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도전의 차> :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N
‘한계’의 빗장을 제거한 국내 최초 핫해치

◆ 다음 자동차 칼럼니스트들이 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2018년 올해의 자동차

(8) 올해의 도전의 차 - 현대자동차 벨로스터 N

현대자동차를 언급할 때마다 늘 안타까운 사실은 개발능력이 실제 이상으로 저평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잊을 만하면 터져 나오는 작업불량, 일을 키우는 대처방식, 그리고 그 뒤의 후폭풍을 불러일으키는 위기관리능력은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오지만, 이 부분과 개발능력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가죽시트의 실밥 개수까지 따지며 원가경쟁을 벌이는 양산차 세계에서 개발자들은 좋은 상품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한다. 한 해 450만 대라는 숫자는 허튼 수준의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현대차 개발자들은 굉장한 ‘무공’의 소유자들이다.

기대하지 않은 브랜드가 선보인 놀라운 결과물을 이해하기 가장 쉬운 방법은, 모든 걸 한 명의 마법사가 만든 결과물이라고 결론짓는 것이다. N 브랜드의 개발을 지휘한 (그리고 이제는 현대기아차의 기술총괄이 된) 알버트 비어만은 분명 대단한 엔지니어다. BMW M의 수장 시절 나온 차들은 하나하나가 M의 명성을 쌓는데 모자람이 없는 걸작들이고, 현대기아차로 와서 손을 댄 신차는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주행질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부임 후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일이 모두 한 사람의 힘으로 가능했을 리가 없다. 그의 옆에는 이런 걸 하고 싶어 현대기아차에 들어온 수백 명의 사람들이 있다. 그의 진짜 업적은, 이들에게 걸린 ‘빗장’을 풀어버린 것이다. 억눌려 있었던 내부 열망은 그의 출현을 계기로 폭발했다. 생애 처음으로 만들고 싶은 차를 위한 자원을 받은 사람들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일을 해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벨로스터 N이다.

가로배치 앞바퀴굴림 플랫폼을 가져다 손본 핫해치라는 방식은 전형적이지만, 거기에 담긴 결과물은 전형과는 전혀 다르다. 변속기는 오직 수동기어밖에 없으며, 엔진은 앞바퀴굴림에게는 거의 아슬아슬한 수준인 275마력에 토크 36.0kg·m까지 끌어올려 놓았다. 가속할 때 앞을 들어 올려 접지력이 없으니 그 이상 내봤자 소용이 없다. 고부스트를 쓰는 2.0리터의 싱글터빈 구성인데도, 저회전 터보랙은 거의 없고, 디젤도 아닌데 최대토크는 1천450rpm부터 곧게 유지된다. 초기부터 몰아치는 토크감은 고회전까지 수그러들지 않으며, 단숨에 한계회전수로 치솟아 오른다. 기가 막히게 팡팡 도는 엔진사운드는 근사하다.



주행모드 설정에 따라 성격이 휙휙 변하는데 그걸 조합하는 연출에까지 공을 들였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반응은 물론이고 엔진과 배기노트까지 모조리 바뀐다. 노멀모드에서조차 노골적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배기음은 스포츠모드에 놓으면 아예 으르렁대기까지 한다. 다운시프트를 위해 변속기를 내리는 순간, 날카롭게 회전수를 끌어올리며 보정에 들어간다. 어설픈 힐&토와는 비교할 수 없다. 기능만 놓고 보면 핫해치 종합선물세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컴팩트한 해치백이지만, 다양한 장비를 잔뜩 올린 탓에 무게는 일반 벨로스터보다 100킬로그램 정도 늘어난 1,380킬로그램. 그럼에도 늘어난 무게가 부담스럽지 않다. 앞바퀴굴림이지만, 접지력이 확보되는 한 움직임은 태생적 한계를 뛰어넘었다. 코너 입구나 탈출 부분에서 한결같은 트랙션은 ‘조용히’ 제 할 일만 하는 전자식 LSD의 공이 크다. 이 매끈한 핸들링을 완성시키는 타이어는 미쉐린의 파일럿 슈퍼스포츠(PSS). 전세계의 앞바퀴굴림 모델을 다 털어도 이 정도의 핸들링을 선사하는 차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이 차를 처음 탔던 해외미디어들의 반응이 하나같이 비슷했던 것도 이해가 된다.

물론, 아직 아쉬운 점도 있다. 유격 때문에 절도 있는 손맛이 죽는 변속 시프트가 그렇고, 19인치 휠은 멋으로는 최고지만 코너링을 위해서라면 18인치가 낫지 않을까? 계속 밀어붙이면 힘든 기색을 드러내는 브레이크는 좋은 스포츠패드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나중에 곱씹게 되는 이 모든 불만이 막상 달리고 있으면 별로 중요하지 않게 생각된다. 달리기 그 자체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차를 타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더구나 그게 현대차였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리고 하나 더. 이 정도의 성능을 수입모델에서 찾으려면 지불해야 할 금액은 단박에 치솟아 오를 것이다.



역대 어느 현대차보다 모드 변화에 뚜렷하게 반응하는 점도 매력이다. 맹렬하게 달리고 싶다면 흐뭇할 정도의 난폭함으로 회답하지만, 느긋하게 달리고 싶다면 여느 일상의 현대차나 다름없이 군다. 에코모드로 설정된 차는, 괜찮은 연비와 느긋한 승차감으로 부드럽게 퇴근길을 달려간다. 그냥, 그러고 있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어느 순간 유혹을 못 이기고 N 버튼을 꾹 누르면, 대번에 본색을 드러낸 채, 사나운 토악질을 시작한다.

국내시판 첫 N모델, 벨로스터 N이 이루어 낸 성취는 충분히 놀라울 정도이고, 현대차 개발자들은 이미 다음 단계로 달려가는 중이다. 아직 못해본 것이 산더미 같다며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눈은, 기대와 흥분으로 빛나고 있었다.

다음 번 N은 또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까?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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