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양산차, 스바루 360 (1)

[변성용의 사라진 차 이야기] 自家用(자가용). 아련한 단어다. 이제는 더 이상 듣기 힘드니까. 내뱉는 순간 아재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단어가 낯선 젊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자가용은 말 그대로 ‘자기가 소유하여 전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자동차에만 국한되는 단어는 아니니 차에다 붙이려면 자가용차라고 해야겠지만, 유독 승용차에만 그렇게 불렀다. 나와, 우리 집 사람들이 내키면 언제든지 어디로든 쓸 수 있는 차는 이제 더 이상 자가용이라 부르지 않는다. 가격과 기호의 차이가 있을 뿐, 이제는 마음만 먹으면 차를 소유하는 게 어렵지 않은 세상. 모든 차가 자가용인데 굳이 이걸 구분해 부를 이유가 없게 된 것이다.



어느 국가든 자가용의 시대는 경제력과 공업력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면서 급속한 진전을 보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상 GDP의 상승과 더불어 평균 연수입이 자동차의 가격 범주를 넘어서게 되면서 대중화는 시작된다. 우리에게 대중차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과 이에 따른 생활환경의 변화, 이른바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의 시작은 198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였고, 뒤이어 첫 국민차가 나온 것이 1991년이다.

우리의 모터리제이션에는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국내 기업이 만들어 보급한 차였음에도 이들 보급형 자가용들은 하나같이 기술의 근원이 일본에 있거나 아예 완성차를 도입해 만든 것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기술을 만들고 산업을 세웠던 일본은 언제 모터리제이션을 거쳐 우리에게 기술을 전수해 줄 단계에 이른 것일까? 애초에 자가용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자가용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던 걸까?



◆ 1955, 일본

1955년의 일본은 이제 전쟁의 상흔을 벗어나 겨우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던 시절이었다. 자가용은 그냥 꿈이 아니라, 꿈속의 꿈같은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당시 차의 가격은 1000cc엔진을 단 차들이 약 100 만 엔. 평균적인 샐러리맨의 5년 치 수입을 꼬박 모아도 모자랄 가격이며 주택의 평균가격을 넘어서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자가용은 고소득층의 상징이었다. 세제와 보유의 혜택을 주는 경차는 이미 1949년도에 법이 제정되어 있었지만 그 폭이 고작 1m로 제한되어 있어, 그 기준을 맞춘 차라는 것은 현재의 문 4개가 달린 세단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승차 인원은 2명이 고작, 그나마 대부분은 1명이 물건을 싣고 달리는 3륜차였다. 서민의 발이 될 수 있는 물건은 자전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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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든 산업발전을 위해 자동차는 필수였다. 1954년 정부의 '국민차 구상’에 의해 ‘신도로 교통 단속법’ 이 발효된다. 경차의 규격은 전장 × 전폭 × 전고가 각 3000mm × 1300mm × 2000mm크기로, 2 스트로크 엔진 또는 4 스트로크 엔진에 배기량은 360cc로 확대된다.



360cc라니, 얼마나 많은 양인지 상상할 수 있을까? 그래봤자 캔커피 (175mm) 두개를 이어붙인 정도가 실린더의 체적인 엔진이다. 이걸로는 2인승 자동차를 최고속 65km/h를 달리게 하는 게 한계였다.

이 배기량에 성인 4명이 승차 가능하고 국도의 90%가 포장이 안된 일본의 험로를 주행 할 수 있으면서도 서민의 손에 닿는 금액의 차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전쟁 중 비행기를 만들던 회사 나카지마 비행기, 후의 후지중공업(현 SUBARU)이였다. 이제 더 이상의 비행기 제작이 불가능해진 회사는 그 능력을 소형 스쿠터와 버스로 돌려서 어느 정도 자리는 잡은 상태였다. 승용차 시장 진출을 위해 첫 모델 스바루 1500을 완성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설비투자와 시장성 때문에 더 이상의 진행은 불가능한 상태였다. 그렇게 좌절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경차의 신규격이 발표된 것이다.

개발 팀은 세 가지 목표를 내걸었다.

- 가격은 35만엔
- 일본의 험로를 60km로 주행 가능
- 4인 탑승 시 언덕을 올라갈 수 있어야 함

당시의 기술 수준을 훨씬 뛰어 넘는 목표였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 일본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양산차

360cc 소형 엔진에 성인 4명을 태우고 달리기 위해서는 바디의 경량화가 필수였다. 목표로 한 공차 중량은 350kg. 이들이 생각한 것은 바디와 프레임을 일체화시켜 강성을 높이는 ‘모노코크 구조’였다. 프레임에 자동차의 동력계를 매달고 여기에 외피를 입히던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비행기를 만들던 엔지니어가 주축이었기에 가능했다. 동글동글한 계란형 디자인은 심미안적인 이유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모노코크 구조의 강도를 끌어올리기 위한 고심의 결과였다.

