은 어떨까? 말리부 1.35L E-터보를 타고 인제 스피디움 서킷을 달려봤다. 1.6L 디젤 모델과 번갈아 타며 두 차의 특징을 비교했다. E-터보의 출발은 부드럽다. 3기통 엔진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저속에선 경차처럼 가볍게 투덜댄다. 출발 직후 엔진 RPM이 주행 속도에 맞춰 자연스럽게 상승하지 않는다. CVT가 가능한 낮은 RPM으로 지속적으로 유지한다. 가속페달에 갑자기 힘을 줘봤다. 순간적으로 엔진 토크가 약간 부족한가 싶더니 곧 최대토크가 발휘되는 영역(1500~4000rpm)으로 rpm이 치솟으며 경쾌하게 가속한다. 이 엔진은 최고출력 156마력, 최대토크 24.1kg·m를 발휘한다. 수치상으론 이전 모델의 1.5L 가솔린 직분사 터보를 대체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정확히 말해서 ‘대체’가 아니라 다른 영역으로 발전한 구석이 있다.



코너의 정점(APEX)이 끝나고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분명하게 ‘멈칫’하는 구간이 있다. 분석 결과 엔진보다는 CVT의 로직 때문이다. 드라이브 모드에서 무단변속기가 코너의 입구에서 제동과 함께 엔진 RPM을 지속적으로 떨어트렸다. 애초 서킷 주행처럼 스포츠 주행을 위해 만들어진 차는 아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낮은 엔진 회전수에서도 가속 페달을 밟을 때 거의 즉각적으로 엔진을 6000rpm까지 회전시키며 다시 민첩하게 출력을 끌어냈다. 차의 움직임은 예상보다 가볍다. 1.6 디젤이나 2.0L 터보에 비해 무게가 약 70kg 가벼운 것도 한몫을 톡톡히 한다.



서킷의 메인 직선 구간에 들어섰다. 가속 페달을 일정하게 밟고 고속으로 달릴 때 엔진이 활기를 찾는다. 고작 1.35L 배기량이지만, 공차중량 1400kg에 달하는 말리부를 가속시키기가 어렵지 않다. 더불어 고속주행 안정감도 놀랄 만큼 안정적이다. 더불어 스티어링휠의 반응도 무척 가볍고 경쾌하다. 함께 테스트한 1.6L 디젤(136마력, 32.6kg·m)과 비교하면 차이가 분명했다. 디젤은 스티어링의 반응도 한결 묵직한 편이고, 6단 변속기를 바탕으로 전반적으로 움직임이 차분했다. 중속 토크를 사용한 가속은 분명 디젤 쪽이 유리했지만, RPM이 상승할수록 가볍고 힘차게 반응하는 건 배기량이 훨씬 작은 1.35 E-터보였다.



더 뉴 말리부 1.35 E-터보와 1.6 디젤을 서킷에서, 2.0 터보는 국도와 고속국도에서 타봤다. 세 모델은 원하는 목적도,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도 전혀 달랐다. 1.35 E-터보가 가장 효율적이고, 가장 경쾌한 움직임을 만들어준다면, 1.6 디젤은 차분하고 묵직했다. 반면 2.0 터보는 253마력(36.0kg·m)의 넉넉한 출력을 바탕으로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모습을 강조했다. 이 모든 엔진 라인업을 경험하고 느낀 건 1.35 E-터보가 주목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수치가 아니라 실제 성능에서도 부족하지 않았다. 아니, 기대 이상이다. 이런 낮은 배기량 엔진도 중형차에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시대다. GM이 말하고자 한 라이트사이징의 진정한 의미 아닐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김태영

김태영 칼럼니스트 : 중앙일보 온라인 자동차 섹션을 거쳐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자동차생활>, <모터 트렌드>에서 일했다. 현재는 남성지 <에스콰이어>에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소재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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