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 국력 높아진 건 사실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해외시장에서 바라본 한국 자동차산업은 매우 발전했다. 국내는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도 커서 온도차가 느껴진다. 착시효과라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발전한 내용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임유신의 업 앤 다운] 연말이면 자동차 분야 곳곳에서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부터인지 국산차나 브랜드의 수상 소식이 부쩍 늘었다. 굳이 연말이 아니더라도 자동차산업 각 분야에서 쾌거를 이룬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은 정말 ‘눈부시게’ 발전했다. 후발주자로 시작해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성장했다. 생산대수로 보나 품질로 따지나 세계 시장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면 상위권이라고 할 만하다.

그런데 여전히 국내에서는 국산차 브랜드의 성과에 부정적이다.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소식이 국내에 전해져도 폄하한다. 여전히 가격 싸고 품질은 그럭저럭 봐줄 만 한 차 정도로만 생각한다. 산업 규모나 해외에서 평가, 관련 종사자들의 세계무대 활약, 각종 수상 소식 등을 접하면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이 꽤 발전한 게 맞다. 그런데 정작 국내 소비자들의 판단은 온도차가 크다.



발전과는 별개로 그동안 업체들이 보여준, 그리고 현재도 진행 중인 뿌리 깊은 부정적인 모습 때문에 좋지 않은 인식이 박혀서 그럴 수 있다. 아니면 정말 착시효과일지도 모른다. 집에서는 가족에게 막 대하는 사람도 외부에 나가면 친절하고 상냥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경쟁 때문에 집 밖인 세계 시장에 공들이니 해외 평가는 좋지만, 정작 집안에서는 식구들을 푸대접해 평이 나쁠 수도 있다.

게다가 요즘은 평가 기준이 높아졌다. 과거에 국산차는 값싼 대중차 수준에 머물렀다. 해외 유수 업체와 비교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았다. 지금은 수준이 높아져서 상위 업체와 비교 대상이 되다 보니 더 높은 잣대를 들이댄다. 좋은 평을 받기가 그만큼 더 힘들다는 뜻이다. 물론 평가 여론 형성이 주로 인터넷상에서 이뤄지다 보니, 성과를 인정하는 대다수의 현실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해외에서 들어오는 소식도 대부분 좋은 내용 위주이다 보니, 해외 활약상에 대해 국내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도 무시할 수 없다. 상황이 어떻든 우리나라 자동차 국력이 정말 높아졌는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리는 점만은 사실이다.



제품 관점에서 발전이 크게 와닿는 부분은 해외 매체 평가다. 10년 전만 해도 국산 자동차나 브랜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심할 때는 조롱거리로 전락했고 평가는 늘 하위권을 맴돌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한두 차종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고, 전반적으로 우호적인 분위기로 돌아서는 분위기가 감지됐다. 그때만 해도 마케팅 비용을 많이 풀어 그런 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을 보면 외적인 요소보다는 제품 자체를 보고 긍정적인 평가를 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평가 대상의 분류 기준이 예전과 다르게 몇 단계나 높아졌다.

해외 매체들이 연말에 선정하는 올해의 차 후보에 오르는 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한 해에 한 대 이상 후보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최근에는 후보에 그치지 않고 올해의 차나 브랜드로 선정되기도 했다. 올해의 차가 아니더라도 비교시승에서 1위를 하는 차도 늘었다. 과거에는 어떤 분야를 대표하는 전통적인 차가 주인공이고 한국차는 후발주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들러리 노릇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전통적인 강자를 제치고 비교시승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메인 사진에 여러 대 중 국산차가 가장 크게 나오는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발전이 와닿는 또 다른 분야는 디자인이다. 오래 전만 해도 해외 브랜드에는 국내에서 배워 현지로 진출한 한국인 디자이너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뉴스거리가 됐다.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져서 그 수가 크게 늘었다. 고급차 브랜드 등 이름 있는 곳에서 일하는 디자이너 수도 꽤 된다. 수입차업체들이 국내에서 신차발표회 할 때, 가끔 한국인 디자이너를 초청하곤 한다. 예전에는 대단한 흥미로운 뉴스 소재였는데, 지금은 브랜드마다 한국인 디자이너 다수가 일하다 보니 일정만 맞으면 올 수 있는 일상적인 일이 됐다. 국내파 한국인 디자이너들은 수준 높은 실력으로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디자인팀을 이끄는 리더 자리를 지키는 이름 있는 디자이너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여러 분야에서 발전상을 보여주지만 여전히 미흡한 분야도 많다. 고급차 분야는 아직 열세이고 미래차 분야는 뒤처져 있다. 차종도 한정적이고 진출하지 않은 세그먼트도 여럿이다. 브랜드 인지도는 높지만 충성도나 전통적 가치는 약하다. 품질이나 완성도는 높아졌지만 기초적인 기본기에서 허점을 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약점을 찾자면 하도 끝도 없다. 이런 미흡한 부분 때문에 잘한 분야 성과도 가려지는 면이 없지 않다. 계속해서 고치고 발전해 나가야 할 부분이다.



우리나라의 자동차 국력은 과거와 비교하면 높아진 게 맞다. 다른 나라도 발전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속도로 따지면 우리가 빠른 편에 속한다. 여전히 미흡한 부분이 남아 있지만 앞서가는 나라와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다. 자동차산업은 계속해서 발전한다. 평가하는 사람들의 눈높이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대부분 가장 잘 나가는 곳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더 완벽하고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연말이 다가와서 그런지 각종 수상 소식이 들려온다. 올해 들어 유난히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국산차나 국내 인물에 대한 뉴스도 많았다. 우리나라 자동차 국력이 높아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긍정적인 소식이 많이 들려왔다. 의미를 깎아내린다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지 않나 싶다. 발전한 분야 점수를 플러스로 하고 미흡한 분야를 마이너스로 해서 더한다면 아마도 결과는 마이너스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발전한 사실 자체가 의미가 없지는 않다. 마이너스 요소를 근거로 플러스 요소를 무시할 필요도 없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임유신(<탑기어> 한국판 편집장)

임유신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 <모터 트렌드>, 등을 거쳤다. 현재 글로벌 NO.1 자동차 전문지 영국 BBC <탑기어>의 한국판 편집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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