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소비자 대부분은 자동차를 살 때 할인 조건을 따지게 된다. 판매자는 이런 고객의 마음을 얻기 위해 다양한 할인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우리나라에서 국산 신차를 사기 위해서는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지점, 또는 위탁을 받아 판매하는 대리점에서 주로 사게 되는데, 표면적으로 지점과 대리점의 판매, 할인 조건은 동일하나 영업사원 개인의 판매 전략에 따라 깎아주는 금액은 조금 차이가 난다.
그에 반해 수입차의 경우 할인 폭이 상대적으로 크다. 메이커에 따라, 또 모델에 따라 천만 원 넘게 할인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동차 천국 독일은 어떨까? 벤츠, 포르쉐 등 비싼 자동차를 만드는 곳이 자국 브랜드라는 점은 차를 사들이는 데 있어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대신 우리보다 자동차를 사는 경로는 더 다양하다.
경로가 다양하다는 것은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여럿이라는 뜻이고, 따라서 열심히 인터넷을 뒤적이고 발품을 팔면 같은 조건의 자동차라도 훨씬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 할인 폭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방법을 선택하는 이들부터, 반값에 신차를 살 수 있는 아주 위험한 도박 같은 방법을 택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떻게 자동차를 구매할까?

◆ 지점과 대리점 이용한 신차 구입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방법이다. 우선 제조사가 투자해 직접 운영하는 지점은 규모가 거대해 축구 경기장 크기만한 곳이 곳곳에 있다. 교육이 잘 된 딜러들이 고객과 상담하는데 과거에 비해 할인폭도 커졌다. 브랜드와 딜러에 따라 신차 가격의 6~7%에서 10% 이상을 할인해 주기도 한다.
지점보다 규모가 작은 대리점은 두 가지 형태다. 첫 번째는 하나의 제조사와만 계약해 그 브랜드 자동차만을 판매하는 경우로, 우리나라 대리점과 다른 점이라면 제조사 로고와 브랜드뿐만 아니라 대리점 고유의 이름을 함께 간판에 달고 영업을 한다는 점이다. 전국에 걸쳐 영업망이 있는 경우도 있는데 직원 규모가 수백 수천 명에 달한다.
또 하나는 여러 브랜드 자동차를 함께 판매하는 대리점이다. 이런 곳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지역 밀착형이지만 전국망을 가진 곳도 있다. 대리점과 지점의 할인 차이는 우리나라와 같이 크지 않고, 대리점 소속 딜러 대부분은 직접 옵션을 선택해 해당 모델을 온라인 매매 사이트에 올려놓는다.

◆ 온라인 판매
요즘 독일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방식으로 제조사와 무관한 제3의 사업자가 운영한다. 지점이나 대리점과 가장 큰 차이라면 할인의 폭이다. 보통 15~20% 정도를 깎아준다. 요즘은 디젤 이슈로 인해 일부 디젤차 소유주들은 최대 30% 이상의 할인 혜택도 가능하다. 대신 차에 대해 상담을 받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지점 등을 방문해 실제로 앉아 보고 타보고 또 딜러에게 상담을 받은 후에 온라인으로 견적을 내는 경우가 많다.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견적을 내는 것과 비슷한 방식이며, 일단 엔진과 옵션 등을 선택하고 나면 자동으로 할인된 최종 가격이 나온다. 가격이 만족스러우면 연락처를 남기게 되고, 이후 2~3명의 딜러로부터 연락이 와 구체적 협상을 하게 된다. 또한 현금 구매와 리스, 그리고 할부 구매 모두 가능한데, 할부 시 이자율이 1% 이하로 매우 저렴하다.

◆ EU 신차 구매
유럽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다. 유럽연합은 회원국끼리 물건을 사고파는 것에 제약이 없다. 그런데 상품가격에 붙는 부가세의 경우 회원국마다 다르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공산품에 붙는 부가세는 19%이지만 스웨덴은 25%, 영국은 20%다. 스웨덴에서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독일에서 사서 스웨덴으로 가져가는 게 저렴할 수 있다.
또한 나라마다 기본 사양이 다를 수 있는데, 편의 사양이나 안전 사양의 적용에 따른 가격 편차가 발생한다. 따라서 전문 업체들은 이런 차이를 찾아내 가격 하락 폭을 최대화한 다음 고객들에게 독일에서 같은 조건의 자동차를 사는 것보다 싸게 판매하고 있다. 독일 국내법에 문제도 없고, 당연히 제조사 보증 기간도 동일하게 보장받는다. 다만 ‘EU 신차’를 구매한 소비자는 독일 내에서 차를 샀을 때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 일일 등록 (타게스추라쑹, Tageszulassung)
독특한 방법이다. 쉽게 말해 대리점 명의로 차를 등록한 후, 하루 혹은 며칠 안에 등록을 취소한 뒤에 차를 판매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가격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인데, 보통 우리 돈으로 200만 원 전후로 더 싸게 살 수 있다. 실제로 자동차는 거의 운행을 하지 않은 상태, 즉 서류 작업만 진행된 새 차 거의 그대로다. 하지만 타케스추라쑹으로 차를 사게 되면 소유주는 내가 처음이 아닌 딜러가 첫 번째 주인이 된다는 점은 고려해야 한다.
참고로 주행거리를 보면 1km에서 보통 20km 정도를 달린 경우가 많다. 100km까지 주행한 타게스추라쑹 모델이 있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독일 통신사 텔레콤이 실시한 한 설문조사에서 타케스추라쑹으로 차를 산다고 대답한 응답자가 23%로 가장 많았다. 일종의 편법이지만 그렇다고 불법은 아니기 때문에 독일에서 이 방법은 매우 활성화돼 있다.

