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재치 넘친 차> : 롤스로이스 컬리넌
환희의 여신은 오프로드를 달릴 때 무슨 생각을 할까?

◆ 다음 자동차 칼럼니스트들이 독단과 편견으로 뽑은 2018년 올해의 자동차

(9) 올해의 재치 넘친 차 - 롤스로이스 컬리넌

롤스로이스의 첫 번째 SUV ‘컬리넌’. 자존심 강한 럭셔리 세단 브랜드가 SUV를 내놓는 것을 보면서 SUV 바람이 얼마나 거센지 실감하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바람을 타고 롤스로이스는 이전보다 더 젊어지려 한다. 사막 등 비포장길 달리는 데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컬리넌을 통해 이런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

시작가가 유럽에서는 31만 유로가 넘는다. 한국에서도 4억6천900만 원부터 시작한다. 옵션 비용만도 웬만한 최고급 수입차 한 대 가격이니 제대로 꾸미고자 한다면 6억 원 이상의 돈이 든다.

오랜 세월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던 벤틀리가 폭스바겐그룹에 인수된 이후 빠르게 성장하는 것을 롤스로이스는 똑똑히 지켜봤을 터. 상대적으로 저렴한(?) 벤틀리는 감각적 디자인과 럭셔리한 구성으로 많은 젊은 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는 롤스로이스일 뿐 어떤 브랜드, 어떤 모델과 비교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하나의 수사일 뿐, 벤틀리의 성공은 그들에게 자극을 주었다. 그 자극의 결과로 나온 것이 레이스와 같은 2도어 쿠페,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SUV 컬리넌이다. 롤스로이스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쇼퍼드리븐을 만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의 화이트 글로브 프로그램(White Glove Program)을 통해 쇼퍼드리븐 자동차의 가치를 정점까지 끌어올렸다. 3일에 걸쳐 펼쳐지는 운전법과 소양교육을 통해 브랜드 역사를 배우고 오너를 픽업할 때나 차에 타고 내릴 때 운전자가 취해야 할 태도 등도 배운다. 심지어 최고급 호텔직원들을 상대로 대응법과 운전법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용도 철저하다. 오너보다 3분 먼저 도착하기, 실내온도 맞춰놓기, 오너의 취향에 맞는 음악 선곡과 음료 준비, 이물질이 묻는 것을 대비한 실크 손수건 준비는 물론, 날씨와 교통상황에 대해 언제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뒷좌석 승객과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룸미러 방향을 살짝 틀어놓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양문형 냉장고처럼 열리는 코치도어에 꽂혀 있는 우산은 여성 오너나 승객이 치마를 입고 있거나 파파라치에 의해 기습촬영을 당할 때 쓰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이처럼 오너에 대한 존중을 가르치는 자동차회사가 또 있을까? 하지만 롤스로이스는 여기에만 머물지 않기로 했다. 어쩌면 생존의 문제였을지도 모른다.

고스트를 기반으로 한 레이스 같은 쿠페는 롤스로이스가 더 이상 쇼퍼드리븐 브랜드로만 남지 않고 오너가 직접 운전하는 자동차로 영역을 넓히겠다는 의지를 담은 신호탄처럼 보였다. 실제로 레이스는 젊은 부호, 젊은 대중스타들이 선호하는 자동차가 됐다.

그리고 이번에 등장한 컬리넌은 영역확장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더는 롤스로이스 오너가 운전석에 타고 내리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님을 컬리넌으로 확실하게 인식시킨다. 젊은 고객을 위한 럭셔리 SUV, 가족이 이용할 수 있는 패밀리카, 그리고 험지를 달릴 수 있는 실용적 오프로더라는 세 가지 영역에 컬리넌이 뛰어든 것이다.



미국에서 진행한 시승행사는 이런 컬리넌의 방향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와이오밍의 산악 지역에서 열린 행사에는 미디어뿐만 아니라 젊은 유튜브 리뷰어들까지 초대했다. 왁자지껄, 시끌벅적. 보닛 끝에 있는 환희의 여신이 이처럼 덜컹대며 산길을 달려본 적이 있었을까?

롤스로이스는 조용히 고객을 만나는 브랜드였다. 판매량을 최우선 목표로 내세우지 않는다고 말하는 브랜드였다. 판매량보다는 극소수의 오너들을 만족시키고 가치를 높이는 방향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컬리넌은 지금까지의 롤스로이스 전략과는 다른 길을 가야 한다. 많은 관심 속에 등장했고, 그만큼 판매량이 중요해진 SUV다.

오만해 보일 정도로 자존심 강한 롤스로이스가 자신들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영역에 컬리넌으로 도전장을 냈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고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롤스로이스의 시간은 거꾸로 가는 것 같다. 더 젊어지고 더 에너지가 넘친다. 컬리넌 효과일 것이다. 이 점이 올해 등장한 많은 자동차 중 롤스로이스의 SUV를 재치 넘친 자동차로 선정한 이유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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