차체 디자인은 외부의 디자이너였던 사사키 다쓰조(佐々木達三)에게 맡겼다. 버스의 디자인으로 후지중공업과 연을 맺긴 했지만, 근본은 건축 모형제작자였던 그는, 이전에 승용차를 디자인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난생 처음 자동차를 디자인하게 되자 부랴부랴 면허를 취득한 뒤 자동차를 몰아보며 기능성을 파악해 나갔다. 그때 몰았던 차가 르노의 4CV다. 생김새 때문에 폭스바겐의 비틀과 비교되곤 하지만, 훗날 스바루 360이라 불리우게 되는 차가 선생을 삼은 회사는 사실 프랑스 르노였던 셈이다.

강도가 올라 보강 부재를 사용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경량화에 한몫 했다. 경량화를 위해 철판을 일반적인 0.8mm 대신 0.6mm 두께의 것을 썼지만, 강도를 확보해야하는 바닥재는 모두 1.2mm를 써서 만들었다.



모노코크 구조는 경량화만 장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분의 프레임이 없기 때문에 실내 공간의 넓이도 확보할 수 있었으며, 프레임과 바디가 일체화되어 있기 때문에 분리된 구조가 일으키는 진동도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된다. 현재 자동차의 대부분은 모노코크 구조가 당연한 듯 통용되고 있지만, ‘일본 최초’의 모노코크 바디 차량은 최초의 스바루 360이었다.

지붕은 4면 테두리가 있는 한 모노코크의 강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응력이 전달되지 않아 그냥 FRP로 만들어 무게를 줄였으며, 자연스레 무게중심이 낮아지는 효과까지 얻었다. 별도의 안전규제가 없는 뒷 창은 아크릴로 만드는 등 집요하게 매달린 끝에 도달한 중량은 목표인 350kg에서 약간 오버된 385kg.

제한된 범위에서 4인승의 공간 확보를 하려다 보니 서스펜션의 공간을 확보하기 힘든 문제가 있었다. 이 작디작은 차에서 보통의 코일 스프링을 사용하려면 바퀴 위로 올라오는 구조물이 탑승자의 다리 공간을 침범하는 문제가 생긴다. 그래서 새로 개발한 것이 ‘토션바 서스펜션’이다. 쇠막대기의 비틀림을 이용하는 토션바는 코일이나 리프 스프링을 쓰지 않으면서도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데다 동일한 무게로 흡수할 수 있는 에너지가 크기 때문에 경량화의 강점까지 가지고 있었다.



엔진은 16마력을 내는 강제공랭 2 기통 2 스트로크 360cc 엔진을 뒷바퀴에 가로로 배치한 후륜 구동(RR: Rear engine Rear drive)이다. 그 당시에 RR은 작고 저렴한 차에서 어렵지 않게 보이던 방식이었다. 이 방식이 많았던 것은 기술의 한계 때문이기도 했다. FF방식으로 차를 만들게 되면 동력과 조향을 함께 담당해야 할 CV조인트가 필요해지지만, 당대에는 장기 내구성을 확신할 수 있는 조인트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구동계가 통째로 뒤로 가버리는 방식이 사용된 것이다. 공랭식 2기통 2스토로크 엔진은 가볍고 간단한 구조지만, 높은 출력을 얻을 수 있는 데다 제조비용도 저렴했다. 이미 스쿠터를 만들던 기존 엔진라인을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었던 만큼, 다른 방식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연료펌프의 비용을 아끼기 위해 연료통은 엔진의 바로 위에 붙였고 여기서 연료가 중력(!)을 이용해 공급되었다. 모든 것이 비용과 무게 절감을 위해 철저하게 검토됐다.

차를 완성해 나감과 동시에 뜻밖의 문제도 만나게 된다. 초소형차에 필요한 타이어는 10인치 사이즈. 공간 효율성과 경량화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이런 작은 타이어를 만드는 회사는 없었다. 후지중공업은 스쿠터의 타이어 공급업체였던 ‘브리지스톤’을 불러들여 10인치 타이어 제조를 의뢰한다. 경량화에 대한 집요한 요구를 맞춘 전용 타이어가 별도로 완성된 것은 테스트가 시작되는 1957년이 되어서였다.

(2부로 이어집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변성용

변성용 칼럼니스트 : 자동차 전문지 <카비전>과 <자동차생활>에서 13년간 객원기자로 글을 썼다. 파워트레인과 전장, 애프터마켓까지 자동차의 다양한 분야에서 업무를 수행하며 자동차를 보는 시각을 넓혔다. 현재 온오프라인 매체에 자동차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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