◆ 1년 이하 중고차 (야레스바겐, Jahreswagen) 구매
타게스추라숭 다음으로 독일에서 많은 사람이 자동차를 구매하는 방법으로, 야레스바겐은 1년 이하의 중고차를 가리킨다. 자동차 회사에 근무하다 은퇴한 전 직원, 혹은 현재 근무 중인 직원은 일반인보다 더 좋은 할인 조건으로 차를 살 수 있다. 이렇게 구입한 차를 1년 안에 내놓게 되면 판매자와 구매자 양쪽 모두 가격 이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야레스바겐은 인기가 있다.
그러나 중고차이기 때문에 첫 번째 운전자의 운전 습관에 따라 차의 상태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으니 주행거리와 옵션, 그리고 차의 상태 등을 꼼꼼하게 따져 봐야 한다. 온라인 매매 사이트에 야레스바겐이라고 분류된 중고차는 빨리 팔려나가는 편이다.
◆ 시승차 (포어퓌허바겐, Vorführwagen) 구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영업점에서 시승을 위해 주문한 차들을 독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되팔게 되는데, 이때 대략 6개월 미만의, 그리고 보통 6~8천 km 전후의 주행 거리를 기록한 시승차들이 시장에 매물로 나온다. 가격 하락 폭이 커서 신차 대비 최소 1천만 원 이상 저렴하다.
하지만 워낙 여러 사람이 탔기 때문에 차의 상태를 잘 볼 줄 아는 사람과 함께 꼼꼼하게 살핀 후 자동차를 선택해야 한다. 무턱대고 싸다고 샀다가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권장하지는 않지만 매우 파격적인(혹은 위험한) 방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쿠어츠추라쑹(Kurzzzulassung über 6 Monate) 자동차로, 짧게 등록한 자동차라는 뜻이다.
자동차를 구입하고 내 이름으로 등록이 되기는 하지만 대략 6개월가량 차는 딜러에 머물며 시승차 등으로 활용된다. 얼핏 보면 위에 설명한 시승차(포어퓌허바겐) 방식과 같지만 최대 반값에 자동차를 살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 ‘악마의 유혹’에 마음이 흔들리게 된다.
딜러로부터 쿠어츠추라쑹 6개월짜리를 제안 받았다는 사람들이 ‘사도 되겠냐’며 올린 문의 글을 인터넷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얼마 전 개인적으로 인기 있는 볼보 모델을 반값에 살 수 있다는 제안을 받았는데 바로 쿠어츠추라숭 모델이었다. 아무리 6개월짜리 중고차라도 새 차 가격의 반값으로 살 수는 없기에 관심이 갔지만 내 차가 6개월 동안 어떻게 활용될지, 또 그 사이 딜러가 파산을 하는 등, 어떤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거절하는 게 당연했다.

◆ 우리나라의 온라인 판매 가능성
이처럼 독일은 자동차를 사는 방법이 다양하기 때문에 시간을 길게 잡고 여러 경로를 통해 판매 조건을 따지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 노력만큼 가격 혜택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현재까지 신차를 살 때 제조사가 정한 가격, 그리고 그들이 그때그때 펼치는 할인행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르노삼성이 온라인을 통해 차량 견적을 내고 결제까지 하는 방식을 도입하기는 했지만 영업 현장을 방문하지 않는 ‘비대면 형태’의 방식일 뿐 독일처럼 큰 폭의 할인은 어렵다. 이 외에도 온라인으로 사전 계약을 받는 등, 일부 수입사가 이런 비대면 방식을 활용했지만 역시 가격 부분에서 혜택은 크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도 자동차 온라인 판매를 좀 더 적극적으로 고민할 필요가 있다. 독일을 꼭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우리 형편에 맞게 우리 방식으로 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변화에 따른 노조와 영업사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것, 그리고 온라인 판매를 통한 할인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약속만 지켜지면 된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